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마운스토리] 양산 천성산,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일찍 뜨는 산꼭대기
산은 온통 원효 설화 관련… 원래 지명은 원적산·소금강으로 전해
천성산 정상에서 일출을 맞는 수많은 인파의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양산시청 제공
고려 말 시인이자 명문장가로서 명성을 날린 김극기는 양산의 풍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는 자연을 보고 입만 열면 노랫말이 됐고,
글만 쓰면 시가 되고 문장이 됐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했다.
‘해질녘 말을 몰아 양산에 도달하니,
좋은 경치 만나 흥이 새로워라.
천 겹이나 쌓인 어지러운 병풍 산이 첩첩하고,
한 덩어리 맑은 거울 물은 반짝이네.
물가에 닿은 버들 빛 처음 푸르렀고,
언덕을 낀 복숭아꽃은 아직도 덜 붉었네.
고륙顧陸의 단청하는 솜씨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곳에,
갸륵한 그대 붓이 홀로 전함을 놀랍게 여기네.’
실제로 그는 자연과의 교감을 부드럽게 표현한 내용의 시를 많이 썼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동문선> 등에 전국을 유람하며 남긴
각 지역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시 260여 수가 지금까지 전한다.
조선 후기 최대 사대부로 꼽히는 김창협도 문집 <농암집> 제6권에
‘천성산天聖山 봉우리들을 바라보며’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천성산 바로 아래 형성된 화엄늪에는 축구장 17배 크기의 억새 군락이 있다.
그 뒤쪽 오른쪽이 정상이며, 왼쪽으로 천성산2봉이 이어진다.
‘어느 덧 명산과 가까워지니 已去名山近
흥 솟는 내 가슴 설레이누나 其如高興何
노을 속 봉우리들 높기도 하고 霞標萬峯競
검푸른 빛몇 고을 서리었구나 黛色數州多
저기 저곳 도량이 숨어 있는 곳 隱約諸天處
아득해라 지난 날 들렀던 기억 微茫昔日過
바위 샘 지금도 그대로일까 巖泉應好在
덩굴은 몇 길이나 자라났을까 幾許長雲蘿
천성산千聖山(920.2m), 양산의 명산이다.
원래 지명은 원적산圓寂山.
원적산 봉수대는 지금도 남아 있다.
<농암집>에 나오는 天聖山은 아마 ‘千’의 잘못된 표기이지 싶다.
<농암집> 외에는 어느 문헌이나 고지도에 ‘天’으로 표기된 게 없다.
원적산은 그 자체로 한반도 전통적 명산으로
통일신라시대 지정한 ‘삼산오악三山五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서쪽 자락 우불산于佛山은 소사로 지정돼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우불산에 있는 우불신당은 조선시대까지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전한다.
1531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고지도 <동람도>에 양산 원적산이 대표산으로 표시돼 있다.
우리나라의 산들은 대개 사계절 다 좋아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계절을 꼽기는 쉽지 않다.
천성산도 영남알프스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산홍을 이루고, 여름엔 계곡,
가을엔 억새, 겨울엔 일출 등으로 유명하다.
영남알프스의 대표 경관인 화엄습지의 억새군락지와 내원사계곡, 홍룡계곡,
성불암계곡, 그리고 북쪽의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을 띤 천성공룡능선은
어느 계절에 찾아도 여느 산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하지만 특히 1월에 천성산을 찾는 이유가 있다.
1680년 제작된 <동여비고>에도 원적산이 표기돼 있다.
육산·악산 모습 두루 갖춰
한반도 내륙에서 일출이 가장 빠른 산은 부산 금정산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몇 년 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울릉도 성인봉이 7시 31분으로 한반도의 산에서 일출이 가장 빨랐고,
내륙에서는 금정산 고당봉과 부산 태종대·해운대가 그보다 1분 늦은 32분이라고 밝혔다.
그 뒤로 남해 금산 35분, 제주도 성산 일출봉이 36분, 태백산 장군봉과 지리산 천왕봉이 38분,
설악산 대청봉이 42분, 북한산 백운대가 47분이었다.
