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 도보여행 후기☞/☆ 서울곳곳을 찾아서

[20210808] 개운산 공원길ㆍ성북천ㆍ숭인근린공원 이어 걷기를 다녀오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21. 8. 8.

8월 08일(일) 개운산 공원길ㆍ성북천ㆍ숭인근린공원 이어 걷기를 다녀오다.

'개운산 공원길ㆍ성북천ㆍ숭인근린공원 이어 걷기' 코스

 

길음역→개운산 새소리어린이공원→화목정→마로니에 마당→자연학습장→운동장→방생선원→개운중학교→성신여고미아리고개→성신여대입구역→성북천→보문역→미타사→보문사→동산초교→청룡사→숭인근린공원→동망각→동명정→묘각사→동묘앞역

'개운산 공원길ㆍ성북천ㆍ숭인근린공원 이어 걷기' 이야기를 시작하며...

 

오늘은

'개운산 공원길ㆍ성북천ㆍ숭인근린공원 이어 걷기'를 위해 길을 나선다.

 

 

▼ 길음역에서...

 

개운산 開運山 진석산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산으로서, 안암산,陳石山이라고도 한다.

삼각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끝자락은 보현봉에서 형제봉과 북악터널의 위쪽인 보토현을 거쳐,

328m 봉우리에서 다시 서남방의 북악 지맥과 동남방의 미아리고개 지맥으로 갈린다.

이 동남방 지맥은 貞陵을 끼고 돌아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로 이어지며,

다시 표고 134m의 개운산 봉우리를 형성한다.

 

개운산은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의 개운사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또 안암동에 있어 안암산으로, 종암제1동의 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어 진석산으로도 불렸다.

개운산 남쪽 기슭, 안암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큰 길을 따라 올라가

안암동5157번지 뒷산의 이어진 봉우리가 높이 둘러 선 아래에는 개운사가 있다.

 

개운사는 태조 5(1396) 왕사 무학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고려대학교 이공대 부근에 짓고 이름을 永導寺라 하였다.

정조 3(1779)에는 원빈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부근에 묘소를 정하고 永明園이라고 하였는데,

절이 원묘에서 가깝다 하여 북쪽으로 옮겨 짓고 이름도 개운사라고 고쳤다.

그런데 東師列傳에 보면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영도사의 도문 스님 처소에서 주로 양육되었는데,

언젠가 영도사에서 노닐다가 절의 한 모퉁이에 이름을 써놓았고,

왕위에 오른 다음 절 이름을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으로 개운사라고 고쳤다고 한다.

 

개운사는 20세기 이후 한국 교육불사와 진보적 불교운동을 주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26년부터 근대 불교의 대석학이었던 박한영 스님이 머물면서 강원을 이끌어 나갔던 일이 그 시초였고,

1970년대 부속암자인 대원암에 탄허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사업에 종사하였던 일이 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1981년부터 중앙승가대학이 이곳을 교육 도량으로 사용하면서

젊은 학인스님들이 불교진보운동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운산 일대는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신흥 주택가로 각광받으면서,

서쪽 기슭인 돈암동과 동선동 일대에 전차가 가설되고, 인구 집중도가 높은 주거지로 변하였다.

따라서 1940년에 개운산 일대는 공원지역으로 고시되었다.

이에 앞서 1934년에는

오늘날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안암동 건물이 신축되어 민족교육기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개운산 주위에는 남쪽으로 고려대학교, 서쪽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북쪽으로 서라벌중,고교를 비롯한 많은 초,,고등학교가 위치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땅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현재 개운산의 표고 75m 이상 지역은 임야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그 이하는 주택가와 학교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원지역은 대체로 다른 지역보다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다.

 

광복 이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의 야산은 울창한 산림으로 되어 있어,

인근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였고,

낙엽이나 나무의 잔가지들은 땔감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많은 월남민들이 산비탈에 정착하면서부터 나무를 마구 베어냈고,

6,25전쟁 때 미아리~종암동을 잇는 국군의 서울 방어 저지선이 바로 이 능선이었으므로,

포격전에 의해 많은 나무가 불타서 한때는 민둥산이 되었다.

