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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안개 속에 숨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06. 9. 20.

 

 

 

 

 

안개 속에 숨다 /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위 사진은 2006년 1월 17일(화) 강촌 검봉/봉화산 연계산행 時

    '강선봉'을 오르는 도중에 찍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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