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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583] 지도인기(知道認己)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8. 6.

[정민의 世說新語] [583] 지도인기(知道認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예수회 선교사 삼비아시(Francesco Sambiasi·畢方濟·1582~1649)가

스콜라 철학의 영혼론을 설명한 '영언여작(靈言蠡勺)' 서문에서 말했다.

"아니마(亞尼瑪) 즉 영혼 또는 영성(靈性)에 대한 학문은

필로소피아(費祿蘇非亞) 즉 철학 중 가장 유익하고 가장 높은 것이다.

 

고대의 대학에서는 그 건물에 방(榜)을 달아 '너 자신을 알라(認己)'라고 써 놓았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세상 사람의 백 천 만 가지 학문의 뿌리요 종주이니,

사람이면 누구나 마땅히 먼저 힘써야 할 바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던 글이다.

이 말을 두고 소크라테스는 신에 비해 하찮기 짝이 없는 인간의 지혜를 믿지 말고,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는 것을 철학의 출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는 나를 알아 그 앎을 세상만사로 확장하는 데서 시작된다.

삼비아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안다 함은 무엇인가?

먼저 자기 영성의 존귀함과, 영혼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언제나 영혼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세간의 온갖 일이 마치 물이 흘러가고 꽃이 시드는 것과 같아서

오래 마음에 두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오직 마땅히 마음을 기울여 노력해서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하는 천상의 일을 추구해야만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자료에서 '인기(認己)'를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철학적 의미로 이 표현을 쓴 것은 다산 정약용뿐이었다.

 

다산은 '오학론(五學論)'에서 이렇게 썼다.

"성리학은 도를 알고 나를 알아, 스스로 실천하는 데 힘쓴다는 뜻이다

(性理之學 所以知道認己 以自勉其所以踐形之義也)."

 

성리학을 지도인기(知道認己)란 네 글자로 규정한 이 대담한 선언은

삼비아시의 '영언여작' 첫 줄에서 끌어온 것이 분명하다.

다산은 이어 '주역' 대전(大傳)에 나오는

"궁리진성(窮理盡性)으로 천명에 이른다(窮理盡性 以至於命)"고

말한 뜻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이라고 찔러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바로 세우는 공부는 외면한 채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설치고 싸우는

말류 성리학자들의 위선적 행태를 하나하나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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