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2007년 6월 6일 현충일에 다녀온 이후 3년만에 다시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나선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 5부를 시작하며...
▼ 18시 18분 - 용출봉에 올라...
▼ 18시 19분 - 가사당암문을 향해...
▼ 의상봉과 원효봉, 그리고 국녕사 좌불...
▼ 국녕사 좌불을 당기니...
▼ 18시 24분 - 코끼리바위
▼ 18시 31분 - 가사당암문
▼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녕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웠다.
▼ 18시 32분 - 이제 국녕사를 향해...
▼ 18시 36분 - 국녕사 삼성각
▼ 국녕사 대불
▼ 18시 54분 - 국녕사에서 물을 공급받고 중성문을 향해...
▼ 메발톱
▼ 19시 07분 - 법용사 입구를 지나...
▼ 19시 13분 - 중성문에 도착...
▼ 중성문(中城門)
중성문은 서쪽의 비교적 낮은 지역에 위치한 대서문이 함락되었을 때, 제 2의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의상봉(義相峯)과 원효봉(元曉峯) 사이의 협곡에 축조한 성문이다.
전면의 성곽은 북한산성 축성 다음해인 숙종 38년(1712년) 산성수비 봉한대책의 일환으로 축조한 중성이다.
당시 별도의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지형이 평탄하고 취약한 대서문 방면이 적에게 뚫리더라도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여 행궁, 유영, 창고 등 성내 시설물과 인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성곽의 규모는 영취봉과 증취봉 방향으로 약 200m에 달하며 성문으로 홍예 형태의 중성문과 그 외에 시구문, 수문을 건립하였다.
중성문의 당층문루는 19세기 말, 수문은 1915년 8월의 홍수에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했다.
▼ 중성의 문루와...
▼ 중성 계곡 건너 성벽과 이어진 중성 수문이 있던 곳을 살피고...
▼ '중성 수문' 위로 성돌을 안정적으로 놓기 위한 홈이...
▼ 19시 19분 - 중성 시구문을 통과하여...
▼ 19시 20분 - 이제 북한산성 16성문 순례의 마지막 관문인 대서문을 향해...
▼ 19시 07분 - 법용사 앞을 지나...
▼ 19시 30분 - 선봉사 화단에는...
▼ 19시 33분 - 새마을교를 건너...
▼ 19시 38분 - 무량사 앞을 지나...
▼ 19시 43분 - 드디어 대서문에 도착...
▼ 19시 44분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떠난 지 정확하게 11시간 만에 대서문에 도착...
▼ 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中 동서남북, 4개 방위 中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으로써 군사상 적(당시 청, 왜)의 목표가 되기 쉬운 취약지이기도 하였다.
대서문은 홍예식에 문루를 갖추고 있다. 현재 문루는 복원된 반면 문짝과 문루 양편의 협문 그리고 담은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용마루와 추녀마루의 일부가 폭풍우로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되고 있어 최근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또한 육축은 무사석(무사석)으로 정교하게 수축하였으나 전쟁의 상처로 보이는 흔적이 있으며, 내부에는 차량 진동으로 인하여 벽석이 균열되는 등 파손이 심화되고 있다. 육축위에는 몸을 숨기고 총포를 쏠 수 있는 문루여장 전면에 10개 두었는데, 일반 성벽의 여장과는 달리 한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된 평여장이며, 총구가 아래로 향한 근총안을 1개씩 둔 것이 독특하다. 이 문은 성내 북한리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하던 애환이 깃들인 문으로 5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를 하여 달구지에 싣고 새벽같이 이 문을 통하여 서대문 영천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또한 이 일대는 살구나무가 많아 이른 봄철이면 화사한 살구꽃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로 붐비었으며 성곽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아름다워 문인, 화가 등 예술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였던 최헌길이라는 분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 19시 57분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며 북한산성 16성문 순례를 모두 마치고...
▼ 20시 08분 - 남원추어탕에서 뒤풀이 겸 저녁식사를 하고...
▼ 북한산성 16성문 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건배...
☞ 이것으로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오다'를 마친다.
-▥☞ 1부[북한산성 탐방안내소→수문지→서암문(시구문)→원효암→전망바위→원효봉]는 여기를 클릭.☜▥-
-▥☞ 2부[원효봉→북문→상운사→대동사→약수암→위문→노적봉 안부→용암문→북한산 대피소]는 여기를 클릭.☜▥-
-▥☞ 3부[북한산 대피소→동장대→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청수동 암문→715.7봉]는 여기를 클릭.☜▥-
-▥☞ 4부[715.7봉→나한봉→나월봉→부왕동 암문→증취봉→용혈봉→동자승 바위→자명해인대→용출봉]는 여기를 클릭.☜▥-
-▥☞ 5부[용출봉→가사당 암문→국녕사→중성문→중성 수문→중성 시구문→대서문→북한산성탐방 안내소]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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