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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산행ㅣ신시도] 하늘을 지붕 삼아 보내는 하룻밤의 낭만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12. 16.

[비박산행ㅣ신시도] 하늘을 지붕 삼아 보내는 하룻밤의 낭만

'월간山'

  • 글·김기환 부장 
  • 사진·허재성 기자
 
대각산에 올라 신선이 놀던 섬(仙遊島)을 굽어보다

바람이 무척 심했다. 삼각파도에서 피어오른 물보라가 안개처럼 도로를 덮었다. 차가 흔들려 속도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바닷길은 이틀째 끊어져 고군산군도의 주민들의 발이 묶였다. 하지만 새만금방조제는 그 아수라장 속에도 든든한 통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군산에서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바다를 건너 신시도에 도착했다. 호젓한 섬 산에 올라 비박을 하며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동떨어진 곳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일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많은 것을 만날 수 있기 기회다. 바다로 지는 석양을 눈에 담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며 잠을 청할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 바위테라스에서 선유도 일대의 야경을 바라보며 비박을 즐기고 있다.
 
▲ 월영산으로 오르는 바윗길. 뒤로 신시도와 선유도 일대의 풍광이 펼쳐진다.
‘비박(bivouac)’은 텐트를 사용하지 않는 임시 야영을 뜻하는 등산 용어다. 엄밀하게 따지면 조난 등의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생존 방법. 하지만 등산 고수들은 ‘비박’을 산을 즐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 대자연과 교감하는 극히 원초적인 아웃도어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솔직히 산꼭대기에서 텐트도 없이 잠을 자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한밤중의 기온이 크게 떨어질 때는 더욱 그러하다. 초겨울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따뜻한 옷과 침낭, 비박용 쉘터, 매트리스, 음식에 이르기까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아무래도 배낭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신시도 대각산을 오르는 취재팀의 배낭에도 많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추위를 견디기 위한 준비였다. 하지만 편안한 밤을 위한 기본 장비 외에 식수와 식량, 술까지 넉넉하게 마련했다. 배낭 무게는 늘어도 산 위에서 보내는 하룻밤 파티를 위해 이 정도 수고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 월령재에서 월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하룻밤 여유 위해 배낭은 무거워지고

신시도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대각산을 향해 출발했다. 월영재를 넘어 곧바로 대각산으로 오를 수도 있었지만 능선을 따라 돌아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199봉과 월영산(月影山·198m) 능선에 오르면 새만금방조제와 배수갑문 일대가 시원하기 조망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그 장관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비포장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배수갑문을 만들며 산자락을 잘라낸 커다란 절벽이 형성된 곳이다. 단애 끝에 올라서면 부안으로 뻗은 새만금방조제와 웅장한 배수갑문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비포장길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길가에 하얗게 꽃을 피운 억새 무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신시도에는 아직 가을이 절정이었다.

임도를 타고 급사면을 통과해 주능선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능선길을 걷다 보니 성근 숲 사이로 선유도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199m봉 정상에 도착하니 서쪽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졌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신시도 일대는 물론이요 무녀도와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로 이어지는 고군산군도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신선이 놀던 섬이 발아래 있었다.

199m봉을 지나 북쪽 능선을 타고 월영재로 이동했다. 주차장에서 임도로 연결되는 이 고갯마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시도와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이제 바다 위로 도로가 뚫리며 주민들이 이 고개를 넘는 일은 없어졌다. 고개 꼭대기의 널찍한 목조데크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월영재에서 계속 능선을 타면 주상절리가 형성된 바위지대를 거쳐 월영산(月影山·198m) 정상에 오른다. 이곳은 고군산군도의 주봉으로 최치원이 단을 쌓고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장소다. 하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산정에는 작은 안내판 외에는 별다른 시설은 없었다.

