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째 냉면집, 토박이가 하는 와인바… 경리단길과 다른 '금리단길'
[아무튼, 주말]
핫플레이스 금남시장
①목화다방의 내추럴와인과 목화 스타일로 만든 토마토 & 샐러리 살사(고등어)·바질페스토 양념치킨·라따뚜이 위에 볶은 가지와 애호박을 올린 프로방스식 야채볶음. ②베쌀집의 갈비쌀국수와 반미. ③퍼주에의 분보사오와 반세오. ④쿨쉽의 람빅(맥주)과 옆집 누림축산의 육사시미. ⑤sip의 샤퀴테리 보드. ⑥원조손칼국수보쌈의 칼국수. ⑦골목냉면의 비빔냉면. ⑧은성보쌈의 생굴·보쌈·김치. ⑨키친오늘의 성게어란파스타. ⑩소울보이의 옛날떡볶이와 소주. ⑪아우프글렛의 크로플과 커피./김종연·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일러스트= 안병현
서울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 입구.
'싱싱한 과일'이라고 적힌 간판 옆에 난 골목길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설 만큼 좁다.
골목으로 대여섯 발자국 걸어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난 모퉁이를 돌면
그때부터는 반찬가게, 어물전, 참기름가게, 냉면집, 여관 등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들을 이정표 삼아 골목을 헤매다 보면
생선 가게와 돼지머리 고기 가게 사이에 'sip'이라고 적힌, 무릎 높이의 빨간 입간판이 보인다.
간판 뒤의 철문을 밀면 와인병이 올려져 있는 6인용 탁자와 작은 부엌이 보인다.
'여기에 왜 이런 데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곳은 내추럴 와인 바(bar)다.
금남시장은 60~70년대부터 모여든 점포와 노점들이 오밀조밀 모여 전형적인 골목형 시장을 형성했다.
시장 안팎에서 과일, 채소, 고기, 생선, 건어물, 속옷 등을 팔고 시장 안에는 이발소와 여관도 있다.
보쌈과 칼국수 등 여느 시장에나 있을 법한 음식점도 있다.
2~3년 전부터 금남시장을 중심으로 이자카야, 와인바, 카페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난해 이런 가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최근에는 '금리단길(경리단길+금호동)'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금남시장과 그 주변의 갈 만한 곳을 찾아봤다.
생선 가게와 참기름집 사이 내추럴 와인
금남시장에 발 빠르게 들어온 목화다방은 30년 전만 해도 커피와 쌍화차를 팔던 다방이었다.
옛 다방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3년 전 장진우가 하던 와인 비스트로(술과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식당)였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팔고 있다.
형제가 하는 이자카야 미탄도 초기 멤버 중 하나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美灘)읍에서 따온 이름으로 '아름다울 미'(美)를 '맛 미'(味)로 바꿨다.
'맛의 여울'이란 뜻이다.
튀김에서 생선구이, 파스타까지 선택할 수 있는 안주가 다양하단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단 하나를 꼽으라면 사시미이다.
양이 많진 않지만 구성이 알차고,
혼자 간 손님을 위해 1인분(1만5000원)을 팔기도 한다.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sip(insta gram.com/sip.bistrot)은 보물 찾기 끝에 찾아낸 보석 같은 곳이다.
일곱 평 남짓한 공간에 손님 5명만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와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가
여행을 다니면서 모은 기념품을 올려놓은 장식장, 그리고 부엌이 전부다.
부부가 운영하는 내추럴 와인 바다.
호주 르 코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운 남편이
샤퀴테리(고기와 부속 및 내장 등을 이용해 만드는 가공식품)와
안주를 만들고, 아내는 빵을 굽고 와인을 고른다.
1만원짜리 샤퀴테리 플레이트(모듬)는 가격 대비 최고의 안주다.
다른 안주 역시 1만원 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내추럴 와인의 가격이 대부분 10만원 넘기 때문에 안주 가격이라도 낮추고자 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다이렉트 메시지로 예약을 받는다.
금남시장에서 따온 이름 때문인가.
금남방은 이 동네의 새로운 트렌드를 상징하는 가게로 꼽힌다.
음식 잡지 에디터와 마케터가 손을 잡고 만든 곳으로 한식을 내추럴 와인과 함께 선보인다.
수육이나 고기전 등 익숙한 음식을 살짝 틀어서 재미를 줬다.
예를 들자면 고추아삭이(7000원)는 올리브오일을 넣은 마요네즈와
한 번 끓인 갈치속젓을 섞은 소스에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올려 먹는 간단한 안주다.
