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13.01.24 04:00
치유하는 마을, 화천 비수구미
- 사위(四圍)가 침묵에 빠져든 깊은 밤, 별들은 하늘길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흘렀다.
- 파로호수와 산은 침묵했다. 손님들은 그 침묵 속에서 안식을 찾았다. / 박종인 기자
나이 열일곱에 시집가서 각지를 떠돌다 십년 만에 돌아온 곳이 비수구미였다.
스물일곱에 남편, 아이들과 함께 들어왔으니, 올해로 46년이다.
김영순(63)이 말했다.
"너무 갇혀 살았어. 이제는 떠나고 싶어, 정말."
그녀가 사는 강원도 화천 파로호변 마을 이름은 비수구미다. 어원은 모른다.
'~구미'는 산등성이가 휘어 도는 물가나 들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김영순은 이 물가 마을에 50년을 넘게 살았다.
오지 체험이 유행하던 1990년대 중반, 비수구미는 오지 탐험꾼들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세 가구, 지금은 네 가구가 사는 마을. 여름에는 호수에, 겨울에는 눈과 얼음에 갇힌다.
비수구미는 도시 사람들에게 피난처였다.
두 가지 이유다. 그녀가 말했다.
"내 살아온 역사가 너무 힘들었는데, 남에게는 재밌나 보다."
- 손자·손녀들과 계곡을 걷는 장윤일(오른쪽 끝), 김영순(흰색모자) 부부.
여자는 시집살이 3년 했다. 남편 제대 한 달 남기고 맏아들 복동이 태어났다.
닥치는 대로 일하다 돌아온 곳이 비수구미였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고? 젊을 때 고생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고생이다." 깔깔대는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 있다.
낚시꾼들 수발들며 돈을 벌었다. 남편은 나물 뜯으러 가고 아내는 밥을 했다.
조각배 저어가며 골속골속 숨어 있는 낚시꾼들 심부름을 했다.
비가 오면 물을 퍼내며 노를 저었다.
감자 야식 돌리고 나면 해가 뜨고 있었다.
가을 아침, 살림집은 손님 재우고 부부가 비닐하우스에서 눈을 뜨면 밤새 내뿜은 숨결이 이불이며 옷가지를 적셔 놓았다.
부부는 장작불에 옷가지를 말리며 밥을 짓고 조각배로, 산으로 달려갔다.
"살아온 생각 하면 혼자 자면서도 웃는다. 내가 맹추라, 그게 사는 건 줄 알고 살았다."
좋은 추억, 많았다.
호수가 얼면 한 시간씩 호수 건너로 걸어가 온 마을 사람들이 화투 치며 놀던 추억,
월드컵 축구 할 때면 산에서 1개 소대가 내려와 문밖에서 TV 중계 보고 가던 추억,
보름밤이면 쌀이랑 된장 들고 계곡에 올라가 메기 잡던 기억….
소문이 나면서 지도에도 없던 마을에 여름 한 철은 하루 300명 넘는 '인파'가 몰려왔다. 김영순이 말했다.
"반찬 줄이라고 타박하면서 어리석게 장사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멀리서 오는 사람, 산중에 사는 나한테 찾아오는 게 고맙지 않은가."
2009년 김영순의 환갑잔치 때 시동생 장윤옥(65)이 감사패를 읽었다.
"…아궁이 앞에서 뜬눈으로 밤새우기 일쑤였던 나날들…긴 세월 모진 세월 뒤로 하고…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친지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크게 울었다.
뜨끔했던 남편도 따라 울었다.
이 가족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가 비수구미의 첫 번째 치유력이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한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들을 만나러 갈 일이다.
그리고 자연이 있다. 지우개로 문지르면 지워질 것 같은 작은 마을 위로 거대한 천체가 운항한다.
호수가 숨을 멈추고 산들도 숨을 멈추는 시각, 텅 빈 하늘에 별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맏아들 장복동(45)이 말했다. "오늘은 별이 별로 없네."
도회지 사람에게는 미치광이처럼 번뜩이는 광채들을 그는 별로, 라고 했다.
눈을 사방으로 돌리면 산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별들은 억겁 세월 반복한 하늘길을 침묵 속에 운항한다.
골짜기에는 새하얀 공간이 펼쳐져 있다.
화천군이 선로(仙路)라 이름한 길이다.
왕복 세 시간 걸리는 이 길도 고요로 충만하다.
길은 호숫가까지 나무 데크로 연결돼 있다.
상처받은 영혼들에는 명상에 가까운 치유의 공간이다.
별과 호수와 계곡이 비수구미가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치유력이니,
사람들은 험한 길 굳이 넘어와 비수구미에서 위안을 얻고 돌아간다.
그런데 부부는 비수구미를 떠날 준비를 한다.
여자가 말했다.
"시내 나가 보면 내 나이에 계도 하고 모여서 논다.
죄지은 거 없는데 왜 갇혀 살아. 쉬고 싶어." 웨딩드레스 못 입어봤고, 결혼식 사진도 한 장 없다.
그래서 김영순은 한동안 남 결혼식 가지 않았다. 그 한(恨)만큼은 꼭 풀고 싶다.
하늘에는 뭇별이 반짝이고 계곡에는 오래도록 청정수가 흐를 터이다.
그런데 평생을 이 계곡에 살아온 부부가 떠날 채비를 하니, 이 차가운 겨울날 비수구미를 찾으려는 이방인들은 조금은 서두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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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첩
(서울 기준) 중앙고속도로 춘천IC에서 나와 46번 국도 인제·양구 방면→배후령터널 지나
간척사거리에서 화전 방면 461번 지방도 좌회전→화전/평화의 댐 이정표 따라 460번 지방도→화천 시내 직전에
화천/평화의 댐 이정표 보고 구만교 다리 건너 우회전→'해산가든' 간판 바로 뒤편에 있는 '비수구미/평화의 댐' 이정표 우회전,
구절양장→해산터널 지나자마자 오른편 트레킹 코스 입구→평화의 댐 방면으로 계속 가면 또 오른편에 '비수구미' 이정표.
사륜구동 혹은 스노체인 없는 승용차라면 주차해놓고 도보 한 시간 혹은 평화의 댐 못 미처 선착장에 주차한 후 비수구미로 전화.
썰매가 선착장까지 마중. 6인승 한 차당 2만원.
차량 통행 및 오토바이 예약 여부는 장윤일씨 집에 문의. (033)442-0145
비수구미 마을 네 집 모두 민박을 한다.
방 1개당 1박 3만원. 명심할 것, 모든 것이 불편하다.
화장실·샤워실도 공동이다.
장윤일씨네에 연락하면 마을 전체에 숙박을 연결해준다.
산채 정식 강력 추천. 1인분 1만원. 산에서 뜯은 나물 15찬. 나물과 청국장 등도 판매.
①눈길 트레킹: 해산터널에서 비수구미 마을까지 6km 구간.
대개 마을에서 시작해 중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일행이 있다면 한 사람이 희생해 터널에서 출발한 뒤 당번이 선착장이나 마을까지 차를 끌고 내려오면 된다.
②빙어잡이 체험: 파로호를 깨고 투명한 물고기를 잡는다.
③호수 썰매: 파로호 얼음 위를 질주하는 프로그램. 6인승 한 차당 2만원.
④장윤일씨네 인생 이야기: 까무러칠 정도로 고단하고 때로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⑤평화의 댐: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거대한 댐 구경.
기타 화천 관광 안내:화천군청 관광사이트 tour.ih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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