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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염하강변일주

[20170318]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 - 4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7.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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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18일(토)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염하강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 이야기

 

 맥가이버의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 코스


성동검문소→포내천수문→포내배수펌프장→해병대훈련장→김포CC→고양리쉼터→원머루나루(고양포)→할머니매점→쇄암리전망대쉼터

→고란초삼거리→출렁다리→부래도쉼터→부래도(덕포나루)→손돌묘→덕포진 파수청터→덕포돈대→덕포진쉼터→평화누리길1코스 입구

→김포함상공원/대명항→호동천배수문→대명항 종점→초지대교 도강→대선정초지진→초지항활어회마을→덕진교→덕진진(덕진돈대

→경고비→남장포대→공조루)→광성보(광성포대→용두돈대→손돌목돈대→신미순의총→쌍충비각→안해루→광성돈대)→강기운 의교비

강화전성→오두돈대→화도수문개축기사비→화도돈대→용당돈대→강화 더리미포구→강화외성→갑곶교→舊강화대교 도강→성동검문소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염하강철책길 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염하(鹽河) or 염하강 鹽河江] - 강화해협 or 김포강화해협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의 해협(海峽)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도)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海峽)이다.
마치 강(江)과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고 부르며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밀물 때의 최대 유속은 약 3.5m/sec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염하의 북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강물이 흘러들어 오는데,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 간에는 물높이(해수면 높이) 차이가 아주 커서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염하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염하는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개항기 때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염하를 따라 군대 주둔지인 진(鎭)과 보(堡), 초소인 돈대 등 수많은 방어유적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초지진(草芝鎭, 사적 제225호), 덕진진(德津鎭, 사적 제226호),
덕포진(德浦鎭, 사적 제292호), 광성보(廣城堡, 사적 제227호), 갑곶돈(甲串墩 갑곶돈대, 사적 제306호) 등이 있다.
염하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는데
전쟁 후 뱃길이 봉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민간어선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염하를 가로질러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놓여 있다.
 
[출처 : 두산백과]

 

 
 
때 무작정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면 그 길을 찾아 나섰던 적이 있었다.
훗날 그 길들은 제각기 이름을 갖고 올레길, 둘레길, 나들길, 누리길 등이 되었다.
 
이미 걸었던 길들이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알려지면 다시 그 길을 찾아나서곤 하였는데...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길이 생기다보니 그 길을 찾아 걷다보면 또 새로운 이름표를 단 길들을 만난다.
 
 
오늘은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염하(鹽河) 또는 염하강(鹽河江)이란 김포시와 강화도 사이의 바다를 달리 이름이고,
'염하강 일주'란 강화초지대교와 강화대교를 도강하며 '강화도 해안길'과 '김포 해안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오늘 걷는 '염하강(김포강화해협) 일주' 코스 中
김포 해안길은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로, 강화도 해안길은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그 두 길을 위 '염하강 일주 코스도'처럼 성동검문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걸어서 성동검문소로 원점회귀하는 코스이다.
 
오늘 걸은 거리는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14km와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16km를 합하고,
두 길을 잇기 위한 강화초지대교와 강화대교의 도강거리와 강화도의 여러 진과 돈대 등의 탐방으로 4km 정도를 더하면 34km 이상일 듯...
 

08시 14분에 성동검문소를 출발하여 휴식 없이 '염하강(김포강화해협) 일주'를 하고, 15시 37분에 성동검문소로 원점회귀하였다.


  

☞ 맥가이버의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 4부를 시작하며...

 

 

강회외성 중 강화전성 구간... 


강화전성[江華塼城]

 
강화전성인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

길이 270m, 높이 0.9∼1.2m.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

이 성은 강화도에 축조된 고려 외성 중의 하나이다.

 

유형 유적
시대 : 고려/고려 후기, 조선/조선 후기
성격 : 성곽, 전성(塼城)
건립시기·연도 : 고려 후기(토성), 1744년(전성)
크기(높이, 길이, 둘레, 깊이) : 높이 0.9∼1.2m, 길이 270m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 563
소유자 : 국(재정경제부)외 4인
관리자 : 강화군
문화재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
문화재 지정일 : 1995년 3월 1일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성.

 

내용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

길이 270m, 높이 0.9∼1.2m.

이 성은 강화도에 축조된 고려 외성 중의 하나로 밑 부분은 돌로 쌓고 윗부분은 벽돌로 쌓았다.

 

원래 이 성은 1231년(고종 18)에서 1270년(원종 11) 사이에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1742년(영조 18)에 강화유수 김시연(金時緛)이 벽돌을 구워

이 성을 개축할 것을 왕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아 이듬해 공사를 시작하여 1743∼1744년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래쪽은 돌로 쌓고 위쪽은 벽돌로 쌓았는데,

벽돌은 강회붙임으로 연결하고 어긋매김 공법으로 축조하여 허물어짐을 방지하였다.

