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101)의 시를 찾아 읽었다.
문종의 왕자로 태어나 평생 불법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스님도
만년에는 허망하고 허탈했던 모양이다.
'해인사로 물러나 지내며 짓다(海印寺退居有作)'4수 중 2수를 읽어본다.
'여러 해 굴욕 속에 제경(帝京)서 지냈건만, 교문(敎門)도 공업도 이룸 없음 부끄럽다.
이때에 도 행함은 헛수고일 뿐이니, 임천에서 성정을 즐거워함만 하랴
(屈辱多年寄帝京, 敎門功業恥無成. 此時行道徒勞爾, 爭似林泉樂性情).'
무얼 이뤄보겠다고 멀리 중국 땅까지 가서
여러 해 머물며 굴욕을 견디며 애를 써 보았다.
돌아보면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다친 마음을 자연에서 쓰다듬어 타고난 본성을 즐기는 것이 옳고도 옳다.
제4수는 이렇다.
'부귀영화 모두 다 한바탕 봄꿈이요,
취산(聚散)과 존망도 다 물거품인 것을.
안양(安養)에 정신을 깃들이는 것 말고는,
따져본들 어떤 일이 추구할 만 하리오
(榮華富貴皆春夢, 聚散存亡盡水漚.
除却栖神安養外, 算來何事可追求).'
인간의 부귀와 영화는 봄날 잠깐 들었다 깨는 헛꿈이다.
만나면 좋고 헤어져서 슬프다.
어제 있던 사람이 오늘은 죽고 없는 것은 물거품과 다를 게 없다.
안양(安養)은 극락을 일컫는 말이다.
정신을 서방정토로 향하여 청정한 법신을 닦는 것 외에
이 세상에서 다시 추구할 만한 일이 무에 더 있겠는가?
'홍법원에 쓰다(留題洪法院)'시는 더 차분히 가라앉았다.
'옛 절은 티끌 없이 푸른 산을 베고 누워,
흰 구름 사이에서 사립문 열고 닫네.
물병 하나 석장 하나 내 가진 것 전부라,
해가 가고 해가 옴은 상관도 않는다네
(古院無塵枕碧山, 雙扉開閉白雲間.
一甁一錫爲生計, 年去年來也等閑).'
문득 돌아보니 무얼 이뤄 보겠다고 동분서주하던 시간들이 부끄럽다.
해묵은 절집은 푸른 산을 베개 삼아 누웠고,
절문은 흰 구름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열렸다 닫혔다 한다.
물병 하나 지팡이 하나가 내 전 재산이다.
시절이 가고 오는 것은 이제 애탈 것도 없다.
길 위에 잎 구르는 가을이 깊어간다.
본래의 자리는 어디인가?
시를 읽다가 연구실을 나와서 갈대가 서걱대는 청계천변을 길게 산책했다.
봄꿈에 취하고 물거품을 쫓던 시간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