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돌이 박영래의 만화등산백과(월간 山)
등산 준비하기 - 의류(1)
털이 수북한 짐승과 달리 인간은 피부 바로 곁에 따뜻한 공기층을 마련해 줘야 몸이 편안해집니다. 옷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추위나 비바람으로 이 따뜻한 공기층이 피부로부터 날아가 버리면 체온은 급격히 낮아집니다(이 상태를 방치하면 하이포서미아(hypothermia)에 걸립니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리고,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아주 무서운 증상이죠).
하지만 옷은 더울 때 시원하게 해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무리한 운동으로 체온이 상승하거나 기온이
너무 높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체온이 오르면서 에너지가 빠져나가 기진맥진하게 됩니다(이 역시 방치하면 하이포서미아 만큼이나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껴입기' 입니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옷장에 많은
옷을 걸어놓고 기온에 맞게 꺼내 입으면 그만인 일상생활과 달리 산에서는 무한정 가지고 오를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큰 곤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등산의류를 준비할 때에도 '위험을 계산' 해야 합니다. 계산방법은 옷에 어떤 기능을 부여할 것인가
인데, 이걸 계산하려면 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신체의 생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더위는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으므로 추위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고도를 100m 높이면 기온은
0.6도씩 내려갑니다. 가을 속초시의 기온이 영상 20°C라면 해발 1,708m인 설악산 정상은 약 10°C 낮은 영상 10°C쯤 됩니다.
늦가을 기온이죠.
그런데 정상에 비가 내리며 바람이 분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산에서는 비가 내리면 반드시 바람이 붑니다.
특히 능선에서는 더욱 그렇죠. 젖은 옷은 마른 옷보다 25배 빨리 체온을 빼앗아 갑니다.
바람은 체감온도를 급격히 낮춥니다. 영상 10°C에서 초속 5m의 바람이 불면 우리 몸은 5°C의 초겨울
기온으로 느끼고, 초속 10m의 바람이 불면 한겨울 영하의 기온으로 느끼게 됩니다.
설악산 산행을 예로 들어 옷에 그능을 부여해 보겠습니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로 들어설 때까지는 비도
오지 않아 반팔티에 반바지로도 가능했습니다.
비선대에서 잠시 쉬고 있으려니 골짜기를 타고 한줄기 광풍이 지나갑니다.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았습니다.
살갗에 남은 식은땀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체온을 빼앗은 겁니다.
그래서 피부와 맞닿아 있는 옷은 땀의 처리가 중요합니다. 원단 속성을 말하는 흡습속건성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럴 때 쓰입니다. 내의(피부접촉층)는 땀을 빨리 빨아들여 바깥으로 내보내는 기능이 좋아야 합니다.
내의라고 하니까 '난닝구(러닝셔츠)'와 '빤스(팬티)'를 연상하시겠지만, 등산에서 말하는 내의는 피부에 직접
닿는 옷 중에서 가능성을 가진 것을 모두 말합니다(산에서는 면내의나 면팬티를 입지 마세요. 땀에 젖으면 잘 마르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쥐약'
입니다).
등산장비점에 기능성 내의와 속건성 티셔츠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쾌적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고산등반에 나서는 사람들은 이예 런닝셔츠와 팬티를 가져가지 않고 고소용 내의(흔히 보온내의라고 하죠)만 챙깁니다. 더우면 고소용 내의만 입고
운행하죠(요즘 등산용 내의는 디자인이 세련돼서 겉에 입어도 문제없습니다).
이제 양폭에 거의 다 왔습니다. 비선대에서 2시간쯤 걸렸군요. 해발은 약 800m쯤 됩니다. 속초보다 약
5°C 내려간 영상 15°C쯤 됩니다(오르면서는 더워서 땀이나 모자도 거추장스러울 지경이었는데,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있으니 한기가
듭니다).
배낭에서 파일재킷을 꺼내 입습니다. 온기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바깥의 찬 기운이 전달되지 않는 공기층이 몸과
옷 사이에 확보됐으니까요.
파일재킷이나 이 옷을 보온의류(보온에어층)라고 부르겠습니다. 사실 모든 옷은 보온기능이 있습니다. 즉
움직이지 않는 공기층(dead air층)을 확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담당기능의 고유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보온의류 하면 대부분 우모복(다운파카)을 떠올리시겠지만, 이 옷은 혹한에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윈드재킷(방수방풍의)과 함께 보호의류(악천후 차단층)로 다루겠습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보온의류로는 긴팔티셔츠나 남방셔츠, 스웨터, 파일재킷 등이 있습니다. 가벼운(얇은) 옷 두어 장이 두터운 옷
한 장 보다 따뜻합니다. 또한 기온이나 운행속도에 따라 옷을 수시로 입고 벗어야 하기 때문에 가벼운 옷 두어 장이 더 효율적입니다(따라서
가을철로 접어들면 여분의 티셔츠와 파일재킷을 항상 배낭 속에 넣어두시기 바랍니다).
