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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깨우치는 한마디

[정민의 세설신어] [371] 당면토장(當面土墻)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6. 22.

 

 

 

 

 

당면토장(當面土墻)  

  [정민의 세설신어] [371] 당면토장(當面土墻)

 

다산이 이재의(李載毅)와 사단(四端)에 대해 논쟁했다.

이재의가 논박했는데 논점이 어긋났다.

가만 있을 다산이 아니다.

 

"이달 초 주신 편지에서 사단(四端)에 관한 주장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과 큰 차이가 없더군요.  

노형께서 많은 사람 틈에 앉아 날마다 시끄럽게 지내시다가,

이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대충 보시기 때문에

제 글을 보실 때도 심각하게 종합하여 분석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신 글의 내용이 제 말과 합치되는데도

결론에서는 마치 이론(異論)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더군요.

또 혹 제 주장은 애초에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주신 글에서는 한층 더 극단적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이는 모두 소란스러운 중에 생긴 일입니다.

 

지금 크게 바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두 사람이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임해 있고

뒤에는 솔바람이 불어오는 완도의 관음굴(觀音窟)로 함께 들어가

보고 듣는 것을 거두고 티끌 세상을 벗어나,  

마음속에서 환한 빛이 나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저의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노형의 장공편운(長空片雲),

곧 드넓은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 같은 의심이 모두 탁 트여서 말끔히 풀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비록 1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 해도

반드시 한 곳으로 귀결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감히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한 까닭입니다."

 

'답이여홍(答李汝弘)'에 나온다.



다산은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다.

글을 읽고 느낀 심정을 당면토장, 즉 흙벽과 마주하고 앉은 느낌이라고 적었다.

편지 속의 속내는 이렇다.

 

글을 잘 보았다.  

논점도 없고, 결국 같은 이야기를 엄청 다른 이야기처럼 했다.

분잡스러운 중에 호승지심(好勝之心)으로 쓴 때문이 아니냐.

아무도 없는 완도의 관음굴로 함께 들어가 끝장 토론을 벌이자.

이런 식으로는 10년간 토론해도 제소리만 하다가 말 것이다.


듣지도 않고 언성부터 높이지만 결국은 같은 소리다.

처음부터 알맹이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르다는 소리만 들으면 된다.

지금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다른 듯이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