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그너머 <955> 거제 계룡산
기암괴석과 다도해 어우러진 풍경은 한폭의 그림
- 정상은 닭머리 산꼬리는 용 닮아
- 뾰족한 바위능선 타는 재미 쏠쏠
- 총길이 10㎞로 4시간 소요 코스
- 6·25전쟁 당시 美통신대 건물 등
- 산행 곳곳 전쟁의 상처 남아있어
- 흙길보다 포장된 길 많아 아쉬움
계룡산 능선의 바위 위에서 바라본 거제 옥포항. 계룡산이란 이름은 산의 정상부는 닭머리를, 산의 꼬리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길은 열어야 한다. 4대강 사업처럼 자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국민에게 천문학적인 세금 부담을 안기는 물길은 곤란하지만. 교통의 길, 물산의 길, 인심의 길을 사통팔달 활짝 열어 민생의 핏줄이 원활히 돌도록 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요체다. 하지만 길을 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전에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길을 열되 방법과 시기, 세심한 효과 예측과 검증이 중요한 건 그래서다.
이번 산행지인 경남 거제시 고현동 계룡산(鷄龍山·570m)에서 가서 그 실례를 접했다. 산행지 초입에 세워진 '김현령치비(金縣令峙碑)'가 그것이다. 비문에 따르면 조선 숙종 14년(1688년), 거제현령으로 부임한 김대기(金大器)는 현의 중앙에 산이 가로막혀 백성들이 통행에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는 6개월 만에 고현리 서문에서 계룡산 북단과 옥산리 화원을 거쳐 거제면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건설했다.
그러나 당시 거제에 전염병이 유행하자, 경상도 관찰사는 길을 닦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해 부역을 시킨 게 원인이라며 그 책임을 물어 김 현령을 파면했다. 전병염의 고통이 길의 편익에 묻혀서일까. 관찰사의 판정처럼 전염병의 원인이 부역인지 여부는 알 수는 없지만, 전염병 피해에도 불구하고 그 길에 '김현령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룡산 능선의 문처럼 생긴 바위.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조성 도중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역사(大役事)의 소산물들이 연상된다.
안타까운 건 그런 건축물들의 웅장한 자태에 눈이 팔려 건설 과정에서 희생된 뭇 노역자와 그 가족들의 피눈물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배자 중심의 역사 서술이 될 수밖에 없다. 위정자의 잘잘못을 가리려 해도 그 판단 기준이 되는 민초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런 역사에 뿔난 민초의 한이 깃들어서일까. 계룡산에는 수많은 '뿔'이 솟아 있다. 흙길을 밟고 올라가다 정상부에 이르면 범상치 않은 예기를 뿜어내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즐비하다. 계룡산이란 이름도 '산의 정상부는 닭의 머리를, 산의 꼬리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뾰족뾰족한 바위 능선을 오르내리는 재미가 각별하다. 산 아래에는 가덕도에서 통영까지 맑고 푸른 다도해가 펼쳐져 산행 내내 경쾌한 발걸음을 놀릴 수 있었다. 산행거리도 약 10㎞로 길지 않아 별 무리가 없다. 산행시간 역시 4시간가량이면 충분하다.
포로수용소를 관리하던 옛 미군 통신대.
산행은 거제시 체육관 위 아스팔트 도로에 진입하면서 시작한다. 5분쯤 걷다 아스팔트 도로를 버리고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5분가량 후 나오는 갈림길에서는 그대로 직진한다. 5분쯤 후 굴다리를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여기서 25분가량 걸으면 나타나는 임도 사거리까지 자드락길변에 6개의 크고 작은 돌탑이 세워져 있어 마음이 경건해진다. 임도 사거리부터 길이 가팔라진다. 30분가량 숨을 헐떡이며 비탈길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앞쪽으로는 앵산 대금산 금성산 옥녀봉 북병산 등 거제 11명산들이, 뒤쪽으론 통영 미륵산과 고성 구절·벽방산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30m가량 가면 삼거리(434m)가 나온다.
거제시청 둘레에 조성된 고현성.
삼거리에서부터 닭벼슬 모양의 기암들이 첩첩 이어진다. 30분쯤 후 정상에 도달하면 다도해 조망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진행 방향의 능선 끝에 또 다른 거제 11명산인 선자산과 노자산이 우뚝하다. 정상에서 선자산 쪽으로 10분쯤 가면 오른쪽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의상대가 있다. 10분가량 후 통신탑에 이르고, 여기서 10분쯤 더 가면 파손된 벽돌 건물들이 나온다. 6·25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를 관리했던 미군 통신대 건물 잔해다. 60여 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선연하다. 이곳 이정표는 삼거리로 돼 있지만, 아스팔트 임도가 개설돼 실제는 사거리다. 갈수록 흙길이 아스팔트에 잠식돼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20분쯤 내려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임도를 따라가지 않고 왼쪽 자드락길로 하산한다. 30분이면 임도에 닿고, 여기서 왼쪽으로 2분쯤 더 가 만나는 갈림길에선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5분가량 후 굴다리를 지나면 대동다숲아파트에 이른다. 아파트 내부를 관통해 간선도로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 떠나기 전에
- 포로수용소·고현성도 둘러볼 만
거제시 고현동 일대에는 6·25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유적이 즐비하다. 1950년 11월 27일, 고현·수월·양정지구 1080만여 ㎡의 땅에 설치됐던 포로수용소에는 포로가 많을 때는 인민군 15만여 명, 중공공 2만여 명, 의용군과 여자포로 3000여 명이 수용됐다. 시설은 포로들이 머물렀던 막사와 포로를 심사했던 법무관실, 제빵공장 등이 있었다.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들 간에 유혈 살상 사건이 자주 발생했으며,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인 돗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 갈등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포로들이 본국으로 송환된 뒤 시설은 폐쇄됐다. 현재 잔존시설을 보수해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만들어 일반에 유료 개방하고 있다.
공원 입구에는 흥남철수 때 1만4000명의 피난민을 태워 월남시켰던 메레디스 빅토리호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 배는 전후 퇴역했다가 월남전에 다시 투입된 뒤 중국에 고철로 팔려 1996년 해체됐다.
거제시청 뒤편에 남아 있는 고현성(경남도 기념물 제46호)도 볼 만하다. 이 성은 조선 전기에 돌로 쌓은 길이 2㎞가량의 평지 읍성으로 1663년(현종 4)까지 거제군의 관아로 사용됐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921m, 높이 4m로 기록돼 있으나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부서져 지금은 서남쪽 600m가량의 성벽만 남아 있다.
# 교통편
- 하단역서 거제행 2000번 탑승
- 해명정류장서 100번 버스 환승
부산 사하구 하단동 도시철도 1호선 하단역 정류장에서 부산~거제 2000번 급행버스를 타고 거제시 맑은샘병원 정류장에서 내린다.
이어 인근 해명 정류장에서 백병원행 100번 일반버스를 갈아타고 고현동주민센터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거기서 600m가량 걸어 올라가면 산행 출발지인 거제시 체육관이 나온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출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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