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선 개통으로 여주 전철여행] 전철 타고 48분… 세종대왕이 가까워졌다
세종대왕이 가까워졌다.
판교~여주를 잇는 전철 경강선이 지난 9월 24일 개통됐다. 48분 걸린다.
여주는 '세종인문도시'를 표어로 내걸고 있다.
세종 임금이 묻힌 영릉(英陵)이 그곳에 있다.
여주대에는 세종리더십연구소가 있다.
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교수(정치학)가 여행을 안내했다.
박 교수는 실록 속 세종의 말을 통해 '세종 정치'의 핵심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종대왕릉으로 가는 길, 세종의 정치를 생각했다.
세상일을 잠시 떠나고자 하는 여행길에서 정치를 떠올리는 일이란 썩 유쾌하지는 않다.
노자(老子)라면 정치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정치가 가장 좋은 정치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절 어디 가능한 일인가.
세종대왕이 묻힌 영릉(英陵). 한 봉분에 왕비와 합장했다. 돌계단을 통해 능침 앞까지 갈 수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세종 시대는 역사상 가장 바람직한 정치가 이뤄진 시기로 꼽힌다.
박 교수는 올여름 세종의 정치를 52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정리한 책 '세종의 적솔력'(흐름출판)을 냈다.
요즘도 새로 발견하는 키워드가 많다 했다.
최근 찾은 네 글자로 '가희유구(可喜有懼)'를 제시했다. "기쁘지만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때는 재위 15년인 1433년 4월.
때는 재위 15년인 1433년 4월.
압록강 건너 야인(여진)을 토벌하는 전투에서 대승(大勝)을 거뒀다는 보고를 받았다.
세종은 "다행히 크게 승리해 진실로 기쁘지만 두렵기도 하다.
지금 성공했더라도 이 공을 보전해 영구히 후환을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성공보다 성공 이후, 혁명보다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일 터이다.
대개 모든 역사는 '이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이전'의 성과마저 물거품으로 만든다.
세종대왕릉은 봉분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세종대왕릉은 봉분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능침으로 오르는 길 양쪽에 돌계단을 만들어 임금이 묻힌 곳까지 갈 수 있도록 했다.
봉분에 절하고 뒤로 돌아 아래를 바라본다.
겨울에도 푸른빛 잃지 않는 소나무로 온통 초록 빛깔이다.
봉분에서 내려와 정자각(丁字閣) 지나 홍살문 쪽으로 걷는다.
(윗쪽 사진) 효종대왕릉 영릉(寧陵). 앞 봉분은 효종비 인선왕후릉. (아랫쪽 사진) 명성황후 생가. 태어나서 여덟 살까지 살았다.
박 교수에 따르면 세종은 이전 성과를 잇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을 잘 계승해야 한다는 '소술선지(紹述先志)'다.
과거를 무화(無化)하는 게 아니라 옛 성과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
쌓은 돌을 다 무너뜨리고 매번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성과는 성과대로 인정하고 이어가야 한다는 뜻.
거인의 어깨 위에 서야 더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다.
박 교수는 세종대왕릉 가기 전 효종대왕릉에 먼저 들를 것을 권했다.
박 교수는 세종대왕릉 가기 전 효종대왕릉에 먼저 들를 것을 권했다.
우리말 두음법칙 때문에 발음이 같지만 한자는 다른 영릉(寧陵)이다.
세종릉과 언덕 하나를 두고 옆에 있다.
왕릉의 향취는 효종릉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 했다.
세종릉은 정비가 너무 잘돼 있다. 왕비(인선왕후) 봉분을 앞에 두고 있는 효종릉은 한결 더 고즈넉하다.
세종릉은 왕비(소헌왕후)와 합장한 하나의 봉분 형태다.
효종릉도 봉분 가까이까지 올라갈 수 있게 했다. 정자각은 공사 중이다.
영릉(寧陵)에서 영릉(英陵)으로 가는 언덕길 약 700m 구간을 '왕의 숲길'이라 부른다.
영릉(寧陵)에서 영릉(英陵)으로 가는 언덕길 약 700m 구간을 '왕의 숲길'이라 부른다.
매년 5월부터 가을까지 개방한다.
후대 임금 셋이 효종릉 참배 후 세종릉으로 갔다는 기록이 실록에 있다.
1688년 숙종, 1730년 영조, 1779년 정조가 이 길을 걸었다.
박 교수는 특히 정조 임금의 행차에 의미가 있다 했다.
임금은 즉위하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했다.
뒤주 속에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것인가. 피바람이 불 터였다.
하지만 "정조가 세종릉을 찾은 것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결국 사람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정신이라 한다.
결국 사람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정신이라 한다.
'훈민정음 해례'에서 하늘(ㆍ)과 땅(ㅡ)을 잇는 일은 사람(ㅣ)을 기다려 이뤄진다고 했다.
'대인이성(待人而成)'이다.
박 교수는 "한글 창제 정신의 요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일을 이루는 사람의 역할에 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 리더십'이라고 했다.
옛사람이 할 수 있었던 일, 지금이라고 할 수 없겠는가. 결국 사람이다.
박 교수 권유대로 효종대왕릉을 먼저 들르고 세종대왕릉을 돌아 나왔다.
신륵사 강월헌에서 보는 남한강 풍광이 아름답다.
명성황후 생가·기념관(031-880-4021): 1851년 고종비 명성황후가 태어나 여덟 살까지 산 곳.
기념관에 관련 자료를 전시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도가 눈에 띈다.
황후를 시해한 도우 가쓰아키가 일본 구시다 신사에 맡겨 보관한 것을 복제했다.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 電光刺老狐)'라는 글이 적혀 있다.
'단숨에 전광과 같이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뜻.
신륵사(031-885-2505): 남한강 변에 지은 전통 사찰이다.
2007년 생가를 방문한 일본인들의 사죄 글도 함께 전시했다.
신륵사(031-885-2505): 남한강 변에 지은 전통 사찰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영릉 조성 후 세종대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중수했다.
벽돌로 쌓아 올린 다층전탑 등 보물 다수.
경강선 여주역에서 주요 유적을 둘러보는 순환버스(월요일 휴무)를 운행한다.
남한강 물줄기 흐르는 강변에 지은 정자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경강선 여주역에서 주요 유적을 둘러보는 순환버스(월요일 휴무)를 운행한다.
'가 노선'은 신륵사→강천보→명성황후 생가를 돌아온다.
'나 노선'은 세종대왕릉→이포보→신륵사를 순환한다. 5000원.
여주시 종합관광안내소 (031)887-2868, 세종대왕유적관리소 (031)885-3123
승용차로 가면 명성황후 생가→신륵사→세종대왕릉 순서가 자연스럽다.
명성황후 생가 인근 삼구농원(031-884-3911)은 버섯 퓨전 요리를 낸다.
승용차로 가면 명성황후 생가→신륵사→세종대왕릉 순서가 자연스럽다.
명성황후 생가 인근 삼구농원(031-884-3911)은 버섯 퓨전 요리를 낸다.
버섯 파스타, 버섯 돈가스 등 각각 1만5000원.
메인 요리를 시키면 버섯회, 단호박 수프, 샐러드, 버섯 탕수 등이 차례로 나온다. 아이들이 좋아할 듯.
여주=이한수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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