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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575] 정식정팽 (鼎食鼎烹)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6. 11.

[정민의 世說新語] [575] 정식정팽 (鼎食鼎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에게 제자 자목(子牧)이 투덜댄다.

"선생님! 벗이란 한 방에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와 같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고상한 사대부와는 가까이하지 않고,

똥 푸는 엄행수와 벗이 되려 하시니, 제가 너무 창피합니다.

문하를 떠나겠습니다."

이덕무가 달랜다.

"장사꾼은 이익으로 사귀고, 대면해서는 아첨으로 사귄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워도 세 번씩 거듭 청하면 멀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고,

묵은 원한이 있더라도 세 번을 주면 친해지지 않음이 없다.

하지만 이익을 가지고는 사귐을 잇기가 어렵고, 아첨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큰 사귐은 굳이 얼굴을 맞댈 것이 없고, 훌륭한 벗은 착 붙지 않는 법이지.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을 삼아야 도의(道義)의 사귐인 게다."

그러면서 이익과 아첨으로 벗을 사귀는 위선적 사대부와

냄새나는 불결한 일을 하면서도 향기로운 삶을 사는 엄행수의 태도를 견주고,

그는 나의 스승이지 감히 벗으로 삼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지원의 '예덕선생전'에 나온다.

예(穢)는 똥을 가리키니 더럽다는 뜻이다.

박지원은 방경각외전(放 閣外傳) 자서(自序)에서 엄행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선비가 입과 배에 얽매이면, 온갖 행실 모두 다 이지러지네.

잘 먹고 잘 살다가 삶겨 죽어도, 그 탐욕을 경계하지 못하게 되지.

엄행수는 똥을 퍼서 먹고 살지만, 자취는 더러워도 입은 깨끗해

(士累口腹, 百行餒缺. 鼎食鼎烹, 不誡饕餮. 嚴自食糞, 迹穢口潔)."

정식정팽(鼎食鼎烹)은 사기(史記) '주보언전(主父偃傳)'에 나온다.

주보언이 고속 승진해서 전횡을 일삼자 어떤 이가 나무랐다.

그가 대답했다.

"대장부가 살아서 오정(五鼎)의 음식을 먹지 못할 바엔,

오정에 삶아져서 죽을 뿐이다

(丈夫生不五鼎食 , 死卽五鼎烹耳)."

 

정식(鼎食)은 사치스러운 상차림이다.

정팽(鼎烹)은 죄수를 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혹형(酷刑)이다.

삶아져 죽을망정 떵떵거리며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가겠다고 했다.

뒤에 그는 다른 일에 연루되어 집안이 다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도리를 떠나 권세와 이익만 입에 올린다.

차라리 똥 푸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겠다던 이덕무의 결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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