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귀유광(歸有光)의 대표작 '항척헌지(項脊軒志)'는 애잔한 글이다.
항척헌은 고향집의 서실 이름이다.
한 사람이 겨우 거처할 만한 공간인데,
백 년이나 묵어 비만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진흙이 떨어졌다.
북향으로 앉으면 해를 받지 못해, 오후면 이미 어두워지는 그런 방이었다.
이 방을 물려받은 그는 수리부터 했다.
지붕을 새로 이어 비가 새지 않게 하고, 창을 네 개나 두어 환하게 했다.
뜨락엔 꽃나무를 심고 난간을 둘러 눈을 기쁘게 했다.
책을 시렁 가득 꽂아두고, 누워 휘파람 불다가 고요히 앉아 책을 읽었다.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은 적막해서 작은 새가 이따금 와서 모이를 쪼고 갔다.
나는 특히 이 대목이 좋다.
"보름밤 밝은 달이 담장에 반쯤 걸리면 계수나무 그림자가 어른댄다.
바람이 흔들어 그림자가 움직이면 쟁글쟁글 그 소리가 사랑스러웠다
(三五之夜, 明月半墻, 桂影斑駁, 風移影動, 珊珊可愛)."
귀유광이 이곳을 특별히 아꼈던 것은
어머니와 일찍 세상을 뜬 아내와의 추억이 깃들어서다.
'항척헌지'는 이렇게 끝난다.
"마당에는 비파나무가 있는데, 내 아내가 세상을 뜬 해에 손수 심은 것이다.
지금은 이미 높이 자라 일산(日傘)만 하다."
마음이 애틋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