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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강화도의 산&길

강화 올레 - 이리 걷고 저리 걸어도 좋은 가을 강화를 걷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0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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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걷고 저리 걸어도 좋은 가을 강화를 걷다

레이디경향 | 입력 2009.11.19 17:06

 
역사와 문화의 고장 강화도는 특유의 포근한 매력을 지닌 섬이다. 걷다 보면 산과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만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야트막한 산과 논밭이 만드는 따스한 풍경은 지친 마음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 길 위에서, 간만에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걷기가 좋다, 강화가 좋다

지나가는 유행인가 싶던 걷기가 지속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올 한 해에만 전국 각지에서 수백여 종의 걷기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걷기운동과 문화답사를 결합한 '도보 여행'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매달 수십 권의 걷기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걷기가 몸에 좋다는 것 정도야 누구나 알지만 막상 운동화 끈 조여 매고 나서기란 쉽지 않다. 직접 걷기 여행에 나서기로 하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강화 올레를 점찍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넉넉잡고 3시간이면 닿는 곳에 '산티아고' 못지않은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글로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제주 방언인 '올레'는 동네 길의 넓은 골목으로 연결되는 집 앞의 좁은 골목길이란 뜻이다. 제주 올레길도 그리 좁다란 길만은 아니듯, 올레는 이제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길의 총칭이란 고유명사가 되어가는 듯하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막역한 사이인 한의사 이유명호씨가 품어낸 길, 강화 올레는 등산로를 끼고 있어 다른 길보다 높고 낮음이 두드러지지만 산 위에서 보는 절경, 바다에 이르러 맞이하는 낙조의 풍광은 몇 시간의 여정이 아깝지 않은 순간을 선물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 가장 특별하지는 않다는 것, 목적지가 아니라 걸어가는 여정이 소중하다는 것이 걷기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적어도 강화도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맘껏 자연을 호흡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

강화도는 오래전부터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장소이며 외국의 문물이 바닷길로 들고 나던 관문이기도 했다. 바닷가를 따라 외국과의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섬을 빙 둘러 만든 53개의 돈대를 만날 수 있다. 돈대에 쌓인 돌만큼이나 애틋한 역사를 간직한 섬, 멀리 바라보이는 북녘 땅이 실향민의 상처를 달래주는 섬이 바로 강화다. 야트막한 강화도의 산과 논밭이 만드는 따스한 풍광이 더 특별한 것도 그래서일 듯싶다.


1 봉천산 중턱에서 바라본 강화의 벌판. 2 옛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듯한 하점면 5층 석탑. 3 봉천정에서는 탁 트인 하늘과 바람을 독차지할 수 있다.

강화 올레 1코스 봉천산과 창후 수로

1코스는 봉천산을 끼고 호젓한 등산을 즐기다가 하산 후 수로길을 따라 평지를 4km가량 걷는 코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수로길만 걸어도 된다. 봉천산은 해발 291m로 높지 않고 잘 자란 소나무 숲과 맨발 지압보도가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하점면 면사무소 뒤편으로 난 등산로 입구가 코스의 시작이다. 운치 있는 소나무길 사이로 난 지압보도는 전날(2코스를 먼저 걸었다)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야트막한 오르막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수터가 나타난다. 약수 맛은 특별하지 않지만 잠시 쉬면서 선선한 바람을 즐기기에 맞춤이다. 좀 더 올라가면 능선길과 계곡길이 나타나는데 능선길을 택했다. 가파른 바위길이 잦아질 무렵 등성이 너머 탁 트인 조망이 나타났다. 이미 정상에 오른 양 잠시 여유를 부려봤다. 조금만 더 오르면 봉천산 정상이다. 쉬엄쉬엄 올라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봉천대는 고려 시절 조상을 도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라고 한다. 탁 트인 봉천정에 서면 황해도 연백군, 개풍군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봉천대 옆(올라온 길 옆) 경로를 택했다. 그래야 강화에서 유일한 고려시대 석탑인 하점면 5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내려오는 길이 헛갈릴 수 있으니 '석탑' 이정표를 잘 보아야 한다. 석탑은 경로에서 슬쩍 오른쪽으로 비켜나 있다. 조금만 내려가면 이제 온전한 평지길이다.