원래 전체 높이 약 4m에 약 10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벽돌로 개축하고 나머지 부분은 삼군문(三軍門)에서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약 270m 가량만이 군데군데 허물어진 채 남아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때를 기다리며...


▼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나무와 성곽...





▼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






▼ 오두돈대






▼ 도로 건너편엔 물댄 논?




▼ 염하쪽엔 어린 강태공들이...




▼ ?


▼ 논도 아니고, 저수지도 아니고, 수로도 아니고, 뭐지?


▼ 염분 제거를 위한 담수?





▼ 염하를 누비는 새마을호?






▼ 화도수문개축기사비


▼ 화도교를 건너...




▼ 화도돈대


화도돈대[花島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仙源面)에 있는 조선시대의 국방 유적. 


인천 강화군 선원면 연리. 인천문화재자료 제17호.

이 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유수 윤이제가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고자 축조한 돈대이다.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 인천문화재자료 제17호
지정일 : 1999년 03월 29일
소장 : 강화군
시대 : 조선
종류/분류 : 전적지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연리 54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때 성곽이나 변방 요지에 세워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련한 초소인 돈대는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구릉을 깎아서 높게 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하였다. 

 

간척지 벌 가운데의 작은 동산 위에 위치하는 화도돈대는 오두돈대(鰲頭墩臺)·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堡) 5진(鎭) 중 하나인 광성보(廣城堡)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쪽으로 700보 거리에 오두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1,390보 거리에 용당돈대(龍堂墩臺)로 이어진다.
강화외성과 연결되어 있으나 현재 주변의 외성은 소실되었다.


동쪽으로 나 있는 수구(水口) 옆에는 강화유수 한용탁(韓用鐸)이
1803년 세운 '화도수문개축기사비(花島水門改築記事碑)'가 있다.

성벽터로 볼 때 평면은 사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북쪽에 무너진 성벽의 석재들이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성벽의 터만 남아 있을 뿐 완전히 소실되었다.
돈대 내부는 과일나무를 심은 밭으로 일구어져 있다.

강화군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출처 : 두산백과]



▼ 화도돈대 감나무























▼ 용당돈대










▼ 주차장 쉼터


▼ 강화대교가 보이고...



▼ 다시 만난 반가운 님들...



▼ 도로 건너 용진진이 보이고...


용진진[龍津鎭]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진(鎭). 


인천 강화군 선원면 연리. 인천기념물 제42호.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되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다.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인천기념물 제42호
지정일 : 1999년 03월 29일
시대 : 조선
종류/분류 : 진지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연리 215 외 9필지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군사적 요새로 조선시대인 1656년(효종 7)에 축조되었다.
가리돈대(加里墩臺)·좌강돈대(左岡墩臺)·용당돈대(龍堂墩臺) 등 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으며 돈군과 군보급품을 관리하였다.

 

용진진은 본래 병마만호(兵馬萬戶)의 관리 아래 있었고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등

모두 101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포를 놓는 자리인 포좌 4문, 총을 놓는 자리인 총좌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축 대부분이 없어지고 홍예 2문만이 남아 있었던 것을 1999년에 문루를 복원하였다.
왼쪽 홍예의 높이는 2.57m, 폭 4.15m, 두께 60∼61cm이고,

오른쪽 홍예의 높이는 2.14m, 폭 4.8m, 두께 50∼60cm의 규모이며 석재는 대리석이다.


[출처 : 두산백과]


2015년 1월 31일(토)에 염하강일주시 찍은 사진 - 용진진 문루인 참경루[斬鯨樓]

 

2015년 1월 31일(토)에 염하강일주시 찍은 사진 - 용진진 문루인 참경루[斬鯨樓]

 

2015년 1월 31일(토)에 염하강일주시 찍은 사진 -  좌강돈대에서 참경루를 내려다보니...

 

2015년 1월 31일(토)에 염하강일주시 찍은 사진 - 좌강돈대

 

2015년 1월 31일(토)에 염하강일주시 찍은 사진 - 좌강돈대

 

▼ 이제 앞에 보이는 더리미포구를 지나서 갑곶성지를 거쳐 舊강화대교를 건너면 염하강일주를 마치게 된다. 








