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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5]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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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5일(토)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을 다녀오다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 이야기

 

 맥가이버의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 코스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도봉분소→도봉동문→고산앙지서원교→금강암→구봉사→성불사→천진사→보문능선→우이암 갈림길

→도봉주능선→헬기장→오봉갈림길→주능선5거리→관음암→마당바위→천축사→도봉대피소→서원교→도봉탐방지원센터→도봉산역


▼ 아래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 코스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오늘은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을 위해 길을 나선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올해의 단풍구경 첫 산행으로 도봉산을 오랜만에 찾았다.
도봉산 단풍 구경은 좀더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의 단풍구경을 할 수 있을 듯...
  


맥가이버의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을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을 다녀오다 - 2부를 시작하며...

 

00시 00분 - 도봉주능선 5거리에서...








































































 

천축사(天竺寺 ) / 옥천암(玉泉庵)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1동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할 때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년(태조 7)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절 이름을 천축사라고 한 것은 고려 때 인도 승 지공(誌公)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474년(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년(순조 12)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특히, 무문관은 근래에 세운 참선 정진처로서 부처의 설산(雪山)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데,

방문 밖 출입은 일체 금지되어 있고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며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하다.

고승 중 이 무문관에서 6년 또는 4년의 정진을 한 이들이 많다.

 

전래되는 유물 가운데 문정왕후가 헌납한 화류수목조용상(樺榴樹木彫龍床)은 대웅전 안에 보존되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약 50년 전에 창건한 석굴암이 있다.

당우로는 석굴·만월보전(滿月寶殿)·나한전(羅漢殿)·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석간수(石澗水)가 좋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축사(天竺寺 ) / 옥천암(玉泉庵)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직할 전통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천축사(天竺寺)는 673년(문무왕 13)에 의상 대사가 절을 지어 옥천암(玉泉庵)이라 하였으며,

고려 명종 때에는 근처에 영국사(寧國寺)가 창건되고 그 부속 암자로 맥을 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398년(태조 7)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1474년(성종 5) 성종의 명으로 천축사가 중창되고,

명종 때에는 문정 왕후(文貞王后)가 화류 용상(樺榴龍床)을 하사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다.

 

1812년(순조 12)에 승려 경학(敬學)이 절을 중창하였다.

1816년(순조 16)에 신도 김연화(金蓮花)가 불량답(佛糧沓) 15두락을 절에 희사하였으며,

이후에도 불량답 희사 등 시주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19세기 말에 다시 천축사가 중수·중창되었다.

1863년에 주지 긍순(肯順)이 칠성 탱화·독성 탱화·산신 탱화를 조성하였고,

1895년에 화주 성암 응부(星巖應夫)가 명성 왕후(明聖王后) 및

상궁 박씨 등의 시주를 얻어 후불탱화·신중탱화·지장 탱화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삼신불 탱화와 신중탱화만이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1911년에 화주 보허 축전(寶虛竺典)이 관음 탱화를 봉안하였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가 천축사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였다.

 

1964년에 무문관(無門關)을 신축하였고,

승려 현공(玄公)이 2003년부터 대웅전과 독성각·산신각, 요사채를 중수하고 공양간을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천축사의 기도와 법회는 관음 재일, 초하루, 초이틀, 초삼일, 약사 재일, 지장 재일 등에 열리고 있다.

관음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독성각·산신각·요사·범종각 등이 있고, 참선 도량인 무문관이 있다.

대웅전은 ㄷ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로 1812년(순조 12)에 지어졌다.

 후 몇 차례 중수되었는데 현재 절의 중심 건물로서 법당과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석가 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후불화로 삼세불화와 지장 탱화,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신중탱화는 다소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 시주자 명단에 상궁의 이름들이 보인다.

 

원통전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여기에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존으로 모셨고,

천수 천안 관음보살 탱화와 칠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독성각과 산신각은 각각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독성 탱화와 산신 탱화가 있다.

 

절의 동북쪽으로 70m쯤 올라가면 3층의 석조 건물인 무문관이 있다.

무문관은 참선 수행처이다.

부처의 설산 6년 고행을 본받아 한 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 문을 봉쇄한 채 면벽 수행하며, 방문 밖의 출입은 일체 금지된다.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야 하는 등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격하다.

 

천축사는 깎아지른 듯한 만장봉(萬丈峰)을 배경으로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찰이다.

가람 소나무·단풍나무·유목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어

마치 닭이 계란을 품은 것 같은 포근한 정경을 연출한다.

 

천축사에 오르는 길도 평탄하며, 여름이면 울창한 수풀이, 가

을이면 단풍나무가, 겨울이면 설경이 암벽 곳곳에 펼쳐져 좋은 경치를 자랑한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


[관련 문화재]
2009년 11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2호와 제293호로 지정된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天竺寺毘盧舍那三神佛圖),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天竺寺毘盧舍那三神掛佛圖)와

2013년 5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347호로 지정된 천축사 목조 석가 삼존불상이 있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는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慶船堂) 응석(應碩)이

편수(片手)를 맡아 환감(幻鑑)·혜조(慧照)·경림(璟林)·탄인(呑仁)·창오(昌悟) 등이 제작하였다.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 왕후를 위하여 시주한 불화이다.

 

가로가 긴 화면이 상하로 구분되어 상단에는 삼신불을,

하단에는 보살들을 배열한 구도로서 독특한 도상을 보여 준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화면에 손상이 없고,

화기가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채색도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괘불로서 규모가 크지 않고 연대도 오래되지 않았으나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양식 등이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 괘불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하운당(河雲堂) 유경(有鏡)의 남아 있는 작품이 희귀하여,

그의 독특한 불화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관련 문물]
전래되는 유물 가운데 문정 왕후가 헌납한 화류수 목조 용상(樺榴樹木彫龍床)이 주목을 끄는데,

이것은 대웅전 안에 불탑(佛榻)으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천축사에는 240여년이 된 둘레 4m, 높이 20m의 은행나무가 있어 1981년 10월 27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2009년 여름의 모진 비바람으로 쓰러져 죽었으며,

이에 7월 15일 서울특별시 지정 보호수에서 해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이것으로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을 다녀오다를 마친다.

 

 

 

2016년 10월 15일(토)

맥가이버의 도봉산 단풍산행(도봉분소-도봉계곡-보문능선-도봉주능선-마당바위-도봉대피소-도봉분소)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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