일출은 지구의 기울기와 위도의 높낮이, 동쪽에 위치하거나 지형의 고저에 따라 시차가 난다.
지구의 기울기는 전문적인 분야라 정확히 계산하기 쉽지 않지만
동쪽에 위치하거나 산의 높낮이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금정산은 높이가 802m, 천성산은 920m이다.
동쪽으로 향한 자오선 차이도 거의 없다.
위도는 천성산이 근소하게 위에 있어 조금 늦을 수 있지만 시차가 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천성산의 일출은 금정산 못지않게 빠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내륙에서 일출이 가장 빠른 산은 금정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위도상으로 바로 위에 있는 천성산도 비슷한 수준,
즉 한반도에서 일출이 가장 빠른 편에 속하는 산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새해만 되면 수많은 인파가 금정산과 천성산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1700년 중반에 발간된 <산경표>에는 원적산 옆에 천성산 혹은 금강산이라고 병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원적산을 신비로운 명산으로 꼽는 요소는
조선 세종 때 북방 6진 개척에 큰 공을 세운 이징옥 장군의 탄생설화와 관련 있다.
<무명자집>11권에
‘이징옥의 모친이 잠을 자는데 영취산이 또박또박 걸어와 속곳 가랑이로 들어오고 나서 큰아들 징석을 낳고,
원적산이 가랑이로 들어오고 나서 둘째 징옥을 낳고, 금정산이 들어오고 나서 셋째 징규를 낳았다고 한다.
세 아들이 태어나 각자 태몽에 나타난 산에서 공부하여 무예를 닦았으므로
아호를 각각 취봉鷲峰, 원봉圓峰, 금봉金峰이라 했다고 한다’고 나온다.
이 세 산들은 지금까지 명산으로 통한다.
천성산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양산편에 ‘진산은 원적산이다.
천성산,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우불신당亏弗神堂은 원적산 밑에 있는데 춘추로 향축香祝을 내려 제사를 지낸다.
소사小祀이다’라고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산군편에는 ‘원적산은 고을 북쪽 20리에 있으며,
혹은 천성산이라고도 하고, 또는 소금강산이라고도 한다.
원적산 봉수는 남쪽으로는 동래현 계명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언양현 부로산에 응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성산2봉 부근에서 정상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이같은 기록으로 볼 때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원적산이란 지명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불교가 지배적이었으니까 지명유래와 관련,
불교에서 말하는 원적이란 의미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불교 용어 ‘원적’은 모든 덕諸德이 원만圓滿하고,
모든 악諸惡이 적멸寂滅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는 모든 번뇌의 불을 꺼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해탈이고 득도이다.
그런데 이후 의미가 확대해석되어 스님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의 완성으로 죽음을 봤다는 의미다.
천성산(원효봉) 정상석.
원적산·천성산 본질은 다르지 않아
깨달음의 의미로서 원적산은 바로 천성산과 연결된다.
천성산은 원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천성산엔 원효와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중국 송대의 승려인 찬녕(919~1002)이
당·오대·송초의 고승高僧 660여 명에 관한 전기를 기록한
<송고승전>에 원효에 관한 내용도 소개된다.
일부 살펴보면,
‘원효의 발언은 미친 듯 난폭하고 예의에 어긋났으며, 행동은 상식의 선을 넘었다.
주석서를 써서 <화엄경>을 강의하기도 했고,
혹은 사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고, 혹은 여염집에서 유숙하고,
혹은 산수에서 좌선하는 등 계기에 따라 마음대로 하여 일정한 규범이 없었다’고 한다.
이어 천성산의 유래와도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원효가 당나라 태화사의 1,000명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求衆
(이른 새벽에 큰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는 의미)이라고 쓴 판자를
그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곳 대중들이 공중에 떠 있는 현판을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쳐나와 보는 순간 뒷산이 무너져 절이 매몰됐다.
이 인연으로 1,000명의 대중이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됐다.
