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황금산] 황금산 트레킹을 위한 황금산 지도, 황금산 트레킹 코스 모음
2016년 11월 5일 (토)에 맥가이버가 다녀온
서산 황금산 8자 트레킹(주차장-남근목-황금산사-코끼리바위-굴밭절벽-굴금/몽돌해변-해식동굴-헬기장-주차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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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산의 소개
충청남도 서산시의 대산읍 독곶리에 있는 산이다(고도:152m)
지리적으로는 대산반도 북서쪽 끝에 위치하여있다.
『조선지형도』에서 황금산을 볼 수 있다.
『서산군지』(1926)에 의하면 "기은리 자지산(紫芝山)에서 세 지맥으로 나뉜다.
한 지맥은 서쪽으로 뻗어 독곶리 황금산이 되어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나왔으며 크고 작은 용굴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름이 '항금산(亢金山)'이었고, 산이 있는 전체를 총칭해서 '항금'이라 했었다고 전한다.
'황금'은 평범한 금이고
'항금'은 고귀한 금을 뜻하므로 마을의 옛 선비들은 고집스럽게 '항금산'으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항금산(項金山)'으로 한자 표기가 다르다.
삼성종합화학이 생기면서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었지만,
그전에는 일부만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산의 서쪽은 바위 절벽으로 깊은 바다와 접해 있으며 2개의 동굴이 있어 예부터 금을 캐던 굴로 알려져 있다.
관련 지명으로 황금목[黃金項]이 있다.
산의 앞바다는 수심이 깊으며 간조 때에는 유속이 빠르고 파도가 높아서 황금목은 험한 뱃길로 알려져 있다.
출처 :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황금산黃金山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있는 산.
[명칭 유래]
황금산(黃金山)은 ‘항금산(亢金山)’이라 불렸는데 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이 되었다고 한다.
금을 파내던 흔적이 남아 있다.
[자연 환경]
독곶리의 황금산 일대는 망미산맥의 북서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강 편마암에 규암 등 편암류가 관입한 형태이다.
황금산은 원래 섬이었지만 독곳리와 사빈이 연결되면서 육계도가 되었으며, 황금산 동쪽은 육계사주와 습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황금산 서쪽 해안에는 해식애와 파식대가 모식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황금산의 헤드랜드 전면 해식애와 파식대가 만나는 부분에는 폭에 비하여 높이가 높고,
해안선 가까이에서 파도, 조류의 영향으로 침식, 풍화를 거친 해식동(海蝕洞)이 발달되어 있다.
또한 해안 침식 지형인 시아치(sea arch)나 시스택(sea stack) 등도 발견되고 있다.
[현황]
높이는 129.7m이다.
황금산 정상에 있는 황금산사(黃金山祠)는
산신령과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풍어제, 기우제 등을 지내던 곳이다.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6년 복원하였다. 또한 빈대 때문에 망했다는 절터, 옹달샘 등이 있다.
구릉지성 산지인 황금산은 해송과 야생화, 다람쥐 등 빼어난 자연 경관,
완만한 숲길, 코끼리바위[시아치] 등 해안 절벽이 펼쳐져 있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산석유화학공단과
가로림만의 아름다운 조망 덕분에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현재 코끼리바위로 대표되는 해안 절벽 트레킹이 인기를 끌며
평일 800여 명, 주말 3,000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출처 : 디지털서산문화대전
황금산의 전설
4백여년 전에 이곳 황금산 앞바다는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 이곳 어부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황금산 앞 갯골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각산 아래 박(朴)씨라는 한량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고기잡이 보다 무예를 닦는 사람으로 특히, 활을 잘 쏴 인근에서 명궁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날 박씨는 다른 날과 같이 활쏘기와 담력 기르기 등 무예를 닦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박씨는 잠시 쉬는 동안 마당바위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황룡이 나타나 뿌연 연기를 뿜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황금산 앞바다를 지키는 용신으로 이곳의 어부들이 지내는 고사밥을 받아먹고 살고 있노라...
그런데 연평도에 살고 있는 청룡이 황금산 조기 떼를 몰고 가려고해
며칠째 황금산 앞바다 상공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의 힘으로는 청룡을 이기기 어려우니
다음날 새벽에 청룡을 이곳 마당바위 상공으로 유인해 올테니 너의 활 솜씨로 청룡을 쏴 죽여달라,.
화살 시위를 당길 때 반드시 자기(황룡)의 눈을 보고 명중시키면 청룡이 죽을 것이니 꼭 약속을 지켜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다음날 새벽 마당바위 상공에서 황룡과 청룡이 싸움을 하는데
박한량은 재빨리 활에 화살을 끼고 황룡과의 약속대로 황룡의 눈을 보고 시위를 당길려고 하는 순간
자신의 활 솜씨가 너무 뛰어나 꼭 황룡이 화살을 맞을것 같아 황룡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만 청룡의 눈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그순간 청룡의 몸을 뒤트는 황룡과 청룡의 위치가 바뀌었고
화살은 황룡의 눈에 꽂혀 황룡이 우뢰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물 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날밤 황룡이 피를 흘리며 나타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다. 황금산 바다 반대 편에 있는 연평도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큰 동굴을 통해
이제 청룡이 황금산 조기 떼를 연평도 앞 바다로 모두 몰고 가서 이곳 어민들의 생활이 빈곤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황금산 앞바다의 황룡 전설」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조기잡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173~175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9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산면 독곶리[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유환[남, 63]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서산시 대산면 독곶리 황금산 앞바다에는 예로부터 조기가 많았다.
