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488] 득구불토 (得句不吐)
옛 전시도록을 뒤적이는데,
추사의 대련 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옆에 쓴 글씨의 사연이 재미있다.
"유산(酉山) 대형이 시에 너무 빠진지라, 이것으로 경계한다
(酉山大兄淫於詩, 以此箴之)."
유산은 다산의 맏아들 정학연(丁學淵)이다.
아버지가 강진으로 유배간 뒤, 그는 벼슬의 희망을 꺾었다.
다산은 폐족(廢族)이 된 것에 절망하는 아들에게
학문에 더욱 힘쓸 것을 주문했지만,
그는 학문보다 시문에 더 마음을 쏟았다.
추사는 그와 막역한 벗이었다.
추사가 정학연에게 써준 시구는 이렇다.
"구절을 얻더라도 내뱉지 말고, 시 지어도 함부로 전하지 말게
(得句忍不吐, 將詩莫浪傳)."
마음에 꼭 맞는 득의의 구절을 얻었더라도, 꾹 참고 배 속에만 간직하고,
흡족한 시를 지었다 해도 세상에 함부로 전하지 말라는 얘기다.
정색한 얘기라면 들은 상대가 대단히 불쾌했을 테지만,
글씨도 내용도 장난기가 다분하다.
샘솟듯 마르지 않는 정학연의 시재(詩才)를 따라갈 수 없어
샘이 나서 이렇게 썼지 싶다.
농담처럼 건네는 말 속에 은근히 뼈도 있다.
누구의 시인가 궁금해 찾아보니,
소동파와 두보의 시에서 한 구절씩 잘라내서 잇댄 것이었다.
소동파는
"시구 얻고 차마 토하지 않음은, 옛것 좋아 내 뜻이 빠져서라네
(得句忍不吐, 好古意所耽)"라 했고,
두보는
"술을 보면 서로 생각나겠지마는, 시 지어도 함부로 전하지 말게
(見酒須相憶, 將詩莫浪傳)"라고 했다.
두 시에서 한 구절씩을 따와 나란히 잇대어 붙이니,
전혀 다른 느낌의 한 짝이 되었다.
처음엔 글씨를 보고 획이 눈에 설어
위품(僞品)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구절을 찾고 보니 추사 외에
이렇게 맵시 나게 따올 수 있을까 싶어 의심이 걷혔다.
더욱이 소동파의 시는
추사가 늘 곁에 두고 보던 '영련총화(楹聯叢話)'에 실려 있다.
여보게 유산! 시를 좀 아끼게나.
입이 근질근질해도 꾹 눌러 참을 때의 그 미묘한 맛을 알아야지.
짓는 시마다 세상에 내놓으면 안에 고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질 않겠나?
그 시 속에 담긴 자네의 속내까지 다 드러나니 이건 안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