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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깨우치는 한마디

[정민의 세설신어] [175] 오교삼흔 (五交三釁)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9. 12.




 


 





오교삼흔 (五交三釁)
 





=정민의 세설신어 175= 오교삼흔 (五交三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 2012.09.11 23:30
 


갑자기 오랜 우정의 절교가 세간의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중국 남조(南朝) 때 유준(劉峻·463~522)의 광절교론(廣絶交論)이 생각난다.
세리(勢利)를 좇아 우정을 사고파는 당시 지식인들의 장사치만도 못한 세태를 풍자한 글이다.


먼저 우정에는 소교(素交)와 이교(利交)의 두 종류가 있다.
비바람 눈보라의 역경에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는 것은 현인달사(賢人達士)의 소교,
즉 변함없는 우정이다.
속임수와 탐욕을 바탕에 깔아 험악하기 짝이 없고 변화무쌍한 것은 제 이익만 추구하는 이교다.
소교가 사라지고 이교가 일어나면서 천하는 어지러워지고 천지의 운행이 조화를 잃게 되었다.
이교는 장사치의 우정이다.


여기에도 다른 듯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첫 째가 세교(勢交)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바싹 붙어서 못 하는 짓이 없고 안 하는 짓이 없는 사귐이다.
사람이 아니라 그의 권세를 노린다.


둘째는 회교(賄交)다.
재물 있는 자에게 찰싹 빌붙어 온갖 감언이설로 그 떡고물을 주워 먹으려는 우정이다.


셋째가 담교(談交)다.
권력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입으로 한몫 보려는 행태다.
그 혀끝에서 무더위와 한파가 극을 달린다. 입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넷째는 궁교(窮交)다.
궁할 때 동병상련으로 서로 위해주는 듯하다가
한순간에 등 돌려 제 잇속을 차리는 배은망덕의 사귐이다.


다섯째는 양교(量交)다.
말 그대로 근량(斤量)을 달아서 재는 우정이다.
무게를 달아 괜찮겠다 싶으면 그 앞에서 설설 기고,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본색을 드러낸다.
저마다 달라 보여도 속심은 한가지다.


이 다섯 가지 이교에서 다시 삼흔(三釁), 즉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패덕진의(敗德殄義), 금수상약(禽獸相若)'이니
덕과 의리를 무너뜨려 금수(禽獸)와 같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난고이휴(難固易攜), 수송소취(讎訟所聚)'로
우정을 굳게 하기는커녕 쉬 떨어져 마침내 원수가 되어 서로 소송질이나 하는 것이다.


셋째는 '명함도철(名陷饕餮), 정개소수(貞介所羞)'다.
탐욕의 수렁에 빠져 뜻 있는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됨이다.


애초에 이교로 만난 사이였다면 무슨 우정과 절교를 말하며 상대 탓을 하겠는가?
다만 끝까지 제 이익에 충실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