고려시대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봉천대.

큰길(48번 국도)에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조금 걷다 하점초등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 수로길로 내려섰다. 약 4km, 수로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석모도를 바라보고 걸었다. 평지길이지만 구불구불한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들판을 가로질러 종점인 창후리 포구에 닿는다. 무태돈대에서 보는 낙조가 그렇게 멋지다는데, 시간이 일러 보지는 못했다.

포구가 군내버스 종점이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강화버스터미널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근처에서 1박을 한 후 강화 올레 두 번째 코스를 걷거나 창후리 선착장에서 교동도 가는 여객선을 탈 수도 있다. 배는 15분에 한 번씩 운항한다. 선착장 옆에는 대하와 전어를 파는 곳이 있다. 비록 허름하지만 펄펄 뛰는 대하가 1kg에 3만원이고 5천원만 더 내면 직접 구워준다. 맛있다고 소문난 '가을 전어'도 추천.

코스 정보

●서울 신촌 그랜드마트 뒤편 시외터미널에서 강화 가는 버스를 탄다. 강화버스터미널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요금은 4천2백원). 터미널에서 군내버스로 이동하는데 하점면 가는 버스를 타고 '하점면 면사무소'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 지나 솔정삼거리에서 좌회전, 부근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하점면 면사무소가 나온다.
●하점면사무소▷봉천산 입구▷약수터▷봉천대▷봉천정▷5층 석탑▷농로길▷하점교▷창후리 해안길▷창후리 포구
총 14km, 도보 6시간 정도 소요.


1 낙조봉에 서면 내가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2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는 봉천산 등산로. 3 고즈넉한 백련사. 강화 올레 2코스의 시작 지점이다.

강화 올레 2코스 고려산과 망월돈대


고려산은 조금 더 난코스다. 해발 435m의 정상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출발 전에 식수도, 먹을거리도 든든히 챙기고 출발해야 한다. 시작 지점인 백련사는 48번 국도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백련사 입구에 내려 1시간가량 걸어 들어갔다. 주차할 공간은 있지만 일주 코스를 마친 후 차를 가지러 오기 힘들므로 버스 편이 낫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백련사 아래 찻집 '차향따라'에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즈넉한 산사인 백련사 옆 북쪽 능선으로 난 등산로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코스가 시작된다. 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화려하다고 소문난 진달래 밭을 품은 산이다. 때문에 1년 중에서 4월 산행 코스가 가장 좋다.



억새는 가을이 제철. 멀리 석모도가 보인다.

가을에는 억새 군락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레이더 기지가 있는 정상보다는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며 전망대에서 경험하는 시야가 더 아름답다. 잠시 땀을 식힌 후에는 한참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고려산 종주 코스다. 중간 중간 고인돌군이 인사를 건넨다. 낙조봉까지는 줄곧 적석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되지만, 낙조봉에서 억새군락과 내가(고려) 저수지를 조망한 후에는 방향을 망월리 쪽으로 잡아야 한다. 등산로가 복잡해 헛갈리기 쉬우므로 꼭 체크할 것. 이쯤 오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능선을 따라 종주하는 코스가 조금 힘겨울 수 있지만 앞으로는 서해가, 뒤로는 강화의 너른 벌판이 펼쳐지기 때문에 어느새 힘든 것도 잊어버린다. 장사바위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청명하다 못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하산길은 인적이 드물어서 여러 차례 꿩을 놀래키기도 한다.

큰길에 있는 산화휴게소(마실거리를 파는 유일한 곳이다)에서는 지친 다리를 쉬어주는 게 좋다. 거의 다 오긴 했지만 수로를 따라 망월돈대까지 향하는 코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창후 수로보다는 한결 가까운 길이다. 망월돈대에서는 석모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돌아갈 때는 산화휴게소 앞에서 강화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타거나, 제방길을 따라 창후리 포구까지 걸으면 된다.

