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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특집1 3둔4가리의 심산유곡 | 방태산 연가리골~ 아침가리골 ] 심산유곡에서 신선으로 다시 태어나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5. 8. 6.
[3둔4가리의 심산유곡|방태산 연가리골~아침가리골]심산유곡에서 신선으로 다시 태어나다
 
 
 
연가리골~아침가리골 26km 계곡 잇기 산행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연가리골은 순하고 고운 골짜기였다. 골 중간까지 물줄기 옆에 널찍한 밭이 펼쳐지고, 간간이 민가도 들어앉았다. 막판까지 단 한 번 올려침 없이 유순했다. 쉽게 백두대간 능선마루로 올라서려니 했다. 하지만 뒤늦게 애를 먹였다. 느닷없이 길이 희미해지더니 멧돼지 놀이터 같은 곳이 나타나고, 산짐승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울창하고 음습해졌다. 섬뜩했다.

대간에 올라서자 마음이 놓였다. 멀리 응복산이 웅자를 드러내자 힘이 났다. 그렇게 대간 따라 갈전곡봉 쪽으로 걷다가 왕승골 안부에 다시 새 골짜기로 들어섰다. 가르미골. 능선에서 내려서자 곧 길이 끊기고 가시덩굴이 팔과 다리를 붙잡고 아름드리 통나무가 가로누워 장애물로 등장했다.

골을 빠져나가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널찍한 임도, 뽀얀 자작나무숲, 아담한 민가도 나타났다. 물, 불, 바람으로 인한 해가 없다는 곳, 아침나절 밭을 갈면 더 농사지을 땅이 없다는 곳, 아침가리, 조경동(朝耕洞)이었다.


▲ 그림인들 이보다 아름다운 수 있을까. 바닥이 환히 드러날 만큼 맑은 계류 속으로 숲이, 하늘이,그리고 우리가 뛰어들었다.
아침가리골 상류

 ‘현대판 심마니들’ 찾아드는 심산유곡

“연가리골은 막판에 길이 희미해진다고 하던데…, 잘 찾을 수 있어요? 길 잃으면 오늘 집에 못 간단 말이에요.”

연가리골~백두대간~아침가리 산행은 3둔4가리 중 2가리를 잇는 오지 속 명 계곡 코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 연가리골 상단부와 가르미골 상단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 놓은 글은 거의 없다. 해서 분명 길이 희미하고 헤맬 가능성이 높은 골짜기일 거란 예상을 하고 나섰다. 그 내용도 모른 채 오늘 아침가리에서 임도로 진동약수터를 거쳐 서울까지 돌아갈 계획으로 취재팀을 따라 나선  김수영씨는 골 입구를 보는 순간 불안해한다.

그런데도 연가리골 들머리 밤바위마을 주민의 “요즘 산에 드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길이 잘 나 있을 것”이란 말에 안심하고 심산유곡의 풍광을 자아내는 진동계곡을 가로질러 연가리골로 들어섰다.

“와~, 산딸기다. 벌써 빨갛게 익었네.”

골 밖에서 실계곡처럼 느껴지던 연가리골은 뜻밖에 골이 널찍하고 분위기가 편안했다. 임도가 잘 닦인 데다 간간이 널찍널찍한 밭이 나타나고 길가 덩굴 속에 산딸기가 빨간 열매를 매단 채 길손을 반겨 주었다. 민가도 간혹 보인다. 곰취나 버섯을 재배하며 사는 주민들인가 싶다. 입구에 TV 휴먼다큐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붙여놓은 집도 있다.



	연가리골 중상류
▲ 울창한 숲과 때묻지 않은 골이 어우러져 더욱 심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가리골 중상류
“수영아, 이제라도 농사지어라. 프로그래머 같은 일은 골치 아프잖아. 앞으로 20년 안에 사라지는 직업이 50% 가까이 된대. 농사는 사라지지 않을 대표 직업으로 꼽혔고. 연가리골은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이라 하니 다른 데 생각할 필요 있니? 여긴데.”

“그렇게 좋으면 선배들이나 사세요. 멀쩡한 사람을 산골짜기에 붙잡아두려 하지 말고.”

연가리골은 조선시대 비결서(秘訣書) <정감록(鄭鑑錄)>에 나와 있는 3둔4가리 중 한 곳이다.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즉 물, 불,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연가리골인 것이다. 협곡처럼 느껴졌는데 골 안으로 들어설수록 널찍한 농지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과연 숨어살기 적당한 곳이다 싶었다.