 

그후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조림과 식목사업으로 지금은 수령 50~60년 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아울러 1982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인근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기능하며,

산 중턱 이상까지 도로가 놓여져 접근하기 쉽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

 

 

성북천

 

성북구 북악 줄기 구준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청계천과 합류하여 중랑천으로 흐르는 하천으로서,

길이는 5.11로 하류지역은 잘 정비되어 있고 상류 지역은 복개되어 있으나

점차 자연하천으로 복원되고 있다.

안암천, 안감내, 안암내라고도 한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

 

 

미타사 彌陀寺

 

시대 고려

건립시기 950

성격 , 사찰

유형 유적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 3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950(광종 1)혜거(慧居) 국사가 창건하였다. 1047(문종 1) 오층석탑이 조성되었고, 1314(충숙왕 1)혜감(慧鑑) 국사만항(萬沆)이 중수하였다.

 

1457(세조 3)에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씨가 중수하였다. 당시 정순왕후는 매일 이 지역에 있는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에 귀양한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1836(헌종 2) 주지인 비구니 상심(常心)이 진허 인일(震虛 仁一)을 증명법사로 하여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인 비구니 계주(季珠)가 고봉(古峰)을 증명법사로 하여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관음전·단하각(丹霞閣)이 있으며, 유물로는 1047년에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다. 또한 대웅전 안에는 1863(철종 14)에 제작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삼성각 안에는 1874(고종 11)에 조성된 칠성탱화를 비롯하여 1915년에 조성된 독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문사 普門寺

탑골승방

 

시대 고려

건립시기 1115

성격 , 사찰

유형 유적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168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이다. 1115(예종 10)에 담진(曇眞)이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조그만 암자로, 탑골에 있었으므로 탑골 승방이라 하였다. 그 뒤 1692(숙종 18)에 대웅전을 개축하는 등 수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45년부터 비구니 은영(恩榮)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원래는 조계종 산하의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2년 독립하여 보문종을 창종하고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는데, 현재 그 규모면에서 굴지의 거찰(巨刹)이 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석굴암·호지문·선불장(選佛場보광전(普光殿산령각(山靈閣석굴암노전(石窟庵爐殿삼성각(三聖閣별당·요사채, 한의원 및 특별양로원이 있는 시자원(施慈園)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굴암은 은영이 그 분야의 권위자를 모아 준공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각과 설계를 하였고, 공사비만 1억을 들여 1972년 부처님 오신 날에 착공하였으며 36개월의 역사 끝에 점안식을 가졌다. 경주 석굴암과 똑같은 규모로 만들었으나, 구성면에서 볼 때 경주 석굴암은 정면이 1문인 데 비하여 이곳은 3문이며, 실내 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실내 천장으로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단지, 경주 석굴암의 전실에 있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오래된 문화재는 없으나 석굴암 앞의 높은 단 위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팔각구층석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탑 안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여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들만으로 구성된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언제나 150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수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도의 분위기가 특히 엄숙한 도량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룡사 靑龍寺

 

건립시기 조선중기

성격 사찰, 불교건축

유형 유적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망산길 65(숭인동)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고려전기 승려 도선국사의 유언으로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사찰. 불교건축.

 

내용

청룡사(靑龍寺)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망산길(현재 숭인동)에 위치한 절로, 고려 태조 때 도선국사의 유언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 사찰은 한양의 외청룡 산등성이에 지어져서 청룡사라 불렸지만, 그 건립 연혁에 관해서는 정확히 전해지는 것이 없다.

