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떼 / 나희덕 詩
羊이 큰 것을 美라 하지만
저는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겠습니다
철원 들판을 건너는 기러기 떼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고
그 물결 거슬러 떠가는 나룻배들 같습니다
바위 끝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삐걱삐걱, 낡은 노를 젓는 날개 소리 들립니다
어찌 들어보면 퍼걱퍼걱, 무언가
헛것을 퍼내는 삽질 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도
내 몸속의 찬 강물 줄어들지 않습니다
흘려보내도 흘려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 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새가 너무나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
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습니다
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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