한동안 편안하게 이어지던 임도는 노부부가 한창 농사일하는 고추밭을 지나자 좁고 깊은 골짜기로 변신한다. 숲이 울창하다 보니 하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쟤가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네. ‘연순이’라고 부를까, 연가리골에서 인연 맺은 암캐니까.”

가슴이 딱 벌어지고 사지가 단단하게 생긴 암캐 연순이와의 동행은 연가리골 로 들어선 이후 백두대간을 거쳐 가르미골을 타고 아침가리로 내려설 때까지 이어졌다.

연가리골은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은밀함이 매혹적이다. 골짜기는 점점 좁아지고 가늘어지지만 청량함은 조금도 잃지 않는다. 숲은 울창하고, 바윗골 따라 흐르는 계류는 야트막한 소에서는 잔잔한 옥빛으로 빛나고 바위 턱을 내려설 때엔 포말을 이루며 힘이 넘쳤다. 그러다가 완만해지면 침묵 속 정물화 풍경화로 변신한다. 단지 움직이는 것은 숲을 파고든 햇살이요, 그 햇살을 즐기는 것들은 물속 물고기와 올챙이였다. 우리는 그 골 깊이 파고들며 사색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무명폭포
▲ 억겁세월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가히 조물주의 작품이라 치켜세워도 될 만큼 아름다운 폭포와 소로 이어지는 바위골을 빚어놓았다. 아침가리골을 대표하는 무명폭포.
그 고요함은 김수영씨의 엉뚱한 질문에 깨지고 말았다.

“이 물 마셔도 돼요?”

“아니, 이 물을 못 마시면 어떤 물을 마신단 말이야!”

지형도 상 골짜기의 3분의 2쯤 지나자 산길은 희미해지고 단풍나무와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며 호젓한 숲을 이루고 있다. 막 녹음에 접어든 숲은 힘이 넘친다. 그 숲에서 턱을 넘어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햇살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그 활기차고 청랑한 분위기에 몸이 달았는지 산새들은 흥겹게 지저귄다.

숲은 소리로 변화를 준다. 숲의 적요함이란 이런 곳, 이런 분위기를 두고 일컫는 표현일 게다. 온 세상이 침묵이다. 간간이 새소리, 벌레소리 그리고 물소리 바람소리만 움직일 뿐이다.

“여기서 사람이 살았나 보죠?”

연가리골로 들어선 지 3시간 반쯤 지난 오전 11시 45분경, 골짜기가 끝나간다 싶을 즈음 널찍한 터가 나온다. 약초꾼들의 쉘터(shelter)인 모듬이다. 그 옆에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모듬은 허물어진 모습으로 보아 꽤 여러 해 동안 사람이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심봤다!”

모듬에서 쉬는 사이 “심봤다”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골짜기를 한창 올라설 즈음 일행을 추월한 등산객들의 목소리다 싶었다. 오늘 새벽 서울서 출발했다는 그들은 연가리골을 타고 대간에 올라 조침령까지 간다고 했는데 실상 목적은 등산이 아니라 약초였던 것. 현대판, 도시형 심마니들이었다.

“진짜 길 맞는 거야! 모듬으로 내려가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하는 거 아냐?”

모듬 터까지 잘 나 있던 산길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원시림 같은 숲속으로 들어선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쓰러진 나무 등걸을 넘느라 애를 먹곤 한다. 게다가 멧돼지 놀이터가 간간이 나타나 긴장케 하자 모두 길이 맞느냐 아우성이다.

“어? 연순이가 또 나타났네. 멧돼지가 무섭지도 않나? 아무래도 쟤만 좇아가면 될 것 같은데요.”


	자작나무 숲.
▲ 아침가리골은 골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뽀얀 빛깔의 나무숲은 동화속 요정의 거처처럼 신비감을 자아낸다.조경분교 위쪽 임도 변의 자작나무 숲.
골 중단부에서 우리를 추월하는 등산인들을 좇아갔던 연순이가 숲속에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꼬리를 흔들며 일행을 반긴다. 그리곤 마치 우리를 안내하기라도 하려는 듯 가파른 사면을 앞장서 헤치고 오른다. 골짜기는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점점 옆으로 휘어지자 적당한 지점에서 사면을 거슬러 등날로 올려친다.