강화 올레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큰돈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한의사 이유명호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큰맘 먹고 벼르고 별러 비행기 타고 가는 제주 올레와 달리 강화야말로 시시하고 만만하고 잘 알려진 듯해도 속살은 아직도 곱디고운 걷기의 천국이다. 내 맘대로 산과 들을 마구 찜할 수 있고, 승용차 없어도 얼마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화에서라면 주머니가 가벼워도 마음만은 부자가 될 수 있다."

덧붙이면, 강화에는 강화 올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화군청이 의욕적으로 발굴, '강화 나들길'이라 이름 붙인 걷기 여행 코스도 여럿있다. 해안을 따라 걷는 '강화 둘레길'도 매력적이다. 걷고 또 걸어도 언제나 새로운 곳이 강화다.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걷기 위해' 떠나야겠다.



장군바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사진 위). 창후리 포구 근처에서 본 일몰. 강화에 가면 꼭 낙조를 봐야 한다.

코스 정보

●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고려산행 군내버스를 타고 백련사 입구에서 하차, 3km 정도 걸으면 백련사가 나온다.
● 백련사▷고려산 군부대▷등산로(나무 데크, 적석사 방향)▷고천리 고인돌군▷억새밭▷낙조봉(망월리 방향)▷장사바위▷미꾸지고개(망월리)▷산화휴게소▷내가5교▷4교▷3교▷망월돈대
약 10km, 도보 5시간 정도 소요.

책으로 다시 보는 걷기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현대문학, 1만1천원)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걷기의 본질을 말하는 책.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 본문 중에서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

오시마 기요시 지음(전나무숲, 1만원)
뇌 과학자인 저자는 걷기가 마음과 뇌에 놀라운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뇌와 스트레스의 관계를 규명하며 웃으며 걷기, 음악 들으며 걷기, 사진 찍으며 걷기 등 즐겁게 걸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걷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는 책.

「걷기의 철학」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개마고원, 9천원)
걷기는 자신감을 주고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 빛 그리고 지평선과의 만남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강화한다. 우리 몸은 현실에 스스로를 뚜렷이 각인하며 실제로 겪은 경험을 통해 정신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준다."
"산행은 의지와 자유를 가르치는 학교다. 야망을 품고자 하는 사람은 결의와 자신감을 갖고 시간을 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산행이 가르쳐주는 가장 귀중한 비밀은 노력과 성공의 차이다." - 본문 중에서

Tip
이것만은 꼭 알고 가자!


들판이나 등산로, 수로길에서는 가게를 찾기 힘드니 물과 간단한 식사는 꼭 챙겨 간다. 화장실은 하점면 면사무소와 창후리 포구, 백련사를 이용하면 된다. 강화 벌판에서는 북서풍을 정면으로 맞으니 바람막이용 외투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편한 운동화는 필수,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등산화라면 더욱 좋다.


고려산 정상까지는 시멘트길과 흙길이 섞여 있다. 하늘을 벗하며 걷기 좋은 길.

강화에서 먹고 잘 곳

● 서해복회집(032-933-7514~5) 48번 국도 종점 창후리 포구 앞에 위치. 해질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다. 자연산 황복을 비롯한 복회와 계절에 따라 자연산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민박도 가능.
● 건강손두부 하점면 면사무소 앞에 자리한 손두부 전문점.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한 코스를 걷고 싶을 때 추천한다. 인터넷에도 전화번호가 나오지 않는 집이지만 손맛은 일품이라고.
● 푸른언덕(032-934-2151) 송해우체국 옆에 있는 소문난 맛집. 간장게장 전문이며 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누룽지가 맛있다. 생선백반도 가격 대비 추천 메뉴.
● 우리옥(032-934-2427) 강화읍내 신문리 중앙시장 안에 있다. 소박한 백반을 맛볼 수 있는 곳. 40년째 이어오는 손맛이 궁금하다면 찾아가보자. 백반과 대구찌개, 병어찌개가 먹을 만하다.
● 한울다솜펜션(032-391-2979) 한울다솜은 '영원한 사랑, 큰 사랑'이란 뜻.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하고 구석구석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황토방과 다양한 객실을 갖추었고, 창후리 포구에서 가까워 올레길 숙소로 좋다.

■글 & 사진 / 위성은(객원 기자) ■자료 & 사진 제공 / 이유명호, 강화나들길 카페(cafe.daum.net/vita-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