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의 - '북한산 4대계곡(불광계곡ㆍ진관사계곡ㆍ삼천사계곡ㆍ북한산성계곡) 탐방산행' 코스
독바위역→불광중학교→불광사→돼지바위→불광계곡→불광폭포→향림담→잣나무숲→송전탑→475봉→향로봉 정상→관모봉→갈림길
→진관사계곡→전망데크→진관사→진관사 일주문→삼천탐방지원센터→미타교→삼천사→삼천사계곡→부왕동암문갈림길→부왕동암문
→부황사지→청하동문→최송설당→북한산성계곡→노적교→중성문/시구문→새마을교→혀깨문바위→서암사→수문지→산성탐방안내소
▼ 14시 00분 - 삼천사
▼ 14시 03분 -
▼ 14시 06분 -
▼ 14시 20분 -
▼ 14시 24분 -
▼ 14시 31분 -
▼ 14시 35분 -
▼ 14시 45분 -
▼ 14시 58분 -
▼ 15시 08분 -
▼ 15시 15분 - 부왕동암문
▼ 15시 20분 -
▼ 15시 33분 - 부왕사지 입구를 지나...
▼ 15시 08분 - 청하동문
▼ 15시 38분 - 최송설당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
민족교육의 선구자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보모
일제시대 전 재산을 털어 김천고보(현 김천중·고교)를 설립하였다.
나이 마흔에 영친왕의 보모가 된 그는 10년간의 보모 생활을 마친 뒤
서울 무교동에 ‘송설당’이라는 큰 집을 짓고 사회사업을 활발하게 벌인 여걸(女傑)이면서
한시와 국문 가사를 담은 ‘송설당집(松雪堂集)’을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최송설당은 홍경래난에 연루되어 유배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英親王)의 보모로 10년 동안의 덕수궁 생활을 마치고 나올 무렵
상당한 재산을 갖게 된 그는 당초 30만원을 웃도는 재산을 해인사에 시주하려고 했지만,
당시 해인사가 친일세력에 장악된 것을 우려한 만해 한용운과 지역 인사들의 설득으로
김천고보 설립으로 방향을 돌렸다.
최송설당은 67세이던 1922년 한시 167제(題) 258首와 국문 가사 49편을 수록한 ‘송설당집’을 발간했다.
당대의 대문장가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 서문을 쓴 이 문집은 그녀의 학식이 상당한 수준이고
문학적 재능 또한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 여기서 맥가이버의 '북한산 4대계곡(불광계곡ㆍ진관사계곡ㆍ삼천사계곡ㆍ북한산성계곡) 탐방산행' - 3부를 마치고...
-▥☞ 2부[향로봉 정상→관모봉→갈림길→진관사계곡→전망데크→진관사→진관사 일주문→삼천탐방지원센터→삼천사]는 여기를 클릭.☜▥-
-▥☞ 4부[최송설당→북한산성계곡→노적교→중성문/시구문→새마을교→혀깨문바위→서암사→수문지→산성탐방안내소]는 여기를 클릭.☜▥-
'▣산행·등산사진후기☞ > ♤ 북한산·도봉산·사패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730]북한산 7대사찰(진관사ㆍ승가사ㆍ문수사ㆍ중흥사ㆍ노적사ㆍ국녕사ㆍ백화사) 탐방산행 - 1부 (0) | 2016.07.30 |
---|---|
[20160717]북한산 4대계곡(불광계곡ㆍ진관사계곡ㆍ삼천사계곡ㆍ북한산성계곡) 탐방산행을 다녀오다 - 4부 (0) | 2016.07.17 |
[20160717]북한산 4대계곡(불광계곡ㆍ진관사계곡ㆍ삼천사계곡ㆍ북한산성계곡) 탐방산행을 다녀오다 - 2부 (0) | 2016.07.17 |
[20160717]북한산 4대계곡(불광계곡ㆍ진관사계곡ㆍ삼천사계곡ㆍ북한산성계곡) 탐방산행을 다녀오다 - 1부 (0) | 2016.07.17 |
[20160616]구파발역에서 이말산ㆍ북한산ㆍ북악산ㆍ낙산 이어 걷고 동대문역까지 다녀오다 - 1부 (0) | 2016.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