어렵사리 올라선 백두대간은 신작로, 탄탄대로다. 그래도 강원도에서도 최고 오지답게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지장가리는 한 달 전과 소백산에서 봤던 것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자라 있고, 참나물과 참취, 곰취는 아직도 적당한 크기로 유혹한다. 하지만 연가리골에서 만났던 ‘현대판 심마니’가 될 수야 있냐는 마음에 눈요기로 만족하고 지나친다.

대간을 따르는 사이 나뭇가지 사이로 응복산(鷹伏山·1,360m)이 웅자를 드러낸다. 응복산은 대간에서 터닝포인트 같은 위치에 있는 고봉이다. 설악산 이후 내륙으로 가로지를 듯하던 백대두간이 방향을 급격히 틀어 동해로 향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바꾸는 지점에 있다. 한반도 척추의 방향을 틀 정도로 당당하게 솟아오른 산이 응복산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응복산은 잠시 나뭇가지 사이로 슬쩍 모습을 드러내더니 다시 나무 뒤로 모습을 감춘다.

태곳적 원시적 분위기 간직한 가르미골

“이 안부에 텐트를 쳐놓고 있는데 고참들이 왕승골 아래 갈천약수 부근 식당에서 닭백숙 사가지고 올라왔어. 후배들 먹여 살리겠다고 말야.” 

10여 년 전, 구룡령을 출발해 갈전곡봉을 거쳐 단목령까지 대간 종주 산행할 당시 첫날 숙박지가 바로 왕승골 안부였다. 안부의 나무에는 갈천약수터 부근 식당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그것을 목격한 선배 두 명이 왕복 2시간 거리인 식당까지 내려가 백숙을 사가지고 올라왔던 것이다.

“오늘은 두 분이 사가지고 올라오면 되겠네요. 보은을 꼭 당사자한테 할 필요 있나요? 내리사랑이라는데.”

유창우 기자는 백숙 사러 2시간 거리를 다녀왔다는 ‘전설’ 같은 얘기에 선배인 기자와 양효용씨를 힐끗 쳐다보며 웃는다. 왕승골 안부에서 옛 얘기를 나누는 사이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어대고 구름도 두터이 끼면서 기온이 슬며시 떨어진다. 아침가리로 내려서란 하늘의 뜻이다.


	연가리골
▲ 1 연가리골 물줄기가 스며드는 방태천. 진동계곡이라고도 불린다. 2 태곳적 분위기의 연가리골 중류. 3 위장에 좋다는 방동약수. 4 방태천을 가로질러 연가리골로 들어서고 있다.
아침가리로 이어지는 가르미골은 예상대로 산길이 희미하다. 등날을 내려선지 얼마 되지 않아 산길이 사라지고 잡목 우거진 숲길이 나타나거나 아름드리나무가 드러누워 유격 코스를 연상케 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앞뒤에서 투덜투덜, 아이쿠 아이쿠 소리도 터져 나온다. 그래도 오지의 깊은 골짝은 산객들 몸과 마음에 맑은 정기를 불어넣어 주며 힐링시켜  준다. 게다가 골짜기를 파고든 오후 햇살은 숲과 옥빛 계류를 통과하며 빛의 미학의 극치를 보여 준다. 풀잎, 나뭇잎, 물빛, 우리 몸과 마음 모두 빛의 조화에 빠져들어 춤추고 만다.

골을 내려선 지 한 시간쯤 지나자 긴 가뭄에도 제법 물이 많이 흐르는 골짜기가 나타나고, 미끄러운 바윗길을 내려서는 사이 김수영씨는 “무섭다!” 소리 지른다. 하지만 연순이는 의기양양, 너무도 자연스럽다. 물줄기가 나타나면 텀벙 뛰어들어 가로지르고 어떤 때는 헤엄까지 친다. 그러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댄다. ‘왜 같이 안 노느냐’는 표정이다.

미끄러운 바윗덩이를 넘고 넘어, 가시나무 덩굴을 헤치고 또 헤치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하루살이를 휘저어대며 가르미골을 내려선 지 2시간쯤 지나 마침내 아침가리골 임도로 내려선다. 널찍하고, 하늘이 뻥 뚫린 쾌적한 임도가 펼쳐지자 얼굴이 환해진다. 뽀얀 빛깔 자작나무숲을 거쳐 옥빛 물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 올라서자 벌러덩 드러누워 버린다. 아침가리의 여유로움이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로 산중 부락이 소거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70여 가구가 살았다는 아침가리골 한가운데 자리한 방동초교 조경분교는 이제 무너지기 직전. 학교다운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다. 분교 아래쪽에서 살고 있는 세 가구만이 아침가리의 전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연순아! 아주머니, 아는 개예요?”