따라서 해안에 거주하는 어민들은 이 앞바다에서 조기를 잡아 생활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기들이 점차 사라져 잡히지 않게 되자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생계를 염려하며 떠나갔다.
그 무렵 활을 잘 쏘는 한 사람이 마을에 들어왔다. 하루는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이곳 바다의 청룡이 나타나 ‘황해도의 황룡이 황금산 앞바다의 조기를 연평도로 몰아간다.’고 하였다.”라고 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마을 앞에 있는 분들[들 이름]에서 청룡과 황룡의 싸움이 있을 것이다.”라며 예언하였다.
그 후 다시 청룡이 그의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분들에서 내가 황룡과 싸울 텐데 내 힘으로는 황룡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활을 가지고 나와서 도와주어야겠다. 내가 황룡과 엉켜서 싸울 때에 나를 보고 활을 쏴라.”라고 하였다.
청룡이 스스로 자신을 쏘라고 한 것이 의아했지만 일단 궁사는 청룡이 알려준 날 활을 가지고 분들로 나갔다.
궁사가 들 가에 숨어 있는데 과연 청룡과 황룡이 나타나더니 뒤엉켜 싸우기 시작하였다.
이에 궁사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쏘려 하는데 이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
궁사의 생각에 자신은 백발백중의 명사수인데 청룡의 말에 따른다면 청룡을 죽이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였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조기잡이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궁사는 황룡을 표적으로 삼아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화살이 시위를 떠나 황룡에게 다가가는 순간 황룡이 몸을 비틀었고 화살은 청룡의 몸에 그대로 꽂혔다.
화살을 맞은 청룡은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뒤로 황금산 앞바다의 조기는 씨가 마르고 말았다. 아울러 조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고단해졌다.
다만 명을 달리 한 청룡이 그날 밤 궁사의 꿈에 나타나,
“황금산이 세 번 푸르러지면 조기가 돌아올 것이다.”라고만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고장 주민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황금산이 두 번 푸르러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황금산 앞바다의 황룡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두 용의 바다 자원에 대한 쟁투이다.
황금산 앞바다를 관할하는 청룡과 황해도 연평도를 관할하는 황룡이 조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서산시에서 황금산과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로는 「황금산굴 전설」을 들 수 있다.
출처 : 디지털서산문화대전
「황금산굴 전설」
黃金山窟 傳說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황금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4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23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내용]
황금산은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의 서북면 최 끝단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이 산에는 금이 있었다고 전한다.
본래 산의 본 이름은 항금산(亢金山)이었는데 후대에 근대화된 지도가 작성되면서 산 이름을 황금산(黃金山)이라고 표기하였다.
옛날 이 산에는 황금사(黃金寺)라는 절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 산에는 긴 굴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황금사의 승려가 황금산의 굴이 얼마나 깊은가 알아보기 위해 양초 열 갑을 가지고 굴에 들어갔다.
그는 초에 불을 밝히고 굴에 들어갔는데 초가 다 타들어가도록 굴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가기를 멈추고 되돌아 나왔다고 한다.
이 굴의 왼쪽 옆에는 곁굴이 하나 있는데 밑으로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이 굴 속에 돌을 던지면 한참이 지나서야 돌이 바다에 닿는다고 한다.
구전에 따르면 이 속에 용이 있다고 하며, 비가 오는 날이면 승려가 이곳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였다고 한다
출처 : 디지털서산문화대전
황금산사의 유래
황금산 입구 표지판에 정상에 있는 [황금산사(黃金山祠)]의 유래란 글귀가 있다.
『 이 황금산에는 옛날부터 산신령과 임경업 장군의 초상화를 모신 조그마한 당집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나 어업을 하는 사람, 배를 부리는 사람, 채약을 하는 사람과 소풍객들이
풍년이나 풍어 또는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치성을 드려왔다.
산신령은 산하를 지켜주시는 신으로,
임 장군은 철저한 친명배청으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다닐 때 태안을 거쳐 갔기에 이곳과 연관이 있고
또한 바다 한가운데서 생수를 구하거나 가시나무로 조기 때를 잡아
군사들의 기갈을 면하게 하는 등 초능력을 지녔던 애국적인 명장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였기에 사후에는 영웅 신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황금바다와 멀지않은 연평바다 사이를 오가는 조기 떼를 놓치지 않으려고
임 장군을 모신 연평도의 충렬사에 대립하여 이곳에 모셨던 것으로서
일제강점기부터 퇴락하기 시작하여 거의 형태도 없었던 것을
1996년에 서산시에서 복원하여 황금산사라 이름 짓고 매년 봄철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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