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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충청 도보후기☞/☆ 괴산 산막이옛길

세상으로 통하던 ‘50년전 그 벼랑길’…충북 괴산 ‘산막이 옛길’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1. 29.

세상으로 통하던 ‘50년전 그 벼랑길’…충북 괴산 ‘산막이 옛길’

글·사진 이로사 기자 ro@kyunghyang.com

한반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괴산호가 하얗게 얼어있다. 오른쪽 끝부분에 보이는 것이 산막이 마을이다.

 
해발 437m 천장봉에 서서 하얗게 굳은 괴산호를 굽어봤다. 

언 호수 위로 사람들이 점으로 걷고 있다. 이 길 따라 닿는 곳이 저곳일까 싶다. 두 시간쯤 후 내려다보던 호수에 닿았다.

꽝꽝 얼어붙은 호수는 광대했다. ‘위험 출입금지’ 현수막을 뒤로 하고 몇몇 사람들이 그곳에 서 있었는데, 표정이 밝다.

중년의 사내가 엎드려 턱을 괴고 포즈를 취했고, 또다른 중년의 사내는 깡총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차 없는 너른 찻길 위를 걷는 사람들처럼.

괴산호를 끼고 도는 충북 ‘괴산호 산막이 옛길’은 말 그대로 50여년 전 산길을 그대로 복원한 옛날 길이다.

산골 오지 마을인 ‘산막이 마을’을 세상과 연결해주던 유일한 길이었다고 한다.

1957년 괴산댐이 생겨 일대가 수몰되면서 산막이 마을로 닿는 길이 없어지자, 마을 사람들이 가파른 벼랑을 따라 십리 길을 냈다.

이 위태로운 벼랑길을 2009년 복원해 산책로로 만들었다.

좁고 험한 길 위에 나무 데크를 깔고 절벽 위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덕분에 지금은 아이와도 함께 걸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길이 됐다.

산책로를 따라 간다면 왕복 6㎞가량, 천천히 걸어 3시간이면 충분하다.

들머리는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괴산댐(칠성댐) 부근. 버스로 수력발전소 앞에서 내려 15분쯤 걸어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길이다.

입구에 섰는데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눈발이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왼편으로 얼어붙은 괴산호가 드러났다.

그 위에 조용히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걷고 있는 사람들.

 

소나무 숲을 지나 20분쯤 걸어 망세루에 닿았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다.

이곳에 서니 비학봉, 군자산, 옥녀봉, 아기봉 등 괴산의 명산이 겹겹이 보인다.

그 곁에 등산로와 산책로가 나뉘는 갈림길이 있다.

오던 길을 따라 산 허리에 죽 이어진 게 산책로, 방향을 바꿔 산을 올라 산능선을 따라 나 있는 게 등산로다.

목적지는 똑같이 산막이 마을. 질러가느냐, 올라 돌아가느냐 차이다.

신은 등산화가 무색해 편안한 나무 데크에서 등산로로 방향을 바꿔 올랐다.

다소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일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다. 시작부터 가파른 눈길이다.

첫 번째 고지는 해발 450m 등잔봉. 그리 높지 않은데, 닿는 데 50분가량 걸렸다. 돌아 돌아 오르는 길이 만만찮다.

등잔봉에 서니 괴산군내 논밭과 집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 옆으로 괴산호가 보이는데, 구름에 잠겨 부옇다.

잠시 바라보다, 다시 1㎞가량 떨어진 천장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래 산책로엔 사람들이 꽤 있더니 이곳은 바람소리뿐 적막강산이다.

길은 험한 편이지만 눈은 줄곧 즐겁다. 호수를 따라 둘러 흐르는 군자산 줄기와 호수가 쉬지 않고 내려다보인다.

깊은 산속이기보다 ‘산길’의 느낌이 짙다.

이곳 칠성면 사은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유배지였던, 물에 막히기 전부터 애초에 오지였던 곳이다.

