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이단아였다.
귀족 출신의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자수성가했다.
워싱턴 DC의 주류 인사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1829년 취임한 그는 첫 내각을 신뢰하지 않았다.
관직을 갖고 있지 않은 지인(知人)들의 비공식 조언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잭슨의 반대파들이 그를 비판했다.
그가 부엌을 함께 드나들 정도로 허물없는 친구들만 의지한다는 의미에서
'키친 캐비닛(부엌 내각)'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 후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 그룹'을 일컫는 말이 됐다.
조지아주 출신의 지미 카터 대통령 때는 '조지아 마피아'가,
아버지·아들 부시 대통령 때는 '텍사스 서클'이 주로 키친 캐비닛 멤버가 됐다.
이 용어는 대서양을 건너가 영국에서도 자주 쓰이고 있다.
2003년 클레어 쇼트 영국 국제개발장관이 블레어 총리를 비판하며 사임했다.
중요한 정책이 '선출되지 않은 다우닝가의 조언 그룹'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 신문 가디언은
"누가 (블레어 총리의) '키친 내각'에 해당하는지 파악해 보겠다"며 기획 기사를 실었다.
2009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의 옛 애인 라파엘 엔토벤이 엘리제궁에 자주 드나드는 것이 알려졌다.
선데이타임스는 '브루니의 옛 애인이 사르코지의 키친 캐비닛에 합류했다'고 제목을 뽑았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8년 당선될 때 이 말을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후원금을 어느 정도 낸 이들에게는 '오바마 대통령의 명예 키친 캐비닛 멤버' 증명서를 발급해줬다.
미국 민주당은 2009년엔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기념품을
'오바마의 명예 키친 캐비닛'이라고 이름 붙여 팔기도 했다.
▶키친 캐비닛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식 라인에서 할 수 없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2014년 '오바마 대통령에겐 키친 캐비닛이 필요하다'는 글을 실었다.
FP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같은 이를 활용하면
외교·안보에서의 혼란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사들이 탄핵 관련 답변서에서 최순실씨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했다.
키친 캐비닛에도 자격이 있다.
재벌들로부터 돈 뜯어낼 궁리만 하고, 딸을 부정 입학시키고,
온갖 갑질을 한 최씨가 키친 캐비닛이라면 200년 전 미국의 잭슨이 화낼 것 같다.
당장 인터넷에선 최씨를 닭에 비유해 '키친' 아닌 '치킨'(닭) 캐비닛이라는 조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