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삭(東方朔)이
홍몽택(鴻濛澤)을 노닐다가 황미옹(黃眉翁)과 만났다.
그가 말했다.
"나는 화식(火食)을 끊고
정기(精氣)를 흡수한 것이 이미 9000여 년이다.
눈동자는 모두 푸른빛을 띠어 감춰진 사물을 능히 볼 수가 있다.
3000년에 한 번씩 뼈를 바꾸고 골수를 씻었고,
2000년에 한 차례 껍질을 벗기고 털을 갈았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미 세 번 골수를 씻고 다섯 번 털을 갈았다.
(吾却食呑氣, 已九千餘年. 目中瞳子, 皆有靑光, 能見幽隱之物.
三千年一返骨洗髓, 二千年一剝皮伐毛. 吾生來已三洗髓五伐毛矣)."
후한 때 곽헌(郭憲)이 쓴 '동명기(洞冥記)'에 나온다.
9000세를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천지의 정기를 흡수해서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
3000년에 한 번씩 육체와 정신을 통째로 리셋해야 한다.
뼈를 바꾸고 골수를 세척하는 반골세수(返骨洗髓)나
껍질을 벗기고 털을 다 가는 박피벌모(剝皮伐毛)는
환골탈태(換骨奪胎)와 같은 뜻으로 쓰는 표현이다.
거듭나려면 묵은 것을 깨끗이 다 버리고,
뼈와 골수까지 새것으로 싹 바꿔야 한다.
이것도 아깝고 저것도 아쉬우면 거듭나기는 실패하고 만다.
정희량(鄭希亮·1469∼1502)은 '야좌전다(夜座煎茶)'에서
"노을 먹고 옥을 먹어 수명을 연장하고,
골수 씻고 털을 갈아 동안(童顔)을 유지하네
(餐霞服玉可延齡, 洗髓伐毛童顔鮮)"라고
신선의 장생불사를 선망했고,
성현(成俔·1439~1504)은 '효선요(曉仙謠)'에서
"만약에 높이 날아 자줏빛 안개 타면,
털을 갈고 골수 씻어 나는 신선 따르리
(若爲遐擧乘紫煙, 伐毛洗髓隨飛仙)"라고 노래했다.
'역근경(易筋經)'은
달마(達摩) 대사가 도가의 방술을 정리했다는 책자다.
역근(易筋), 즉 근육 을 바꿔 육체를 단련한다.
무협지에 이 책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세수경(洗髓經)'이란 책도 있다.
골수를 세척해서 정신을 수련한다는 뜻이다.
선거철이 다가오자 정당마다 벌모세수로
환골탈태하겠다는 물갈이와 인재 영입으로 시끄럽다.
싹 들어내서 통째로 바꾸겠단다.
바꾸긴 바꿔야겠는데,
바꿀 것은 안 바꾸고 안 바꿀 것만 바꾸려 드니
장생불사를 어이 꿈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