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가난 / 김재진 詩 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흥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잠도 안 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 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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