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루돌프는 사슴 아닌 순록… 코에 모세혈관 많아 빨갛죠
순록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거리에 울려 퍼지는 대표적 캐럴 '루돌프 사슴 코'의 가사입니다. 이 캐럴의 주인공이자 산타할아버지 썰매를 끄는 루돌프는 사슴이 아니라 바로 순록입니다. 외국 가사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순록이 사슴으로 바뀐 거죠.
사슴이 몸길이 150㎝, 몸무게 42~90㎏ 정도인 데 비해 순록은 몸길이 220㎝, 몸무게는 최고 318㎏일 정도로 몸집이 크지요. 순록은 북극 툰드라 지역이나 산악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데, 스칸디나비아와 그린란드는 물론 러시아, 몽골, 캐나다, 시베리아 등 추운 지방에 서식하고 있어요. 먹이를 찾아 1년에 5000㎞를 이동한다고 합니다.
◇루돌프 코가 빨간 이유
캐럴에서 루돌프의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순록 코가 실제로 반짝거리거나 빛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코가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네덜란드의 캔 잉세 교수 연구팀은 '루돌프의 코가 빨간 이유'라는 연구 논문을 2012년 12월 영국 의학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사람과 순록 코 내부 혈관을 현미경으로 촬영해 시각화했어요. 모세혈관의 밀도와 혈액 흐름을 비교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보다 순록의 코 점막 내부 모세혈관 밀도가 25% 높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코에 모세혈관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더 붉게 보입니다.
▲ /그래픽=안병현
특히 순록은 몸의 다른 부위보다 코 온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어요. 순록은 추위를 막아주는 두툼한 털 때문에 몸에서 나는 열을 코와 입으로 내보낸대요. 그래서 열화상 카메라로 순록을 비추면 온도가 높은 코 주변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죠.
미국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1955년부터 65년째 크리스마스 무렵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산타클로스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루돌프 코에서 방출되는 열을 감지해서 산타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어요.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 감지
순록의 눈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2011년 영국 런던대 안과학 연구소는 순록이 볼 수 있는 빛의 종류에 대한 실험을 통해 자외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연구팀은 "순록이 주로 서식하는 북극에서는 밤이 6개월 이상 지속하기 때문에 순록의 눈이 환경에 적응해 자외선을 볼 수 있도록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순록은 또 밤에 빛을 비추면 눈이 빛을 반사해요. 야행성 동물들은 어두운 밤에 빛을 증폭하기 위해 눈에 반사막이 있어요. 그런데 순록은 이 반사막을 통해 눈에서 나오는 빛이 계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름에는 눈에 빛을 비추면 반사되는 빛이 금색을 띠지만 겨울이 되면 파란색이 된대요. 반사막의 단백질 구조 때문에 계절별로 차이가 생기는데요. 여름에는 반사막의 단백질 구조가 헐거워지지만, 빛의 양이 적은 겨울에는 단백질 구조가 촘촘해진답니다.
◇기후변화로 순록 식습관도 변화
순록은 기후변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북극 툰드라 지역의 순록은 지의류(地衣類)를 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지의류는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곰팡이 같은 진균류가 공생하는 생물인데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하기 때문에 순록을 비롯한 많은 북극 동물의 주된 먹이입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기후변화로 북극에 내리는 눈이 줄어들고 비가 많아지면서 비가 얼어붙은 두꺼운 얼음에 지의류가 덮여버렸어요. 눈에 덮여 있을 때는 코와 입술로 눈 속을 헤집어 지의류를 찾을 수 있었지만, 두꺼운 얼음이 생겨 지의류를 먹기 어렵게 됐죠.
지난해 4월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 브라게 한센 교수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순록의 먹이 변화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어요. 연구팀은 순록 중에서도 북위 79도의 매우 추운 지역에 사는 스발바르 순록을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추적 연구해 기후변화를 겪은 스발바르 순록이 언 땅에서 지의류나 풀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3분의 1이나 되는 개체가 해안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해안과 내륙의 순록 배설물을 수집해 배설물의 탄소와 질소, 황 등의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순록들이 이전에는 섭취하지 않던 해초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순록의 식습관이 기후변화로 변하게 된 거죠.
지난 2014년에는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린 캐나다 영구 동토층에서 700년 된 순록 배설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배설물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바이러스가 다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2016년에는 시베리아에서 1941년 전 사망한 순록의 사체가 역시 기후 이상으로 녹았는데, 사체에서 나온 탄저균이 주변 토양과 물로 흘러 들어가 2000마리가 넘는 순록이 탄저균에 감염됐습니다. 인근 마을로도 전염돼 12세 소년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격리 입원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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