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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숲,섬]천년을 이어온 동양최고 돌다리, 진천 농다리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15.

[길,숲,섬]천년을 이어온 동양최고 돌다리, 진천 농다리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충청북도 진천군. 김유신 장군의 고향으로, 동양 최고(最古)의 돌다리로도 알려진 곳이다.
진천 농다리는 생김새가 서로 다른 돌을 얹었지만 비바람과 홍수를 거뜬히 이겨내는 지혜가 숨어있어 천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천년을 이어온 농다리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굴티마을 앞에 있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교각을 세우고 반듯하게 돌을 깎아 만든 다리가 아니라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쌓아 투박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듬성듬성 구멍도 뚫리고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큰 돌을 쌓고 그 사이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년 세월을 이겨낸 다리다.

‘농다리’의 ‘농’자는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혹은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되어 ‘농’이 됐다고도 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농다리 / 이다일기자


생김새 다른 돌이 어우러진 천년 세월

다리를 구성한 돌들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모두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사용했는데 깎거나 다듬지 않았다.
얼기설기 얹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강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과학적 원리와 함께 철학적 뜻까지 담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環與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자석배음양, 즉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을 이용해 고려때 축조했다고 한다.
28개의 교각은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숙(宿)을 응용했고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든 수월교(水越橋)형태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생긴 다리는 빠른 물살에 견디기 위한 구조다.

또한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은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물살을 피하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어눌하게 생긴 돌다리가 천년을 이어온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농다리는 지난 1976년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 28호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24간이 남아있던 것을 고증을 통해 최근 28간으로 복원했다.

세월만큼 오래된 이야기

얽기설기 쌓은 돌로 만든 다리가 천년의 세월동안 이어졌다. /이다일기자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구곡리에서 농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미호천변은 1982년 댐 확장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농다리를 통해 구곡리와 왕래하던 마을이 있던 곳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동냥을 온 도사에게 밥은커녕 소여물을 줘 보낸 후 큰 물난리가 났다는 것.
베풀지 않고 살았던 부잣집은 마을이 수몰된 지금도 저수지 바닥에서 금방아를 찧고 있다고 한다.

또 저수지와 구곡리를 잇는 길을 뚫었는데 이것이 용의 허리를 자른 격이라 비가 많이 오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까지도 마을 노인들을 통해 구전되는 얘기들은 대부분 물에 대한 얘기다.
농다리가 생겨난 이유도 고려시대 부친상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여인이 물을 건너지 못하자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것에서 비롯되니 물과 마을에 얽힌 이야기가 농다리와 함께 천년을 전해온 것이다.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

구산동/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옛 이름은 구산동이다. 안굴테, 박굴테로 불러오다가 내구, 외구마을로 부르기도 했다. 상산임씨 집성촌으로 고려때 부터 이어진 마을이다. / 이다일기자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상산 임씨의 집성촌이다.
고려때 부터 이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지역을 가꾸는데 앞장서고 있다.
천년을 이어온 다리라고 하지만 폭우가 내리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일부 유실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농다리보존회, 농다리지킴이회, 구산동향우회 등 농다리 관련 단체가 복구에 앞장섰다.
최근까지 유실로 인해 24간만 남았던 다리가 고증을 통해 28간으로 복원된 것도 지역단체의 역할이 컸다.

또한 동양 최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자치단체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2000년부터 해마다 농다리 축제도 열린다.
농다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전시관도 만들었고 다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만들어졌다.
살아서 농사를 짓기 위해 건너고 죽어서는 꽃상여에 실려 건너는 사람과 공존하는 다리, 바로 진천 농다리다.

가는길/
중부고속도로 진천IC에서 좌회전, 21번 국도를 타고 성석사거리에서 34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지석마을 지나 우회전하면 농다리 입구가 나온다.
고속도로부터 표지판이 되어 있어 찾기 쉽다.
버스로는 진천읍내에서 문백방면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 9회 운행한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다.

 

농다리 전시관/ 2007년 8월 농다리 축제에 맞춰 개관했다. 농다리의 구조를 비롯해 오랜세월을 견뎌낸 비밀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유명 다리를 보여주는 공간도 있어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 / 이다일기자


농다리/ 농다리 사진을 찍기 좋게 곳곳에 포토존이 들어서 있다. 사진은 구곡리쪽 포토존에서 찍은 모습이다. 100m남짓한 농다리를 건너서 낮은 언덕을 넘으면 미호천 저수지가 나온다. /이다일기자


다른 모양의 돌이 모여/ 생김새가 제각각인 돌들을 모아 다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아래는 크고 넓적한 돌을 대서 교각을 만들었고 사이엔 작은 돌을 괴어 넣었다. 교각 사이를 잇는 장대석 역시 넓고 평평한 돌로 만들었다. 발로 밟으면 흔들거리지만 튼튼한 다리다. /이다일기자


지네다리/ 구불구불한 모양이 마치 지네를 닮았다 하여 동네사람들은 ‘지네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줄기를 따라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선 모양이 수압을 견디기 좋게 설계됐기 때문에 많은 비가 내려도 다리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 이다일기자


고속도로와 농다리/ 진천 농다리는 중부고속도로와 맞닿아 있다. 고속도로로 차를 달리다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 한 자리에 있다. 천년된 문화유산이 시속 110km의 고속도로와 맞닿아 풍취는 떨어지지만 묘한 대비가 되는 풍경이다. / 이다일기자


미호천 저수지/ 본래 학배, 선배, 스승배 등 ‘배’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은 곳이었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언젠가 배가 뜰 곳이라 하여 붙은 지명이라는데 1983년 미호천 개발 사업으로 인해 댐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이곳이 수몰돼 배가 다니고 있다. 농다리 건너편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저수지 풍경이다. / 이다일기자


천년세거비/ 농다리가 있는 구산동은 상산 임씨의 천년 터전이자 집성촌이다. 구산동 애향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2008년 마을에서 비석을 건립했다. 이곳 주민들은 농다리보존회 등 지역 문화유산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 이다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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