 

1세 주지로 혜원(慧圓)이 절을 맡은 이래로, 줄곧 비구니들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 예로 조선 건국 이후 이제현(李齊賢)의 딸이자 공민왕비인 혜비(惠妃)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스님이 되어 이 절에 있었다거나, 1차 왕자의 난 뒤에는 세자 이방석(李芳碩)의 누나인 경순공주(慶順公主)가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세조 때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난 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이곳에 머무르며, 날마다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았다고도 한다. 영조대의 이 기록들은 모두 정업원(淨業院)과 관련한 내용으로 청룡사의 전신을 정업원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의문을 남긴다.

 

청룡사의 존치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서이다. 청룡사에는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석지장삼존상 및 시왕상일괄(보물 제1821)이 있는데, 이를 통해 청룡사의 정확한 존치 시기를 조선 중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보물 외에도 1868(고종 5)에 제작되어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칠성도(七星圖), 현왕도(現王圖)가 있으며, 1898(광무 2)에 제작된 감로도(甘露圖), 1902년에 제작된 신중도(神衆圖), 가사도(袈裟圖), 석조삼불상(石造三佛像)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숭인동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청룡사는 대부분의 전각이 최근에 새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각 배치는 조선 중기 사찰의 전형적인 구성인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의 배치이다. 산지중정형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후면에 중심 불전을, 좌우에 승려들이 기거하거나 대중을 받는 요사(寮舍), 전면에 사찰로 진입하는 입구가 되면서 법회 등을 여는 우화루(雨花樓)를 배치하는 형식이다.

 

청룡사는 우화루 우측에 다포형식의 일주문(一柱門)을 두어 사찰 안으로 진입하도록 했지만, 대웅전을 중심으로 마주보는 곳에 우화루를 두고, 좌우에 심검당과 명부전을 배치하여 조선 중기 산지사찰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대웅전 뒤쪽 약간 높은 곳에 산신을 모신 산령각을 둔 것은 다른 사찰들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망봉 東望峰

 

유형 자연물

성북구 보문동6가와 종로구 숭인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청룡사 동쪽에 솟은 산봉우리이다. 단종왕비 정순왕후 송씨가 거처하며, 단종을 위하여 매일 조석으로 이곳에 올라 와서 동쪽으로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영조 47(1771)에 정업원구기비를 세우고, 이 봉우리 바위에 東望峰 석자를 친필로 새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

 

동망정

 

동망정은 조선 6대왕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가서 죽음을 당하자

그의 비 정순왕후송씨가 현재 청룡사 자리인 정업원에서 시녀와 같이 지내면서

매일 동쪽(영월쪽)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올라와 망왕의 명복을 빌었다하여

'동망봉'이라 부르게 된 유래에 따라 이곳에 팔각 정자를 건립하여 '동망정'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묘각사 妙覺寺

 

시대 근대

건립시기 1942

성격 사찰

유형 유적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178·3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駱山)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홍선이 창건한 사찰.

 

내용

대한불교관음종(大韓佛敎觀音宗)의 총본산이다. 대한불교관음종은 처음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이었는데 1988년에 명칭 변경하고, 19891월 재단법인 대한불교관음종으로 설립되었다. 19425월 이홍선(李泓宣)이 창건하였고, 그 뒤 두 차례의 증축을 하였다.

 

창건 이래 현재까지 법화경을 중심으로 수행과 대중 불교운동을 지향한 법화신앙(法華信仰)의 중심사찰로서, 현 위치에 절을 세우면 서울이 평안하고 시민생활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터를 잡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석굴암(石窟庵),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은 1975년에 착공하여 19816월에 완공한 60평의 건물로서, 내부 천장이 매우 높고 지붕은 경상북도 하동에서 만든 청기와를 사용하였다. 법당의 본존불은 청동불로서 합장을 한 특이한 모습이며, 좌우에는 4대보살상, 뒤편에는 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 석굴암의 불상은 모두 북향을 하였는데, 일반적인 불상 배치법과는 달리 북쪽을 향한 것은 이북동포의 안녕과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절의 모든 행사는 창건기념일인 음력 524일에 행해진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것으로 '개운산 공원길ㆍ성북천ㆍ숭인근린공원 이어 걷기'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