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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593] 유초유종 (有初有終)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10. 22.

[정민의 世說新語] [593] 유초유종 (有初有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조가 ‘경사강의(經史講義)’에서 말했다.

“예부터 임금이 즉위 초에 정신을 쏟기는 쉬워도,

끝까지 훌륭한 명성으로 마치기는 어려웠다.

이는 지기(志氣)의 성쇠로만 논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한 무제(武帝)와 당 덕종(德宗)의 예를 들었다.

한 무제는 기원전 89년에 윤대(輪臺)에서 내린 조서에서

서역과 흉노를 상대로 벌인 전쟁을 후회하며,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은 자신의 지난 잘못을 인정했다.

 

이 조서가 유명한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다.

평생 전장을 누볐던 정벌 군주가 제 잘못을 직접 죄 주고,

정책 기조를 수문(守文)으로 전환했다.

처음은 나빴지만 끝이 좋았다.

 

당나라 덕종은 즉위 초에 당 태종을 본받겠다며,

코끼리를 풀어주고, 궁녀를 내보냈다.

아첨을 막겠다고 상서로움을 아뢰지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산뜻한 출발과 달리 이후의 정령(政令)과 시책은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

노기(盧杞)와 같은 간신이 늘 곁을 맴돌았고,

육지(陸贄) 같은 어진 이는 외직으로만 떠돌았다.

세금을 거두기만 하고 백성을 위해 쓸 줄은 몰랐다.

번진(藩鎭)이 제멋대로 굴어도 규제하지 못했다.

정조의 질문은 이랬다.

이 두 예로 볼 때 임금의 나이나 정신의 총기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덕종의 문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성균관 유생 이규하(李圭夏)가 대답했다.

“‘시경’에 ‘시작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끝을 잘 마치는 이가 드물다(靡不有初, 鮮克有終)’고 했습니다.

한 무제는 늘그막에 허물을 고칠 줄 알았고,

당 덕종은 몇 년 만에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뜻을 세움이 굳건하지 않아,

훌륭한 일을 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立志不固, 無足有爲).”

 

당 태종의 신하 위징(魏徵)은 ‘십점불극종소(十漸不克終疏)’를 올렸다.

태종이 점차 초심을 잃어

열 가지 나라 일이 점점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지적을 돌직구로 날린 글이었다.

당 태종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룬 바탕에는 위징처럼 직언하는 신하가 있었다.

당 덕종이 몇 년 만에 나라를 말아먹은 것은,

곁에 노기 같은 무능한 간신들이 에워싸고 있어서였다.

 

시작이 있어야 하지만 끝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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