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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드리' 노닌다… 신라의 달밤·백제의 달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8. 25.

'밤드리' 노닌다… 신라의 달밤·백제의 달밤

야, 부르면 깜짝 놀라는 외침이 있다. 야, 속삭일 때 은밀해지는 호흡. 시야를 가리면서 드러내는 노출의 방식.
세속의 낮이 밤에 전설이 된다. 잠들어 있던 것이 깨어난다. 더울수록 야(夜)해질 것.


경주·부여=정상혁 기자  

  

이야기가 있는 옛 도읍 문화재 야간 기행
경주, 다음달 '천년야행' 축제… 부여, 5층 석탑·궁남지 등 신화와 전설 속으로

야, 부르면 깜짝 놀라는 외침이 있다.

 야, 속삭일 때 은밀해지는 호흡. 시야를 가리면서 드러내는 노출의 방식.

 세속의 낮이 밤에 전설이 된다. 잠들어 있던 것이 깨어난다.

 더울수록 야(夜)해질 것. 야동(夜動)의 복판으로 걸어나갈 것.

1000년 묵은 심야, 오늘도 고대의 도읍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밤드리 노니다 "야호(夜好)" 하리니.

 

지난 19일 경주 대원릉 내 황남대총이 반월처럼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심야의 하늘은 심해처럼 푸르고, 한 관광객이 등불을 들고 이 사이를 거닐고 있다. 이날 황남대총 맞은 편에 떠 있던 달이 사진에 보이지 않아 따로 찍어 붙였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 동네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밤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잠을 잔다.

경주, 대릉원 지구. 시선 닿는 곳마다 천마와 금관·금령 같은 아름다운 이름의 무덤 155기가 숨 쉬고 있다.

발굴되지 않은 채 그저 1·2·3호로 불리는 미지의 이야기가 거리마다 가득하다.

다음 달 30일 이곳과 월성지구 일대에서 '천년야행' 축제가 펼쳐진다.

불계의 땅 남산 지구와 달리, 이곳은 왕의 거처.

황남동에 있는 대릉원에 들어서자 41만4545㎡(12만5400평)의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다.

거기 23기의 고분이 순한 등을 구부린 채 잠들어 있다. 3

0여 종의 노거수가 어둠 위에 그늘을 흘려 돌길 위에 요상한 무늬가 생긴다.

대숲에서 발길이 멈췄다. 미추왕릉. 경주 김씨 첫 번째 왕이 잠든 곳.

죽현릉(竹現陵)으로도 불리는 봉토분이다.

297년 신라가 이서국에 침략당하자 귀에 댓잎을 꽂은 죽엽군(竹葉軍)이 홀연히 나타나 적을 물리친 뒤 밤안개 속으로 사라졌는데,

종적은 없고 미추왕릉 앞에 댓잎만 무성했다 한다.

바람 불 때마다 댓잎이 야설(夜說)을 지줄댄다.

 

경주 월지 위에 누각 한 채가 또렷이 떠 있다.

역사가 찌르는 대낮이라면, 달은 은근한 신화에 더 어울린다.

그러니 이곳은 아무래도 달의 도시다.

사방이 동그란 무덤인데다 월성·월지·월정교…, 달이 빠지질 않는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 별별 얘기가 부려져 있다. 천마총 앞에 선다.

1973년 발굴 당시, 마른하늘에 갑자기 뇌성벽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인부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한다.

더 들어가면 대릉원 초대형 무덤, 황남대총이 나온다.

높이 23m짜리 표주박 모양의 대형 고분이다.

왕과 왕비의 무덤이 하나로 이어진 형태인데, 왕의 관은 동에 금박을 한 금동(金銅), 왕비의 관은 순금이었다.

동행한 이진동 문화해설사가 "당시엔 여자 끗발이 엄청났다"고 귀띔한다.

숨겨진 출사(出寫) 포인트로, 뒤편에 거느린 두 기의 무덤 사이로 황남대총이 봉우리처럼 솟아 있고,

세 반원의 중앙에 목련 한 그루가 서 있다.

 신비를 더하기에 부족함 없는 위치 선정이다.

노동·노서리 고분 등 무덤 근처마다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황남빵이나 교리김밥 같은 동네 야식을 먹고 있다.

신비가 일상이 되면 저러하리라.

별들이 금관에 매달린 곡옥(曲玉)처럼 토실토실하다.


조명이 쏟아지는 첨성대 앞에서 여성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경주 시내 유적은 10분 내외 거리라 자전거로 다니기 좋다.

고분군을 거쳐 경주 최고 갑부 최씨 부자의 고택을 거쳐 계림을 지난다.

숲 속에 기이한 빛이 나고 흰 닭이 울어 가보니 금궤짝이 매달려 있었다는 곳.

김씨 시조 김알지가 나왔다는 곳. 얕은 발천(撥川)이 계림을 바투 지난다.

용이 여자애를 하나 낳고 사라졌는데 입에 새부리가 있어 발천에서 씻겼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한다.

그 아이는 커서 박혁거세의 아내, 이 모든 신화의 어미가 되었다.

달이 자꾸만 진해진다. 달의 이름을 지닌 성터로 넘어갈 시간이다.

월성지구 월지(月池). 달이 비치는 연못.

연못 옆 누각이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안압지로 알려진 곳이다.

통일신라의 첫 번째 걸작이지만, 신라 멸망 후 폐허가 됐다.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들던 이곳에 야광에 홀린 사람들이 몰려든다.

3만3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는데, 그 중엔 목선도 한 척 있다.

임금이 야밤에 띄웠을 그 배를 생각한다.

14면체 주사위 주령구(酒令具)를 굴리며 술을 따랐을 것이다.

주사위를 굴리면 ‘삼잔일거(三盞一去·세 잔 원샷)’‘곡비즉진(曲臂則盡·러브샷)’같은 음주와 풍월의 벌칙이 나왔다.

달이 못 위에서 ‘금성작무(禁聲作舞·노래없이 춤추기)’ 하고 있다.

밤이 깊어 대릉원 옆 숭혜전으로 간다.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과객이 부탁하니 과거 서재였던 영육재를 하룻밤 내어준다.

요를 깔고 창호지를 덧바른 문을 활짝 연다.

왕에게 네 번 절하듯이, 보름달이 방문 앞에서 허리를 꺾는다.

경주 곤달비비빔밥 상차림.

■ 교동쌈밥 경주 향토 음식 브랜드 ‘별채반’을 받아볼 수 있다.

곤달비와 산채를 된장·멸치가루로 만든 양념장으로 비벼 먹는 곤달비비빔밥(1만원),

양·곱창 등을 넣어 끓인 궁중식 육개장 6부촌육개장(1만원)이 유명하다.

경주시 황남동 328-1. (054)773-3322

■ 대릉원 입장료 성인 2000원, 어린이 600원. 입장 오전 9시~오후 1 0시. 무휴. 경주시 황남동. (054)772-6317

동궁과 월지 입장료 성인 2000원, 어린이 600원. 입장 오전 9시~오후 10시. 무휴. 경주시 인왕동 506-1. (054)772-4041

‘천년야행’ 축제 9월 30일~10월 2일 대릉원~동궁과월지 일대에서 야행답사, 신라 고취대 공연, 거리음악회 등이 열린다.

사전 예약자 30명 정도에 한해 숭혜전 숙박도 가능하다. gjucc.or.kr (054)743-7182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