감칠맛이 나면서도 상큼해서 와인과 잘 어울리는 한식 안주다.
시장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한 곳은 쿨쉽이다.
시장 옆 건물 2층에 있는 데다 간판이 없어 찾기 쉽지 않다.
벨기에 브뤼셀 근교에서 만드는 시큼한 맥주 '람빅'을 전문적으로 판다.
람빅은 맥즙(맥주 발효 전 달달한 액체)을 공기 중에 노출시켜서
공기 중의 세균들이 마음껏 자랄 수 있게 놓아두는 자연 발효 맥주다.
이곳엔 안주가 없고, 시장에서 먹고 싶은 걸 사가면 된다.
바로 옆 정육점에서 파는 육사시미나 시장 안에서 파는 보쌈을 사간다고 한다.
소주를 마시고 싶다면 금남시장 맞은편에 있는 소울보이나 키친오늘을 찾아가야 한다.
두 군데 모두 양식과 한식을 넘나들고 주종도 다양하게 갖춘 편이다.
키친오늘은 성게알 파스타 양이 많은 걸로도 유명하다.
월말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음 달 예약을 미리 받는데,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어 예약이 미리 다 찬다.
소울보이에선 아롱사태토마토스튜가 대표 메뉴이지만,
육전과 떡볶이 등 한식을 바탕으로 하는 안주가 많다.
금남시장에서 5~10분 떨어진 곳에는 디저트를 파는 카페들이 있다.
아우프글렛은 건축, 인테리어, 커피, 사진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남자 여섯 명이 모여 만든 카페다.
평일 오후에 가도 기다리는 줄이 길다.
크루아상으로 만든 와플 '크로플'을 먹기 위해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데, 겉에 뿌려진 견과류 가루와 시나몬 가루가 향을 더해준다.
사진작가 몬킴의 전시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아우프글렛 옆에 있는 비올레타는 머핀 전문 카페이고,
이곳에서 금남시장을 가다가 볼 수 있는 메종루포는 액세서리 편집매장을 겸한 카페다.
금남시장과 가장 가까운 카페인 태오커피에서는 말차 더블과 크림 라테가 인기가 많다.
①타로 카드로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그림책을 처방해주는 카모메 그림책방.
②사진 전시도 열리는 카페 아우프글렛은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③30년 전 다방을 개조해 만든 내추럴 와인바 목화다방.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3대 이은 노포… 손님도 3대
금남시장 입구 앞 로터리에는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이 세운
백범학원과 김구 주택(전쟁이재민구호주택) 기념비가 있다.
김구 주택의 일부가 금남시장 터에 있었다.
1966년부터 어머니가 운영한 골목냉면을 이어받은 이규호(65)씨는 "김구 주택 한 채로 가게를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네 채를 이어서 장사를 했다"며 "당시 금남시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고 했다.
골목냉면은 서울식 냉면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다시마, 황태, 멸치, 그리고 새우 간장 등으로 맛을 낸 해물 육수를 쓰고,
비빔냉면은 양념장이 아니라 고춧가루로 맛을 낸다.
골목냉면과 같은 노포 덕분에 금남시장은 세대를 아우르는 단골 손님을 많이 갖고 있다.
은성보쌈과 원조손칼국수보쌈은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는데,
최근 이 지역이 알려지면서 예전에는 별로 없었던 20대 손님이 늘어났다.
오징어, 굴과 함께 견과류로 속을 채운 김치 때문에 은성보쌈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원조손칼국수보쌈은 멸치와 다시마로 끓인 육수에 푸짐하게 담은 칼국수 한 그릇을 5000원에 판다.
금남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드는 궁금증 두 가지.
첫째, 왜 내추럴 와인 바가 많을까?
사장들의 대답을 취합해보면 이들이 가게 문을 열었던 1~2년 전,
술 좀 마신다는 사람들이 내추럴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째, 걸출한 베트남 식당이 두 군데나 있는 것은 우연일까?
시장 맞은편 골목에 있는 퍼주에는 베트남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남편이 요리를, 아내가 식당 운영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많이 먹을 수 있는 하노이식 아니라 호찌민식이다.
하노이식보다 깊고 달달한 맛을 낸다고 한다.
여기서 꼭 먹어봐야 할 것은 가느다란 국수에 고기와 야채를 올리고 소스를 뿌려 먹는 분보사오다.
베쌀집은 갈비가 들어간 쌀국수의 모양새부터가 푸짐하다.
