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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야행(貞洞 夜行)

by 맥가이버 Macgyver 2015. 5. 13.

[만물상] '정동 야행(貞洞 夜行)'

  • 김태익 논설위원
       

      서울 정동 덕수궁 옆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를 '하비브하우스'라고 부른다. 1970년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필립 하비브씨 이름을 땄다. 이곳은 1884년 조선 왕실이 서양인에게 매각한 최초 부동산이자 미국 정부가 해외에 갖고 있는 공관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또 서울에 있는 외국 대사관저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 전통 가옥 모습을 하고 있다. 130년 전 초대 주한 공사로 왔던 푸트는 키가 컸던 모양이다. "일어서면 모자가 천장에 닿아 불편하다. 대사관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러자 국무부는 "조선에서는 실내에서 모자를 쓰면 법도에 어긋난다"며 이 집을 그냥 쓰라고 회신했다고 한다.

      ▶하비브 대사는 1975년 관저를 100여년 만에 고쳐 지으며 미국 오리건주에서 더글러스 전나무를 들여와 대들보와 서까래로 썼다. 벽과 천장에 흙을 발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했다. 정원에는 경주 포석정을 본뜬 연못을 만들어 운치를 더했다. 건축비가 예상 밖으로 늘어나자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기부금을 모아 줬다.

       

       

      ▶하비브 하우스를 직접 본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근처의 많은 직장인이 점심시간이면 정동길을 산책하지만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이끼와 담쟁이에 덮인 돌 담장은 높기만 하다. 오랫동안 도심 속 섬과 같았던 하비브 하우스가 처음으로 시민에게 문을 연다고 한다. 5월 마지막 주말인 29~30일 서울 중구청이 주관하는 '정동 야행(貞洞 夜行)' 축제 행사의 하나로 정원을 보여줄 계획이다.

      ▶'정동 야행'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풍운과 애환의 근현대사 현장인 정동의 이모저모를 느끼자는 행사다. 서울에 정동만큼 작은 길 하나 땅 한 조각에도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은 드물다. 정동에는 고종 아관파천(俄館播遷), 을사늑약의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러시아 공사관 터, 구세군 중앙회관,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 같은 근대의 새벽을 알린 문화유산도 즐비하다.

       

      ▶때마침 서울시는 덕수궁 옆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을 헐고 그 자리에 잔디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이 건물에 가려 있던 성공회 서울대성당이 시민들에게 모습을 활짝 드러낼 것이다. 1926년 처음 세워진 성공회 대성당은 우리나라 서양 건축 도입기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다. 오랫동안 성장과 개발에 매달리면서 우리는 오늘을 낳은 어제를 잊고 살았다.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정동의 밤거리를 걸으며 어제를 돌아보는 시간 여행을 하고 싶다.

      -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