	연가리골
▲ 5 연가리골 산행을 끝내고 대간에 올라서다 만난 거목. 6 왕승골 안부. 김수영씨가 연순이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7 왕승골 안부 직전 묘. 갈전곡봉 일원이 바라보인다. 8 연가리골 상단부의 모듬에서 지형도를 살피고 있다.
아침가리 임도로 내려서자마자 모습을 감추었던 연순이가 분교 아래 첫 번째 민가 주인아주머니 품에 안겨 재롱을 떨고 있다. 연순이는 이 민가의 개였다. 

“세 살이에요. 툭하면 집 나가요. 지난해 가을 집을 나가 새끼 낳고 돌아오더니 지난 2월 또 집 나갔어요. 멧돼지에 받혀 죽었으려니 했어요. 예전에도 돼지한테 받혀 가축병원에서 꿰맨 적이 있거든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연순이의 본명은 수. 물을 하도 좋아해서 물 수(水) 자로 이름지어 주었다 했다. 연순이는 새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침에 비해 젖이 많이 불어 있었다.

“아이고, 이놈아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새끼는 어쩌라고 이렇게 집으로 돌아왔냐, 끌 끌 끌….” (이튿날 아침 연가리골 입구에 세워놓은 승용차를 가지러 갔을 때 연순이를 키우던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는 ‘개 한 마리 못 봤냐?’ 물은 뒤 자초지종을 듣고 며칠 전 태어난 새끼들 먹이려고 15km쯤 떨어진 기린면소재지까지 가서 전지분유를 사왔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예정대로 김수영씨는 아침가리다리 옆에서 장사하는 약초상회 주인의 도움으로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기린면소재지로 나가고, 나머지 일행은 가겟집에 앉아 바람소리 물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모처럼 누리는 망중한, 여유다. 그것도 강원도 최고 오지 아침가리에서 누리는 여유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해가 뉘엿거릴 즈음 동네 주민의 양해를 구한 다음 다리 부근 개울가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 치는 사이 해는 골을 빠져나간다. ‘아침에 밭을 갈고 나면 더 이상 경작할 밭이 없을 정도로 좁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하늘을 다 덮을 만큼 작은 마을’이라더니 아침가리의 하늘은 해도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대신 밤하늘은 어린 아이 눈동자처럼 맑고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찼다. 우리의 그림 같은 밤은 도란거리는 소리와 함께 깊어갔다.

“골 밖에서도 신선처럼 사셔야 해요”

깜빡 잠이 든 것 같은데 수만 가지 꿈을 꾸다가 절벽에서 하강 도중 로프 매듭이 풀리면서 추락하는 끔찍한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도 뒤숭숭하지 않고 머리가 맑다. 아침가리는 삼재불입지처라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 힐링의 장소이기도 했다.


	아침가리골
▲ 1 다섯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와 주인 곁에 앉은 연순이. 2 캠퍼들의 아침가리골 캠핑.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다. 3 아침가리골 중류.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물에 빠지며 산행해야 한다. 4 자갈을 쌓아 만든 길 표시. 아침가리골. 5 방동초교 조경분교. 오래전 폐교됐다. 6 가르미골을 밝혀 주고 있는 금낭화.
임도를 벗어난 아침가리골은 아직 늦은 봄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느 산 같으면 흔적도 없을 산목련이 새하얀 꽃을 활짝 피운 채 있고, 숲속에는 온갖 산새들은 흥겹게 지저귀었다. 너럭바위는 억겁세월 계류에 깎여 조물주의 작품처럼 절묘한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옆에 쓰러진 거목은 두터운 이끼 옷 입은 채 태곳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와~, 저 물고기 좀 봐, 열목어 같은데.”

아침가리다리 부근의 소에서는 올챙이와 송사리만 한 물고기만 보이더니 아래쪽 깊고 큰 소에서는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가 유영을 즐기고 있다. 아침가리골은 어제 오른 연가리골에 비해 널찍하고 규모가 큰 풍광을 보인다. 게다가 잠시도 같은 풍광에 머물지 않는다. 화려한 미로 현혹하다가 모든 세상을 잠재울 듯한 잔잔한 풍광으로 산객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갑자기 우렁찬 물소리가 골을 울린다. 골 중간쯤에 자리한 아침가리골에서 규모가 가장 큰 무명폭이다. 크지는 않지만 바위골을 타고 떨어진 낙수는 짙푸른 소로 스며드는 과정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싶다.

