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8년(1477) 8월에 간관(諫官 : 사헌부, 사간원의 관리) 김언신(金彦辛)이
재상 현석규(玄碩圭)를 소인(小人 :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같은 노기(盧杞)와 왕안석(王安石)에게 견주어 탄핵하였다.
임금이 펄펄 뛰며 대신들에게 묻자, 대신들은 현석규가 소인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의금부에서 김언신에게 장(杖) 100대를 친 뒤 섬에 3년간 귀양 보낼 것을 청했다.
그러나 임금은 사형에 처해도 시원찮은데 처벌이 너무 가볍다며 화를 냈다.
동지중추부사 김뉴(金紐가 상소를 올렸다.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입니다. 말이 임금에게 미치면 지존이 자세를 가다듬고, 일이 조정과 관계되면 재상이 대죄합니다.
신분이 낮은 간관이 감히 임금 앞에서 간쟁하였으나 말이 맞지 않더라도 예부터 내려오눈 골경지신(骨鯁之臣)의 기풍이 있습니다.
실로 포상하고 정려하여 선비들을 권면해야 할 것인데, 도리어 죄를 주시니 신은 대간이 해체될까 걱정합니다.”
임금은 화를 내며 직접 김언신을 문초했다.
잘못을 알겠느냐고 묻자, 김언신은 죽음은 두렵지 않고 잘못 논한 줄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임금이 더욱 성을 냈다.
“내가 그(재상)를 썼는데 그를 소인이라 하니 너는 나를 당의 덕종(德宗)이나 송의 신종(神宗)과 견주려는 것이냐?”
김언신이 대답했다.
“현석규는 노기와 왕안석의 간사함을 겸했는데, 그를 쓰셨으니 신은 전하께서 두 군주보다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임금이 하교했다.
“죽음을 눈앞에 놓고도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신(信 )이다.
내가 어찌 간신(諫臣 : 간언하는 신하)을 죽인 걸주(傑紂)를 본받겠는가.”
즉시 차꼬를 풀어주게 하고 술을 내어주며 직무를 보게 하였다.
골경(骨鯁 : 뼈 골, 생선뼈 경)은 짐승의 뼈나 생선의 가시다.
억세어서 목에 걸리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김뉴의 상소 가운데 나오는 '골경지신'이란 듣기 거북한 직간(直諫)을 서슴지 않는 신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산은 ‘제진평세가서정(題陳平世家書頂)’에서 “나라에 골경지신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마치 부드럽고 연한 살코기와 같다.
이것이 바로 진(秦)나라가 육국(六國)을 모두 삼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라고 했다.
지금도 대통령이 듣기 싫은 쓴 소리에 화를 냈다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죽이려 드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