▲ 물 빠진 갯벌을 따라 산책 중인 신시도의 물소(?).
▲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에 다리를 만들기 위해 교각을 세우고 있다.
▲ 산길에 거치게 되는 저수지의 둑길.
대각산 바위테라스에서 야경에 빠져

월영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대각산(187.2m)으로 진행했다. 완만한 바위 능선을 타고 20분쯤 가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오른쪽 능선은 신시도~무녀도 간 도로공사로 끊겨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아담한 정자가 있는 넓은 논 옆의 공터에서 능선길이 끝났다. 넓은 도로를 건너 납작한 몽돌이 깔린 해변으로 나섰다. 나중에 이 지역에 마리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해변에서 능선을 타고 대각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거칠고 가파른 바위능선을 따라 대각산을 올랐다. 고도가 높아지며 아기자기한 선유도 풍광이 가감 없이 펼쳐졌다. 시야가 좋아 남쪽 멀리 위도까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섬 산 특유의 막힘없는 조망을 보니 눈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3층짜리 전망대가 있는 대각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전망대는 지붕이 있어 비나 눈을 피하기 좋은 장소였다. 하지만 자연스런 풍광을 보기 위해 조금 아래 평평한 바위 턱에 자리를 잡았다. 신시도 마을과 선유도 일대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멋진 전망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바닷바람이 심했지만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앉아서인지 그리 춥지도 않았다. 의외로 푸근한 늦가을 날씨였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은 가라앉고, 하나둘 마을의 불빛이 살아났다. 강풍에 시달린 주름진 바다가 어둠 속에 빛났다. 가스등을 밝히고 즐기는 한밤중의 대화는 그칠 줄 몰랐다.

산 위에서 느끼는 대자연과의 일체감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하늘을 지붕 삼아 누웠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순간이었다. 신시도에서 보낸 하룻밤은 비박이 주는 유쾌함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땀 흘리며 오르는 높은 산의 성취감도 부럽지 않은 즐거움이 있었다.

산행길잡이

비박은 대각산 정상이나 남서쪽 능선에서

신시도 산행은 주차장에서 199m봉~월영재~월영산~ 미니해수욕장~대각산~마을길~월영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약 7km 코스가 적당하다. 산행시간은 4시간가량 소요된다. 중식 시간까지 합해도 5시간 남짓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신시도 산행은 따로 떨어진 199m봉과 월영산, 대각산 세 개의 봉우리를 넘으며 조망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오르내림이 심하지만 산이 나지막해 크게 힘들지 않다. 산길은 뚜렷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이정표도 비교적 확실하다. 어떤 코스를 이용하든지 다시 월영재로 돌아와야 답사가 끝난다.

산을 넘는 것이 힘겹다면 해안을 따라 조성된 군산 구불길을 이용한 트레킹도 가능하다. 미니해수욕장에서 북쪽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구간이 멋지다. 신시도 남쪽을 돌아 배수갑문 옆의 절개를 따라 걷는 코스도 있다. 하지만 역시 조망은 산정에 올라 보는 것이 제일이다.

비박 장소는 대각산 정상 전망대나 부근 능선의 바위지대가 좋다.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평탄한 곳이 많고 주변에 나무가 있어 어느 정도 바람도 막아준다. 선유도 방면으로 형성된 절벽 위에 앉아 보는 조망이 환상적이다. 이곳에서 비박을 하려면 사전에 식량과 식수를 여유 있게 준비해야 한다. 신시도 내에서는 식수나 음식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초겨울 비박 요령 비박은 어쩔 수 없이 산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상황에 필요한 기술이다. 텐트나 침낭, 매트리스 없이 생존을 위한 비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비박을 재미로 즐기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충분한 보온력을 지닌 침낭과 매트리스는 기본 장비다. 보온의류와 취사구도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부수적으로 하늘을 가려 비나 이슬을 막을 수 있는 타프나 쉘터를 사용하면 훨씬 쾌적한 비박이 가능하다.

산에서 섭취할 식수와 식량도 필수 품목이다. 기호에 따라 술이나 커피, 차 등을 가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음식이나 장비는 금물이다.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고생스런 산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 거리가 길면 짐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답이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또는 동군산IC에서 군산을 거쳐 비응항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새만금방조제를 이용해 신시도까지 간다. 대중교통은 없어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야 접근이 가능하다. 비응항 방조제 시작 지점에서 야미도를 거쳐 신시도 주차장까지 약 15km 거리로 20분가량 소요. 현재 신시도에서 무녀도〜선유도〜장자도로 연결되는 연륙교가 조성되고 있다. 방조제에서 신시도 마을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라 일반 차량은 통제하지만 마을 주민의 차는 다니고 있다.

숙식(지역번호 063) 숙박할 곳으로는 신시도 마을에 신시도민박(463-0462), 해뜨는민박(465-8755), 정다운펜션(463-4372) 등이 있다. 마을에 있는 산아래식당(466-1558)은 자연산 회와 해산물을 푸짐하게 내놓는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