무명폭을 내려서자 캠퍼들이 한 팀 한 팀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가리골의 풍광을 누리기 위해 ‘불법’을 감수하고 엊저녁 골 안에 들어선 캠퍼들이었다. 우리가 다가가는데도 그들은 불안한 기색 전혀 없이 풍류를 즐겼다.

빙긋 웃었다.

“신선 되신 것 같네요.”

“세 분 길손들도 똑같아요. 골 밖에서도 신선처럼 사셔야 해요, 하하.”


	연가리골·아침가리

연가리골·아침가리골 약 1,052m(백두대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산행 거리  약 26km
산행 시간  약 10시간(평균 속도 2.6km/h)

산행길잡이

당일 산행으론 빠듯… 아침 일찍 출발해야

연가리골과 아침가리골을 잇는 산행은 약 26km 길이로 하루에는 빠듯한 길이다.

연가리골 입구(500m)에서 대간(1,053m)까지 거리는 7km가 넘지만 표고차가 550여 m에 불과해 생각보다 수월하게 산행할 수 있다. 가르미골의 경우 길이 희미하긴 해도 내리막이고(약 4km·1시간40분), 가르미골 입구에서 아침가리다리까지 약 4km 구간은 완경사 임도여서 역시 빨리 걸을 수 있다. 아침가리골은 약 7.4km 길이로 3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따라서 여름철에는 오전 7시 이전 산행에 나서면 하루에 해낼 수 있다. 아침가리다리에서 산행을 끝낼 경우 임도를 따라 고개 너머 방동리까지 가야 노선버스를 탈 수 있다(7km, 약 1시간 30분). 아침가리 일원은 전화불통지역이라 고개를 넘어서야 통화가 가능하다. 다리 옆 약초상회 주인에게 요청하면 유료로 지프차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현리택시 033-461-5497, 010-5379-5497.

아침가리골은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취사·야영이 금지돼 있다. 방동약수 위 안내센터~아침가리~명지거리 ~월둔교 위 감시초소 22km 구간은 백두대간트레일로 취사·야영은 물론, 자동차나 자전거 접근도 금지돼 있다. 또한 산림생태계 보전을 위해 정해진 인원(1일 100명)에 한해 사전예약 탐방제가 운영되고 있다. 방동약수 위 탐방안내센터에서 1일 1회 오전 9시 출발. 문의 033-461-4453,
www.baekdutrail.or.kr



	방동막국수
▲ 방동막국수
교통

■ 서울↔현리(인제군 기린면) 동서울터미널에서 08:15, 10:35, 13:20, 14:05, 17:36 출발. 2시간 10분, 1만5,000원. 문의 1688-5979.
www.ti21.co.kr

■ 현리→방동약수·아침가리·연가리 1일 7회(06:20, 09:30, 10:30, 12:40, 15:20, 17:20, 19:30) 운행. 요금 1,150원, 약 30분. 문의 현리 버스터미널  033-461-5364.

승용차 경우, 중부권은 홍천 44번국도~ 철정검문소~우회전 451번 지방도로~상남~ 현리를 경유해 접근하고, 동해안에서는 양양~ 44번국도 한계령 방향~상평삼거리~좌회전 56번국도~서림삼거리~우회전 418번 지방도로~조침령~진동삼거리 좌회전~ 연가리·아침가리 방향으로 접근한다.

숙박 지역번호 033

연가리골 들머리인 밤바위 일원에 민박집과 오토캠핑장이 있다. 연가리민박 (463-5731), 인제연가리오토캠핑장(010-3892-2325). 아침가리 입구 도로변에 숙박업소가 몇 곳 있다. 잣나무집정원(펜션 010-8767-9393, 033-462-1887).

아침가리 입구 진동계곡 식당·펜션(463-9383, 010-4011-9383)에서는 산채비빔밥과 곤드레밥 등을 주메뉴로 내놓는다.  진동산채식당은 산채비빔밥(8,000원)과 산채정식(1만5,000원)이 인기 메뉴다. 방동막국수(461-0419, 010-9466-4610)는 진동리 일원을 대표하는 막국수집이다. 막국수 6,000원, 감자전 3,000원, 돼지고기수육 1만5,000원, 닭백숙 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