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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깨우치는 한마디

[정민의 세설신어] [415] 십무낭자 (十無浪子)

by 맥가이버 Macgyver 2017. 4. 26.

 

 

 

 


 

 




  

 

십무낭자 (十無浪子)  

  

 

[정민의 세설신어] [415] 십무낭자 (十無浪子)


오대(五代)의 풍도(馮道)는 젊은 시절 '십무낭자(十無浪子)'로 자처했다.

그가 꼽은 열 가지는 이렇다.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했고, 외모도 별 볼 일 없다.

이렇다 할 재주도 없고, 문장 솜씨도 없다.

특별한 능력과 재물도 없다.

지위나 말재주도 없고, 글씨도 못 쓰고, 품은 뜻도 없다

(無星, 無貌, 無才, 無文, 無能, 無財, 無地, 無辯, 無筆, 無志),"


한마디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허랑한 인간이란 뜻이다.
그래도 그는 자포자기하지도, 긍정적 에너지를 잃지도 않았다.


그의 시는 이렇다.

"궁달은 운명에 말미암는 걸, 어이 굳이 탄식하는 소리를 내리.

다만 그저 좋은 일을 행할 뿐이니, 앞길이 어떠냐고 묻지를 말라.

겨울 가면 얼음은 녹아내리고, 봄 오자 풀은 절로 돋아나누나.

그대여 이 이치 살펴보게나. 천도는 너무도 분명하고나


(窮達皆由命, 何勞發歎聲. 但知行好事, 莫要問前程.

冬去氷須泮, 春來草自生. 請公觀此理, 天道甚分明)."


힘들어도 죽는소리를 하지 않는다.

오직 옳고 바른길을 가며 최선을 다한다.

한 수 더.

"위험한 때 정신을 어지러이 갖지 말라.

앞길에도 종종 기회가 있으리니.

해악(海嶽)이 명주(明主)께로 돌아감을 아나니,

건곤은 길인(吉人)을 반드시 건져 내리.

도덕이 어느 때고 세상을 떠났던가.

배와 수레 어디서든 나루에 안 닿을까.

마음속에 온갖 악이 없게끔 해야지만,

호랑(虎狼)의 무리 속에서도 몸 세울 수 있으리


(莫爲危時便愴神, 前程往往有期因.

須知海嶽歸明主, 未必乾坤陷吉人.

道德幾時曾去世, 舟車何處不通津.

但敎方寸無諸惡, 狼虎叢中也立身)."

하늘은 길인(吉人)을 위기 속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마음을 닦으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역사의 각축장에서 장차 주어질 기회의 순간을 참고 기다렸다.

그는 십무(十無)의 밑바닥에서 출발해 네 왕조의 열 임금을 섬기며 20여년간 재상 지위에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부도옹(不倒翁)' 즉 고꾸라지지 않는 노인이라 불렀다.

스스로는 '장락로(長樂老)'라고 호(號)를 붙였다.

그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5경을 판각하여 출판했다.

그는 자신을 아꼈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