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곳에 가고싶다☞/♤ 그섬에 가고싶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다도해 기행] <5>목포 삼학도·고하도 - '목포의 눈물' 삼학도… '이순신의 성지' 고하도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7. 4.

<5>목포 삼학도·고하도 '목포의 눈물' 삼학도… '이순신의 성지' 고하도

<5>목포 삼학도·고하도 '목포의 눈물' 삼학도… '이순신의 성지' 고하도

  • 목포=권경안 기자 
  • 입력 : 2013.07.04 04:00

'목포의 눈물' 삼학도… '이순신의 성지' 고하도

 
다도해가 시작되는 목포 앞바다 고하도. 이순신 장군의 얼이 새겨진 이 섬에 목포대교가 연결돼 승용차로 갈 수 있다.
요트로 섬을 둘러볼 수도 있다. / 김영근 기자
유달산 아래 지척으로 내려다보이는 목포 삼학도.

이 섬이 옛 모습을 찾았다고 들었지만, 섬들 사이로 낸 수로(水路)에서 카누를 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조심스레 균형을 잡고 카누를 탔다. 뒷사람과 호흡을 맞춰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점차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예전 떠들썩했다는 술집들, 먼지 날리며 하역(荷役)에 바빴던 풍경들은 더 이상 삼학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목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삼학도, 유달산뿐 아니라 '목포의 눈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 이난영의 공원이 대삼학도 중턱에서 다도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유달산에는 노래비가 있다.

1969년 목포 사람들이 세웠다.

1934년 조선일보가 공모한 향토 노래 가사 당선작이 그 가사였다.

이 삼학도에 마리나가 바닷가 쪽으로 생겼다.

이곳에서 요트를 타면 목포 앞바다를 시원스레 한 바퀴 돈다. 새로운 관광의 길이었다.

서남해에 점점이 뿌려진 섬들이 다도해의 다도(多島)들이렷다.

서해와 남해의 중간에서 꺾어지는 목포 앞바다의 육지 쪽 섬이 고하도다.

마리나에서 출발한 요트가 바닷물을 갈랐다.

새로 이 섬과 연결한 목포대교 밑을 지났다. 고하도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새로 항만을 만들어 배후지를 만들었지만, 고하도는 뭐니뭐니해도 '역사의 섬'.

'서북풍을 막을 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적합했다.'

1597년 10월 29일, 충무공 이순신은 10여척으로 일본 수군을 대파,

해전사에 빛나는 명량해전 직후 이곳에서 바닥난 전력(戰力)을 재정비했다.

108일 동안 머물며 군사와 군량미를 다시 확보했다.

이듬해 퇴각하는 왜군들을 끝까지 섬멸하려는 의지는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남해 다도해 사람들이 이 충무공에게 힘을 보탰다.

지금도 해마다 이 충무공을 기리고 있으니 역사는 면면하다.

이 섬에는 유달산이 보이는 쪽으로 충무공을 기리는 모충각(慕忠閣)이 있었다.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유달산 노적봉을 마주하고 있었다.

고하도 앞쪽에는 군함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 장군의 후예들일 것이다.

고하도는 일제가 미국산 육지면(면화)을 처음 들여와 경작 가능성을 시험했던 곳.

재배에 성공한 면화는 급속하게 퍼졌다.

쌀과 면화, 소금이라는 '삼백(三白)'의 교역항이 바로 목포항이었다.

이난영은 '목포는 항구다'도 불렀으니, 이런 내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트는 평화광장 앞바다로, 다시 갓바위 부근으로 나아갔다.

유달산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보인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격자 가로(街路) 지대는 일본인들의 거리였다.

그곳에는 일본의 침탈과 지배를 증거하는 영사관과 동양척식 건물 등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동양척식 건물은 역사박물관으로, 일본절(동봉원사)은 문화센터로 탈바꿈했다.

일본식 정원을 이어받아 가꾼 이훈동 정원은 진귀한 문화재와 정원을 무료 관람하도록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 여행수첩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시내를 거쳐 삼학도로 간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목포대교 방향으로 가면 고하도에 이른다.

삼학도 ‘마리나’에서 요트를 타고 고하도 등지를 둘러볼 수 있다.

목포종합관광안내소 (061)270-8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