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09일(토) 시흥시 물왕저수지-그린웨이-연꽃테마파크-관곡지를 다녀오다.
오늘은 '시흥연꽃테마파크'의 연꽃을 찍으러 가면서
'물왕(흥부)저수지'에서부터 걸어서 '물왕교'를 건너 '월미마을' 입구에서
'시흥시 그린웨이'를 따라가다가 농로로 접어들어
'시흥연꽃테마파크'에서 연꽃을 감상하고,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인 '관곡지'에 들렀더니
마침 '연(蓮)음식 전국경진대회'를 하기에 잠시 구경하고 귀가.
▼ 물왕저수지를 보고자...
▼ 물왕(흥부)저수지
☞ 물왕동 '물왕(흥부)저수지'
1950년대 초부터 낚시꾼들이 찾기 시작하여우리 나라에서 웬만큼 낚시를 한다 하는 사람은 거의 거쳐갔다고 할 만큼 소문난 곳이다. 서울ㆍ안양ㆍ인천ㆍ부천ㆍ안산 등 수도권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데다가서쪽으로는 관무산(일명 성인봉), 남쪽으로는 마하산, 북쪽으로는 운흥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최상급의 낚시터이다.
일반적으로는 물왕저수지이지만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농업기반공사의 공식 명칭은 흥부저수지로 통칭된다. 저수지를 설치한 1945년에 당시의 몽리구역이 시흥군과 부천군이었기 때문에 시흥군의 '흥(興)' 자와 부천군의 '부(富)'를 취한 것이다. 면적은 60ha, 급수면적은 867ha이고, 만수 때의 수심은 7.2m에 이른다. 1975년까지는 주로 재래종인 붕어가 일색이었으나 1976년에 양식계가 구성되어 해마다 치어를 방류하여 어종이 다양해졌다. 1978년에는 초어ㆍ백연어를 각각 3천여 마리씩 방류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전용 낚시터를 만들어놓고 자주 들렀다 하여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인근에는 KBS-TV 드라마 「용의 눈물」로 유명해진 이숙번의 묘와따오기를 작사한 한정동의 묘 및 동요비가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 지명 유래
[물왕동]은 [안말][장자골][능골]의 3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다.[안말]은 “안쪽에 있는 마을”이요, [장자골]은 “장자(부자)가 예전에 살았던 마을”이요, [능골]은 “큰 능을 쓰려고 했던 마을”에서 유래한다.
이 3개의 부락을 총칭하여 현재 사용되는 [물왕동-物旺洞]이라는 마을명은 한자로 <만물 물-物, 왕성할 왕-旺, 마을 동-洞>으로 <만물이 왕성한 마을>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옛 문헌이나 비문을 보면,[물왕동-物旺洞]외에 [물항동-勿項洞][항동-港洞][수다동-水多洞][수동-水洞]이라고도 기록되어있다. [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물이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 퍼온 글 -
▼ 달맞이꽃
▼ 수리산 갈뫼봉(꼬깔봉)이 보이네...
▼ 물왕교를 건너...
▼ 시흥그린웨이 시작점(다리 옆에 있는 안내판)이 보이네...
▼ ?
▼ 시흥그린웨이 안내도
▼ 힘차게 출발!
▼ 왼쪽엔 연꽃이...
▼ 오른쪽엔 코스모스가...
▼ 수크령(결초보은의 풀)
▼ 오늘은 그린웨이가 아닌 농로를 따라...
▼ 소래산이 보이네...
▼ ?
▼ 시흥연꽃테마파크의 하얀천막이 보이네...
▼ 시흥연꽃테마파크에서...
▼ 잠자리
잠자리/ 정호승
잠자리 날개에 낮달 걸리다
잠자리 날개에 초승달 걸리다
어머니 새벽같이 일어나 쌀을 안칠 때
잠자리 날개에 이슬 맺히다
장독대 정한수에 목을 축이다
▼ 가시연
▼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덮치는 거미...
