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의 - '북한산 4대계곡(불광계곡ㆍ진관사계곡ㆍ삼천사계곡ㆍ북한산성계곡) 탐방산행'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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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시 38분 - 최송설당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
민족교육의 선구자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보모
일제시대 전 재산을 털어 김천고보(현 김천중·고교)를 설립하였다.
나이 마흔에 영친왕의 보모가 된 그는 10년간의 보모 생활을 마친 뒤
서울 무교동에 ‘송설당’이라는 큰 집을 짓고 사회사업을 활발하게 벌인 여걸(女傑)이면서
한시와 국문 가사를 담은 ‘송설당집(松雪堂集)’을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최송설당은 홍경래난에 연루되어 유배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英親王)의 보모로 10년 동안의 덕수궁 생활을 마치고 나올 무렵
상당한 재산을 갖게 된 그는 당초 30만원을 웃도는 재산을 해인사에 시주하려고 했지만,
당시 해인사가 친일세력에 장악된 것을 우려한 만해 한용운과 지역 인사들의 설득으로
김천고보 설립으로 방향을 돌렸다.
최송설당은 67세이던 1922년 한시 167제(題) 258首와 국문 가사 49편을 수록한 ‘송설당집’을 발간했다.
당대의 대문장가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 서문을 쓴 이 문집은 그녀의 학식이 상당한 수준이고
문학적 재능 또한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 15시 44분 - 산성계곡 갈림길
▼ 15시 50분 -
▼ 15시 55분 - 노적교
▼ 15시 57분 - 중성문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 / 김용택 詩
작년에 피었던 꽃
올해도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 피어 새롭습니다
작년에 꽃 피었을 때 서럽더니
올해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이 피어나니
다시 또 서럽고 눈물 납니다
이렇게 거기 그 자리 피어나는 꽃
눈물로 서서 바라보는 것은
꽃 피는 그 자리 거기 당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없이 꽃 핀들
지금 이 꽃은 꽃이 아니라
서러움과 눈물입니다
작년에 피던 꽃
올해도 거기 그 자리 그렇게 꽃 피었으니
내년에도 꽃 피어나겠지요
내년에도 꽃 피면
내후년, 내내후년에도 꽃 피어 만발 할테니
거기 그 자리 꽃 피면
언젠가 당신 거기 서서 꽃처럼 웃을 날 보겠지요
꽃같이 웃을 날 있겠지요
▼ 16시 11분 -
▼ 16시 19분 -
▼ 16시 25분 - 새마을교가 있던 자리는...
▼ 16시 27분 - 계곡길로...
▼ 16시 31분 - 혀깨문바위
▼ 16시 42분 - 서암사
▼ 16시 47분 - 수문지를 지나며...
▼ 16시 55분 - 북한산성탐방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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