桃:복숭아 도. 李:오얏 리. 不:아니
불. 言:말씀 언.
下: 아래 하. 自:스스로 자. 成:이룰 성. 蹊:지름길 혜.
☞ 도리(桃李)는 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있어 사람들이 모이므로, 그 밑에는 저절로 샛길이 생긴다.
즉,
덕(德)이 있는 자는 잠자코 있어도 자연히 그 덕을 사모하여 사람들이 따른다.
[출전]『史記』 李將軍列傳
[내용] 전한(前漢)의 장군
이광(李廣)은 농서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예, 특히 활쏘기에
뛰어나 기원전 166년에 흉노가 침입해 왔을 때 그 격퇴에 힘썼다.
그 후로 자주 전공을 세워 북쪽 변경이
태수가 되었다.
흉노는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하여 이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감히 침공해 오지 못했다. 그의 용병은 알기 쉬웠으며, 부하를 사랑하였으므로 모두가 기꺼이 그의 지휘에 따랐다. 행군 중 물이나
풀이 있으면 부대를 쉬게 하고, 소수의 정찰병을 보낼 뿐이었다.
기원전 121년, 4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출전했을 때 4만의 흉노군에게 포위 당했다. 그는 부하에게 명하여 원형의 진을 만들게 하고, 자기도 강궁을 가지고 적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이 떨어져 가자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그는 침착하게 적의 부장을 쏘아 쓰러뜨렸기 때문에 흉노는 두려워서 근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 진영을
굳게 지켜 원군에게 구출되었다.
그는 선전했으나 부하를 많이 잃어
후(候)에 봉해지지 않았다. 뒤에 대장군 위청(衛靑), 곽거병(藿去病)이 출진할 때 종군할 것을 원했으나 무제(武帝)는 그의 노령을 염려했다.
그러나 재삼 요청하므로 무제는 하는 수 없이 이광을 위청의 한 부장(部將)으로 임명했다. 위청은 명령대로 그를 우장군으로 종군케하고, 동쪽 길을
가게 하여 막북(漠北)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광은 도중에 길을 잃는 등 애로가
많아 기한 안에 당도하지 못했다. 흉노에게 애먹고 있던 위청은 이광을 의심하고, 무제에게 그를 벌하라고 상주했다. 그는 모든 죄는 자기에게
있다며 부하를 감싸고 병사(兵舍)로 돌아와
"60이 넘어 심판을 받는
치욕은 견딜 수 없다"며 자결했다. 그의 죽음을 듣고 장병은 물론 그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마천은 이광을 칭송하여 그의
저서《사기(史記)》〈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장군은 언변은 좋지 않았으나, 그 덕과 성실함은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복숭아와 오얏 꽃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桃李不言:덕 있는 사람의 비유] 그
아름다움에 끌려 사람들이 모여들어 나무 밑에는 자연히 샛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下自成蹊]."
위 사진은 2006년 1월 17일(화) 강촌
검봉/봉화산 연계산행 時
'강선봉'을 오르는 도중에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