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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 줄탁동기(啐啄同機)

by 맥가이버 Macgyver 2017. 1. 11.



줄탁동시(啐啄同時) / 줄탁동기(啐啄同機)


줄탁동시 啐啄同時

 

풀이

빠는 소리 줄 · 쫄 탁 · 같을 동 · 때 시

 

()과 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비유하거나, 서로 합심하여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줄탁동시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라는 뜻의 과숙체락(瓜熟蒂落)’과 쌍을 이루어

때가 성숙하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며, 기회와 인연이 서로 투합한다(瓜熟蒂落, 啐啄同時).’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로,

원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송()나라 때 벽암록(碧巖錄)

공안(公案, 화두(話頭))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다.

 

경청(鏡淸)은 항상 줄탁지기(啐啄之機)로 후학들을 깨우쳐 주었다.

그는 일찍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행각하는 사람(사방을 떠도는 중)은 반드시 줄탁동시의 눈을 가져야 하고

줄탁동시의 씀을 가져야 비로소 승려라 할 수 있다.

마치 어미가 밖에서 쪼려고 하면 새끼가 안에서 쪼지 않을 수 없고,

새끼가 안에서 쪼려고 하면 어미가 밖에서 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鏡淸常以啐啄之機開示後學.

曾示衆說, 大凡行脚人, 須具啐啄同時眼, 有啐啄同時用, 方稱衲僧.

如母欲啄, 而子不得不啐, 子欲啐, 而母不得不啄.)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때가 되면 알 밖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는데 이를 이라 하며,

어미 닭이 병아리 소리를 듣고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 것을 이라고 한다.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 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 주는 스승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안과 밖에서 쪼는 행위는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스승이 제자를 깨우쳐 주는 것도 이와 같아,

제자는 안에서 수양을 통해 쪼아 나오고 스승은 제자를 잘 보살피고 관찰하다가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우침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

이 시점이 일치해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이 일어난다.

 

빠는 소리 줄’, ‘맛볼 쵀’, ‘떠들썩할 잘등의 음을 가지고 있다.


용례

이 논문은 선생님의 줄탁동시하는 배려와 보살핌이 없었으면 완성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출처 : 고사성어대사전 / 김성일

 

       

줄탁동기[啐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공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떠들 줄

: 쫄 탁

: 같을 동

: 기회 기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

()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다.

 

공안은 화두라고도 하는데,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수수께끼로, 책으로 말하면 제목과 같은 것이다.

선을 수행하는 승려들은 하나의 공안만 가지고도 평생을 참구하기도 한다.

그만큼 몇 자 안 되는 공안일지라도 그 속에는 깨달음의 이치가 숨어 있어 그 뜻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공안의 원래 뜻이 공공기관의 문서라는 점에서 보면,

일단 깨닫기만 하면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이 그 뜻이 명백해지는 것이 공안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문자의 뜻에 얽매이는 순간

깨달음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다시 관념에 빠진다.


선종에서는 이러한 관념의 세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안은 최소한의 언어만을 사용한다.


줄탁동기는 이러한 깨우침과 관련된 공안이다.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은 바로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킨다.

어미닭은 품고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은 어미닭이 알을 쪼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알껍질을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이는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제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또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H.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줄탁지기·줄탁동시라고도 하고, 줄탁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