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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사는 일 / 나태주 詩

by 맥가이버 Macgyver 2018. 11. 15.

사는 일 / 나태주

 

 1

오늘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서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2

세상에 나를 던져 보기로 한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퇴근 버스를 놓친 날 아예
다음 차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 버리고
길바닥에 나를 놓아버리기로 한다


누가 나를 주워 가줄 것인가
만약 주워 가준다면 얼마나 내가
나의 길을 줄였을 때
주워 가줄 것인가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시험 삼아 세상 한복판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나는 달리는 차들이 비껴가는
길바닥의 작은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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