연잎의 지혜 / 법정스님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거리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 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 드리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꺽이고 말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 연밥, 蓮實, 蓮子
▼ 연밥, 蓮實, 蓮子
▼ 연밥은 연꽃의 열매로 연실(蓮實) 또는 연자(蓮子)라고 부른다.
☞ 바로 이 연자(蓮子)라는 이름과 동음인 연자(連子), 즉 ‘연속해서 자식을 얻음’이 연밥이 상징하는 의미가 되었다.
또한 연밥의 씨앗 하나를 연과(蓮顆)라 부르는데 이로 인해 연밥이 연과(連科), 즉 ‘연속해서 과거에 급제’하길 기원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림에서는 연밥을 쪼는 새가 함께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 역시 연자(連子)와 연과(連科)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한 마리의 백로[一路]와 연밥 그림은 일로연과(一路連科), 즉 한 번에 소과와 대과에 급제하길 축원하는 것이다.
미술품에서는 화조도와 책거리도에 연밥이 소재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와전의 연꽃 도안 중앙에 연밥을 그려넣어 길상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 빅토리아 연의 꽃은 피고 하루만에 진다는데...이 꽃은 아직 피지 않은 듯...
▼ 고추잠자리
▼ 청개구리
▼ 물양귀비꽃에 앉은 벌
▼ 수세미꽃
▼ ?
▼ ?잠자리
▼ 관곡지에 애드벌룬이...?
▼ 여기가 관곡지
☞ 관곡지(官谷池)
관곡지(官谷池)는 조선 전기의 명신(名臣)이며 농학자로 이름이 높은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선생과 인연이 깊은 연못이다.
평소 농학 발전에 대해 깊은 연구와 관심을 기울였던 선생은 세조 9년(1463)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게 되었다.
선생이 중국에서 돌아올 때 남경(南京)에 있는 전당지(錢塘池)에서 연꽃씨를 채취해 귀국한 후,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위치: 하중동208)에 재배를 해본 결과 점차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삼아서 안산군의 별호(別號)를 세조 12년(1466)부터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1986년 3월 3일 지정)
그 뒤 수초(水草)가 성(盛)하여 못(池)이 폐(廢)해지자 헌종 10년(1844)에 안산군수에 부임한 권용정(權用正)이 이듬해 봄에 하중동의 장정들을 동원하여 못을 파냈는데, 여름이 되자 연꽃의 잎이 중국 전당의 것과 같이 두 줄기가 자라난 것이었다.
또 못을 관리하기 위하여 하중동 주민 중에서 여섯 명의 연지기(蓮直)을 두고 여섯 명 중 혹 누락자가 생기면 즉시 하중동 주민으로 대체했다.
이들 연지기에는 각종의 노역(勞役), 부역(賦役), 포세(布稅), 양곡세(糧穀稅)를 제외시켜 주고 오직 못만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 달리 꽃의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하며 담홍색이다.
이 못은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權曼衡, 사헌부감찰)의 집가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의 소유가 되어 관리되어 오고 있다.
특히 정조 21년(1797)에는 정조가 수원 현륭원(顯隆園)을 행차하는 길에 안산 관아(安山官衙, 안산시 수암동 256)에 유숙할 때 안산관내의 선비를 대상으로 과거를 실시하면서 어제(御題)로 시제(詩題)를『강희맹이 사신으로 중국 남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당에서 붉은 연꽃씨를 채취해 왔는데. 그로부터 안산군의 별호를 '연성' 이라고 했다』로 정할 만큼 관곡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연당 한가운데에 있던 관상소나무는 관곡지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고 농학자로서의 기품을 상징하고 있는 듯했으나 1990년 9월에 폭우로 고사되었다.
못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인데, 시흥관내의 연성초ㆍ연성중학교 등의 교명과 연성동의 동명 및 시흥시의 향토문화제명인 연성문화제(蓮城文化祭)의 명칭 등은 이 못에서 연유해 명명되었다.
▼ 능소화
▼ 관곡지를 수차례 다녀갔었지만 오늘처럼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다.
▼ 행사가...?
▼ 오랜만에 하늘엔 흰구름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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