이제 무너미고개로 오르렵니다. 점점 가팔라지는군요. 천당폭을 지나 마지막 경사가 급해지는 무너미고개 바로
밑에서 잠시 쉬는데, 갑자기 하늘이 검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재빨리 윈드재킷과 오버트라우저즈를 꺼내 입습니다. 방수투습기능을 가진 이런 옷을 보호의류라고 부르겠습니다.
평상시에는 입지 않다가 악천후가 닥치면 입어야 하는 옷들이지요(언제 나쁜 상황이 닥칠
지 모르니 이것도 항상 배낭에 넣어 두셔야
합니다).
여름에는 윈드재킷으로 상체만 보호하고 젖은 바지는 그냥 입고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습니다만, 가을로
들어서면, 특히 1,000m대 산을 찾을 경우에는 반드시 오버트라우저즈도 준비하셔야 합니다(뼛속까지 한기를 경험하신 후에야 정신 차리지
마시고요).
바람은 데드에어층을 흔들어대며 대류현상을 일으켜 열을 빼앗아 갑니다.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열은 빨리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기온보다 더 추위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소위 체감온도라는 것입니다).
비는 옷을 젖게 해 보온기능을 현저히 떨어뜨립니다. 보온의류 위에 덧입은 윈드재킷은 바람을 막아 안의 따뜻한
공기를 그대로 가둡니다(또한 보온의류를 보송보송한 상태로 유지시켜 전도현상으로 체온이 바깥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혹한에 대비한 우모복은 사실 해외 고산등반에 나서지만 않는다면 국내 산행에서는 한겨울 막영 중 잠옷용에
불과합니다. 당일산행에 우모복을 입고 나오는 사람은 보온의류가 부실하거나 등산 문외한이기 십상입니다(하지만, 그래도 한 장은 있어야 하는 것이
우모복입니다. 한겨울에도 막영할 의지가 있는 한 말입니다).
우모복은 보온재가 자연산 오리털(또는 거위털)인 경우를 말합니다. 보온재를 합성솜으로 채운 것도 있습니다.
우모는 물에 약하지만, 합성솜은 강합니다. 그러나 우모는 접었을 때 부피가 작아 배낭에 넣기 편리합니다만, 합성솜은 부피가 그다지 줄지 않아
배낭에 다른 짐을 넣을 공간을 많이 차지합니다. 서로 장단점이 있지요.
복습하겠습니다. 등산의류는 기능에 따라 내의(피부접촉층), 보온의류(데드에어층), 보호의류(악천후차단층)로
나눴습니다. 내의는 속건성이 중요하고, 보온의류는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하므로 통기성이 좋아야 하며, 보호의류는 방수투습기능과 혹한방어에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등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에서 땀을 흘리는 활동이기에 갈아입거나 덧입을 옷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능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옷을 만드는 원단의 소재의 특성을 보면, 면은 마른 상태에서는 매우 착용감이 좋습니다만, 무게의 몇 배나
되는 물기를 흡수하고, 젖으면 보온효과가 없어집니다. 또한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통기성이 좋아 물에 적셔 입으면 마르면서
기화열을 빼앗아가 체온을 내리는 데 좋습니다(그 대처 원단으로 폴리에스터, 아크릴, 폴리프로필렌 원단이 개발돼 있습니다).
모(wool)는 면처럼 물기를 많이 머금지 않아 젖어도 보온성을 어느 정도 유지합니다만 무거운 것이
흠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모 제품을 찾기 어렵고, 가벼운 파일계(synthetic pile) 제품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다른 소재들은 합성소재가 자연산을 밀어내고 있는데, 유일하게 우모(down)만은 합성 소재에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모는 가볍고 접으면 부피가 작아졌다가도 펼치면 금방 부풀어오르며 보온성을 발휘하는 것이 큰 장점일 것입니다(합성솜은 싸고 보온력도
좋고 물기에도 강합니다만, 우모 보다 무겁고 부피가 그다지 줄지 않는 것이 흠입니다).
나일론은 방풍성이 강합니다만 코팅을 하지 않으면 방수성은 낮습니다. 그래서 폴리우레탄 코팅 제품이 초기에
나왔는데, 방수는 되지만 땀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옛날 얘기죠. 방수투습성 원단의 출현으로 이런 단점은 많이 보강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단점은 있으니 과신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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