한우 사골로 국물을 우려내고 국물의 향을 줄여 먹기 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2년 넘게 쌀국수 만드는 법을 배우고 온 사장 오영석(31)씨는
"금남시장 근처에 쌀국수집을 내겠다고 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망할 거다,
여긴 칼국수를 팔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 국물을 내려고 했더니 이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고 했다.
①한식 안주와 내추럴 와인을 선보이는 금남방.
②자연발효맥주 람빅을 보관하거나 숙성시키는 쿨쉽의 술 냉장고.
③금남시장은 60년대부터 모여든 점포와 노점들이 모여 만들어진 골목형 시장이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시장이라고 무시 말라
금남시장은 최근 갤러리와 레스토랑 등이 많이 들어선 독서당로와도 이어진 곳이다.
한남동, 이태원동과 가까운 편이고, 강남·강북의 중심지와도 멀지 않다.
금남시장이 있는 금호동을 비롯해 근처의 옥수동과 약수동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아우프글렛의 바리스타 신현준씨는 "서울에서 카페를 열기 위해 여러 동네를 찾아봤는데,
상권이 발달한 곳은 동네가 뜨면서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된 지역에 유명 상권이나 고급 주택이 생긴 뒤 나중에는 임차료가 치솟아 결국 원주민이 지역을 떠나는 현상)으로
임차인들이 밀려났거나, 임차료가 너무 비쌌다.
금남시장이 있는 금호동은 성수, 압구정, 이태원, 한남과 가까우면서 그런 동네보다 임차료가 낮았다.
게다가 이 동네 주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은 편이어서 카페에 대한 수요도 있다"고 했다.
금남시장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소비층의 연령이 30~40대의 중산층으로 바뀐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금남방의 조미경 셰프는 "금남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이 주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며
"철에 따라 시장에 들어오는 식자재가 달라지면서 가게의 메뉴도 바뀐다"고 했다.
소울보이와 키친오늘도 식자재의 절반 정도를 금남시장에서 사온다고 했다.
토박이들이 이곳의 장점을 알아보고 가게를 낸 경우도 있다.
베쌀집의 오영석씨는 금호동에서 태어나서 자란 경우이고,
퍼주에, sip, 키친오늘의 사장들도 여기 살고 있거나 예전에 살았던 적이 있다.
서울에선 해마다 새로운 동네들이 '핫플레이스'로 뜨고 진다.
상권이 활성화되면 임차료가 올라 기존에 있던 가게들이 떠나가기도 하고,
발걸음이 가벼운 소비자들은 계속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다.
금남시장과 그 근방에 가게를 연 사장들은 '시장'과 '토박이'의 힘을 믿고 있다.
몇십 년 시장을 지켜온 노포들은 쉽사리 떠나지 않을 것이고,
시장을 둘러싼 아파트의 주민들이 손님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가게가 '핫플'이 아니라 '사랑방'이 되길 바라고 있다.
서점 멸종 시대에… 금호동엔 낭독 행사도 하는 책방이 3곳
금호동 트라이앵글 책방
빨간 벽돌집에 자리한 ‘프루스트의 서재’. 주인이 고른 독립 출판물과 일반 서적, 중고책 등을 판매한다.
금남시장 근처 태오커피가 있는 오르막길을 쭈욱 따라 올라가면 금호초등학교가 보인다.
이 초등학교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
왼쪽으로 가면 카모메의 그림책방, 뒤쪽으로 가면 독립서점 서실리가 있다.
세 군데를 이으면 삼각형이 만들어지기에 '금호동 트라이앵글 책방'으로 불린다.
초등학교와 가깝지만 문제집 한 권 찾아볼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책방의 주인들은 금호동 주민이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다.
빨간 벽돌집에 자리한 '프루스트의 서재'의 문을 열면 이곳의 마스코트, 검정 고양이 '까순이'가 반긴다.
박성민 대표가 고른 독립 출판물과 일반 서적, 중고책 등을 판매한다.
손님들이 시나 책을 낭독하는 행사도 열린다.
동네 꼬마 단골이 가끔 간식을 갖고 올 정도로 주민들과 가깝다.
'카모메의 그림책방'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 있는 곳이다.
독서치료와 상담심리를 배운 정해심 대표가 타로 카드를 통해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림책을 권한다.
예약이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그림책을 낭독하는 모임도 열린다.
'서실리'는 2월 말 제주도로 옮긴다.
3월엔 여성주의를 주제로 한 책방이 같은 자리에 생긴다고 한다.
서점으로 이어진 신금호역의 삼각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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