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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쉽고 예쁜 우리말 쓰기] [8] 영어·일어 섞인 패션 용어 - ‘에리’는 깃, ‘시아게’는 끝손질로 써봐요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11. 18.

‘에리’는 깃, ‘시아게’는 끝손질로 써봐요

[조선일보 100년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생활 속 쉽고 예쁜 우리말 쓰기] [8] 영어·일어 섞인 패션 용어

 

지난 1993년 프랑스 마레지구에서 ‘카티아 조’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보인

27년 경력 디자이너 조성경은 귀국해 국내에서 작업을 의뢰하다 잠시 멍해졌다.

 

봉제, 가봉 수작업 등을 위해 여러 장인들을 찾아갔는데,

공방에서 오가는 ‘선생님’들의 대화를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

 

“에리는 가리누이 하고, 어깨 싱 박아서 우라 울지 않게 하고 카브라 마도매 해서 시아게 잘해라”

같은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찬찬히 따져보니

“깃(에리)은 시침질(가리누이)하고, 어깨 심지(싱) 바느질해서 안감(우라)이 울지 않게 하고,

밑단 접기(카브라·가부라)와 마무리(마도매·마토메)를 해서 다림질(시아게) 잘해라” 하는 뜻.

 

서양 복식의 제작 방식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전해지면서 일본 용어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스(흠), 소데나시(민소매, 소매가 없는 웃옷), 시보리(고무뜨기), 마이·마에(윗도리), 미싱(재봉기) 등은

굳이 ‘장인’들의 작업실까지 가지 않아도 세탁소나 수선실 등에서 적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단어다.

각종 기술이 도제식으로 전해오다 보니 여전히 우리 일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랬던 그도 TV 뉴스에 출연해 남성 패션에 관해 설명하다가 벽에 부딪혔다.

“와이드 칼라는 흔히 윈저 칼라라고도 한다”는 그의 설명에 앵커가

“칼라는 옷깃을 말씀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윈저 옷깃”이라고 되물은 것.

 

“윈저 칼라는 영국 윈저 공이 자주 입던 스타일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어디까지 우리말로 바꿔야 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 뒤로는 도트 프린트는 물방울무늬, 러플은 물결 주름,

플리츠는 얇은 주름, 이런 식으로 바꿔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실태는 지난달 열린 집현전 학술대회에서도 지적됐다.

‘의복 양재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실태와 순화의 방안’을 발표한 연세대 권경일 강사는

“상품 기획 등에선 서구 외래어가 광범위하게,

또 봉제 등 제작 현장에선 일본어가 쓰이는 등 이원적인 언어 사용으로 혼란이 적지 않다”면서

“우리 문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인 언어 순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인터넷 상거래 때도 ‘스트라이프 드레스 셔츠(줄무늬 기본 셔츠·일명 와이셔츠)’

‘폼폼 스팽글 프릴 체크 롱 원피스(방울 같은 장식이 달린 반짝이 주름 긴 원피스)’ 등으로

소개하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현대 의상이 서양 복식 용어를 대부분 그대로 옮겨온 데다,

영어를 섞어 쓰면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외래어를 남용한다.

 

다행히 패션계 안팎에서 순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류산업협회는 일본어 등 봉제 용어를 우리말로 고친 ‘봉제 용어 순화집’을 펴냈다.

 

아버지 이상봉 디자이너에 이어

한글을 의상에 도입하는 시도를 한 이청청 디자이너는

“일본식 용어가 익숙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제작 현장에서 소통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며

“패션계 우리말 쓰기 운동이 더욱 퍼지길 바란다”고 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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