천성산 8부 능선에 있는 원효암. 원래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으나 지금은 통제하고 있다.
원효는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 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에 주변에 89개 암자를 세워 1,000명을 거주시켰으며,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을 강론하며 1,000명의 승려를 깨닫도록 이끌었다.
이 때 화엄을 설한 자리가 화엄벌이 됐고,
1,000명의 승려가 모두 성인이 됐다고 해서 천성산이라 했다.’
결론적으로 원적산이나 천성산은 별 개념 차이가 없는 것이다.
고지도에는 대부분 원적산으로 등장한다.
먼저 1531년 관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고지도 <동람도>에는
양산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원적산과 취서산이 뚜렷하게 표시돼 있다.
1680년대 발간된 <동여비고>에도
원적산이라 하면서 일명 천성산 또는 소금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1700년대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산경표>도 원적산이라 하면서
천성산과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병기하고 있다.
1861년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전도>에는 원적산만 써놓았다.
따라서 지금의 천성산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원적산으로 널리 사용됐으며,
이후 천성산이란 지명을 더불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지명을 정리한 <조선지지자료>에도 원적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 일제 강점기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원효산과 천성산으로 분리 표기돼 있다.
아마 여기서 원래 지명인 원적산은 사라지고, 제1봉인 원효봉을 천성산 정상,
제2봉을 천성산2봉으로 해서 지금에 이르른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원효산은 과거 고지도나 문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홍룡사 관음전 옆에 있는 홍룡폭포가 겨울을 맞아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그 옆에 불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출맞이 봉우리엔 매년 인산인해
등산로는 다양하게 접근이 가능하다.
또 낙동정맥의 주요 능선으로 낙동정맥 종주꾼들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산이다.
일반적으로 천성산 정상 원효봉 접근은
입장료 2,000원과 승용차 주차비 2,000원을 내는 내원사에서 시작한다.
내원사에서 천성산2봉까지 불과 2.5㎞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3월 2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천성산 지뢰제거작전에 따라 등산로가 폐쇄상태다.
내원사 옆 등산로 입구에 등산로 폐쇄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폐쇄구간은 화엄늪~천성산 정상, 천성산 정상과 2봉 사이에 있는 은수고개~천성산 정상,
원효암주차장~천성산 정상 구간이다.
천성산 정상 8부 능선에 있는 원효암은 원효가 수행한 암자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서 정상 접근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통제된 상태다.
천성산 서쪽 자락 홍룡폭포가 있는 홍룡사에서도 많이 접근한다.
하지만 내원사 등산로에 붙은 똑 같은 플래카드가 홍룡사 등산로 입구에도 걸려 있다.
홍룡사도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전한다.
그런데 홍룡사는 관음성지로 통한다.
관음성지는 의상과 관련 있다.
원래 원효와 의상이 함께 중국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원효는 밤에 맛있게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뒤 유학을 포기한다.
반면 의상은 유학하여 중국 태화사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부처의 사리와 유물을 받아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관음성지와 적멸보궁은 의상과 관련이 있다.
1861년 제작한 김정호의 <대동전도>에도 원적산이 뚜렷이 나와 있다.
홍룡사 뒤편 홍룡폭포는 양산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며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가 무지개를 만들면 무지개를 타고 황룡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해서
홍룡虹龍이라 명명됐다고 전한다.
정상 바로 아래 화엄늪은
신라 원효대사가 1,000여 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설법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드물게 형성된 산지습지로 지난 2002년 환경부가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 보호 관리를 받고 있다.
축구장 17개 이상 되는 면적의 화엄늪 산지습지엔 엄청난 억새가 군락을 이뤄 장관이다.
현재는 화엄늪부터 천성산 정상 원효봉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사실상 천성산 정상은 접근불가인 것이다.
하지만 등산객들은 철조망을 넘거나 둘러서 정상을 향하고 있다.
주요 일출맞이 장소는 천성산 정상과 2봉 사이 해돋이봉에서 한다.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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