조선 후기 노성도라는 선비가 과거 연하동이라 불리던 이곳에 구곡을 만들고 연하구곡가(煙霞九曲歌)를 지을 만큼 경관이 빼어났다.

연하구곡은 지금, 전설이 되어 괴산호 물 밑에 잠겨있다.

안 잠기고 용케 살아 남은 주변 경관 역시 전설을 거스르지 않는다.

얼어붙은 눈 사이로 바위며 나무 둥치에 푸른 이끼가 성성했다.

여름이면 이곳이 얼마나 푸를지 상상케 한다.

다시 30분을 더 걸어 한반도 전망대와 천장봉에 올랐다. 눈발이 잦아들었다.

한반도 전망대는 괴산호 사이 땅이 한반도 모양으로 생겨 붙여진 이름인데, 전망은 등잔봉이 훨씬 좋다.

등잔봉에서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릴 걸, 잠시 후회한다. 대신 여기선 광막한 흰 호수 위로 까만 점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만 보니 그게 사람들이다. 어서 내려가 세밀화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산막이 마을까지 2.1㎞ 표지판이 보였다. 보폭이 좁아지고 보속은 빨라진다. 마음은 조급한데, 내리막길이 끝이 없다.

가끔 평지도 있을 법한데 줄기차게 내리막이다. 중간중간 로프가 매어진 험한 길과 얼어붙어 미끈한 길이 반복됐다.

몇번을 미끄러졌을까,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이다. 천장봉을 떠난 지 1시간 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거기 세 가구, 다섯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산막이 마을이 소리도 없이 앉아 있다.

뒤돌아 군자산을 바라보니 휘돌아가는 호수 곁 산허리에 50년 전 벼랑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저 험하기 짝이없던 길이 저렇게 변해 사람들이 이렇게나 몰려오니 세월이 세월이여.” 한 주민이 말한다.

돌아가는 길은 보통 선착장에서 5000원짜리 배를 탄다. 선착장에는 언 물에 갇힌 배 대신 사람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길잡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괴산·연풍 IC로 진행한다.

여기서 괴산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타고 가다, 괴강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4번 국도로 갈아탄다.

여기부턴 산막이 옛길 이정표가 있다. 주소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546-1(주차장).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043)830-3223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동서울터미널에서 괴산행 버스를 타고 괴산버스터미널에 내린다.

괴산 시내버스터미널에서 괴산댐수력발전소로 가는 외사동행 버스가 있다.

시간은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있으니 시간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수력발전소에서 내려 15분쯤 걸으면 산막이길 주차장이 나온다. 계속 길따라 걸어가면 된다.

서울 가는 마지막 버스는 오후 7시55분. 택시를 이용하면 1만원 정도다.

나올 때는 콜택시를 불러야 하니 대비해 택시기사의 명함을 받아두자.

*괴산호를 오가는 배는 동절기(11~2월)에는 운항하지 않는다. 호수가 얼기 때문. 대인 5000원, 소인 3000원.

괴산군에선 ‘위험 출입금지 호수로 절대 건너지 마세요’란 현수막을 선착장마다 붙여놨다.

많은 이들이 호수 위로 걸어다니는 탓이다.

호수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릴 적 겨울철 언 호수 위를 걸어다니던, 경험칙을 믿는 중년층이 대부분이었는데, 위험하니 권하진 않는다. 직접 걷지 않아도, 길 위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괴산엔 먹을 만한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나마 유명한 게 올갱이국이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올갱이 해장국집들이 많이 있다. 특이한 것은 올갱이가 계란에 싸여 있다는 점.

괴산에선 대부분 올갱이국에 계란을 넣는다. 터미널 바로 옆에 괴산 주차장 식당(043-832-2673) 등.

*쌍곡구곡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펜션들이 있다. 송화펜션(043-832-5595), 떡바위산장(043-832-9984)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