▼ 도래미마을







▼ 더리미포구



▼ 강화외성


강화 외성[江華 外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과 불은면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성.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452호
지정일 2003년 10월 25일
소장 강화군
시대 고려
종류/분류 성지(성곽)
크기 26만 5,216㎡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일원
 
2003년 10월 25일 사적 제452호로 지정되었다.
이 외성은 1233년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하여 강화의 동쪽 해안 방어를 위하여 적북돈대에서부터 초지진까지 쌓은 성이다.
그 둘레는 23km에 이른다.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방위시설이자

개경(開京)으로 천도한 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보급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외성은 높이 20척, 폭 5척이고, 조해루·복파루·진해루·참경루·공조루·안해루 등의 문루 6개소,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강화 외성은 고려 후기에서 7세기 후반까지 도성의 구조와 축성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두산백과]



강화 외성[江華 外城]

 

종 목 사적  제452호 
명 칭 강화 외성 (江華 外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255,544.9㎡
지정(등록)일 2003.10.25
소 재 지 인천 강화군 선원면 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일원(강화도 동해안 일대)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강화군

 

강화 외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고종 20년(1233)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읍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 24년(1237)에 강화외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비상시에 국왕의 피난처인 도성(都城)의 외성(外城)으로 광해군 10년(1618)에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숙종때 병자호란기(1636)에 허물어진 외성을 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고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영조때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이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려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9년(1743)에서 이듬해에 걸쳐 벽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2001년 동양고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오두돈 주변의 전축성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뻘층을 기초로 머리돌을 올리고

그 위에 대형석재로 석벽의 중심을 삼고 그 위에 머리돌을 올리고 다시 전돌을 여러 단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성은 높이 20척, 폭 5척이며, 6개의 문루(조해루·복파루·진해루·참경루·공조루·안해루)와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강화외성은 고려 후기∼17세기 후반 도성의 구조와 축성기법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사적 제3호)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출처 : 문화재청]

<강화고지도> 18c후반 76.5*119cm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강화산성을 비롯하여 동쪽 해안의 강화외성, 정족산성, 문수산성 등이 검정색 굵은 선으로 강조되어 있다.

면 단위의 행정구역과 호구수, 강화부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고, 상단의 지리지에는 강화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다.








▼ 갑곶교를 건너...




▼ 공덕비





▼ 갑곶성당


▼ 우측엔 갑곶돈대


갑곶돈[甲串墩]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 있는 돈대. 사적 제306호.

강화 53돈대의 하나로서 1876년에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역사적인 유적이다.

그뒤 갑곶돈은 허물어져서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 복원, 정화하였다.


유형 : 유적
시대 : 조선/조선 후기
성격 : 성곽시설, 돈대
건립시기·연도 : 1679년(숙종 5)
규모(면적) : 4만 5339㎡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20
소유자 : 국·공유,사유
관리자 : 강화군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제306호
문화재 지정일 : 1984년 8월 13일


사적 제306호. 지정면적 45,339㎡. 강화 53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 방어책의 하나로 12진보(鎭堡)가 설치되고,

다시 이 진보와 진보 사이에 몇 개의 돈대(墩臺)를 축조하였는데,

이 돈대들은 1679년(숙종 5) 어영군(御營軍) 3,000인과 함경·황해·강원 등

3도 승군(僧軍) 8,000인을 동원하여 40일 만에 축조하였다.

이 가운데 갑곶돈은 통진(通津: 지금의 김포시)에서 강화로 들어가는 갑곶나루에 축조되었는데,

주위가 113보(步)에 치첩이 40이었다.

 

이 갑곶나루에는 1875년(고종 12)에 축조 된 갑곶포대가 있었는데,

갑곶돈은 망해(望海)·제승(制勝)·염주(念珠) 등 세 포대와 더불어 제물진(濟物鎭)의 관할 밑에 있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함대가 600인의 병력을 이곳으로 상륙시켜 강화성을 점령하였으나,

정족산성(鼎足山城) 전투에서 양헌수(梁憲洙)부대에 패한 뒤 물러났다.

 

1876년에는 일본의 전권대신(全權大臣) 구로다(黑田淸隆)가 6척의 함선을 이끌고 와서

이곳으로 상륙한 다음 강화 연무당(鍊武堂)에서 조선의 접견대관 신헌(申櫶)과

강화도조약(일명 한일수호조규,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역사적인 유적이다.

그 뒤 갑곶돈은 허물어져서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 복원,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舊강화대교




▼ 갑곶성지로 가는 길...




▼ 舊강화대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통행가능하다고...


구강화대교[舊江華大橋]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甲串里)와 경기 김포시 월곶면(月串面) 포내리(浦內里)를 잇는 다리이다.
길이 694m. 너비 10m(차도 2차선 7m, 보도 3m). 1965년 7월 착공하여 1969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로서는 경남 충무교, 전남 완도교에 이어 3번째이다.
1997년 신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폐쇄되어 이용할 수 없다.

 

[출처 : 두산백과]



▼ 파란관은 한강물을 강화도로 보내는 관이고...


▼ 철망 안쪽의 돤은 도시가스관.


▼ 우측 두 개의 검은 관은 ?




▼ 舊강화대교 중간쉼터








▼ 舊강화대교를 도강하여...





▼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에서 여정을 마치고...







☞ 이것으로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를 마친다.

 

 

 

2017년 03월 18(토)

 맥가이버의 염하강 일주(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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