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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기차 여행] 철마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by 맥가이버 Macgyver 2017. 2. 16.

[경원선 기차 여행] 철마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슬레이트 지붕인 낮은 집들이 느리게 지나간다.

동두천역에서 출발한 세 량(輛)짜리 기차는 여덟 개 역을 지나 철원 백마고지역에서 멈춘다. 경원선(京元線)이다.
통일을 고대하는 고대산이련가”란 대목이 보인다. 끊어진 철도는 약 30㎞ 구간.

통일이 이뤄지면 경원선은 시베리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된다.



경원선 기차 여행


열차는 빈 들에 놓인 단선(單線) 철로 위를 천천히 달렸다.

슬레이트 지붕인 낮은 집들이 느리게 지나간다.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와 앞뒤를 다투더니 장갑차가 서 있는 군부대 옆을 지났다.

동두천역에서 출발한 세 량(輛)짜리 기차는 여덟 개 역을 지나 철원 백마고지역에서 멈춘다.

경원선(京元線)이다. 바깥 기온은 영하인데 열차 안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동두천역~백마고지역을 운행하는 경원선 열차./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일 11시 30분 동두천역에서 열차를 탔다.

가운데 칸 승객 수는 열두 명. 모두 일흔 넘은 어르신들이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평역에서’)는 시(詩) 속 풍경 그대로다.

초성리역에서 내리거나 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탄강역은 역사(驛舍)조차 없다.

마른 나뭇가지만 흔들렸다.

그래도 저 나목(裸木)은 잎 틔울 준비에 한창일 것이다.

전곡역에서 한 사람 내리고 한 사람 탔다.

연천역에선 세 사람 내리고 두 사람 탔다.


신탄리역 ‘벽화 마을’의 시와 그림./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신탄리역에서 내리기로 한다.

백마고지역으로 한 역 더 연장하기 전인 2012년까지 경원선 마지막 역이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쓴 철도 중단점 표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매일(화요일 운휴) 12시 30분 ‘연천 시티투어 버스’가 역 앞에서 출발한다.

재인폭포, 한탄강댐, 전곡선사박물관, 군남홍수조절지(댐), 태풍전망대를 거쳐 연천역에서 끝나는 4시간 코스.

각 장소에 내려 10~20분씩 구경한다.

문화관광 해설사가 함께 탄다. 이날 승객은 모두 6명뿐.

유정아(66) 해설사는 “승객이 단 한 명 있더라도 출발한다”고 했다.


재인폭포. 꽁꽁 얼어 빙벽을 이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재인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폭포가 떨어져 소(沼)에서 튄 물이 원뿔 모양 얼음 탑을 이뤘다.

푸른빛 띠는 얼음 기둥과 먼 옛날 용암이 흘러 만든 육각형 주상절리 암석이 기이한 풍광을 자아낸다.

인근 한탄강댐은 최근 완공했다.

댐으로 가는 길 새로 만든 다리 중간에 버스가 잠시 선다.

바닥에 투명 강화유리를 설치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아찔하다.

언 강 위로 사람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연천 북부는 민통선 지역.

태풍전망대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800m 떨어져 있다.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간다.

젊은 군인이 버스에 올라 탑승자 수를 센다.

헐벗은 북녘땅이 육안으로 보인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면 북한이 만든 임진강댐이 보인다.

군남홍수조절지는 북한의 무단 방류에 대비해 건설한 댐이다.

옆에 공원(두루미테마파크)을 조성했다.



경원선 연천역 급수탑. 일제강점기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 열차는 경원선 중간 지점이었던 연천역에서 물을 공급받고 다시 운행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경원선엔 우리 역사의 아픔이 이중으로 겹쳐 있다.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는 러·일전쟁 때 철도 부설권을 빼앗은 일제가 1914년 완공했다.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몸통이 잘려 끊어졌다.

동두천(소요산)역까지는 전철 1호선이 운행한다.

동두천~백마고지역 구간을 흔히 경원선으로 부른다.

연천역은 경원선의 중간 지점이었다.

물을 끓인 힘으로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연천역에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달려야 했다.

높이 23m 원통형 급수탑이 우뚝 서 있다.

거대한 아령을 땅에 박아 놓은 듯하다.

물 100t을 저장하고 역으로 들어오는 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다.

2003년 문화재로 지정됐다.

옆에는 사각형 건물 급수탑도 함께 있다.

외벽에는 6·25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신탄리역 마을에는 ‘통일을 고대하는 마을길’이란 표지가 있었다.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글귀를 적은 모빌을 달았다.

인근 고대산(832m) 가는 길목에 있는 ‘벽화마을’에는 그림과 함께 시가 적혀 있다.

“통일을 고대하는 고대산이련가”란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끊어진 철도는 약 30㎞ 구간이다.

고대하는 통일이 이뤄지면 경원선은 시베리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된다.


 

■ 경원선 열차는 동두천역에서 오전 5시 45분부터 오후 10시 15분까지 1~2시간 간격으로 11회 출발. 운임 1000원.

토·일은 첫차와 막차를 운행하지 않는다.

홈페이지(www.letskorail.com)에서 시간표 확인.



연천 시티투어 버스 예약은 DMZ관광(02-706-4851). 1만4000원.

좌석 여유가 있으면 신탄리역에서 바로 탈 수 있다.

요즘은 자리가 많이 남는다. 화요일은 쉰다. 12시 30분 1회 출발.

시티투어 버스를 타려면 동두천역에서 늦어도 11시 30분 열차를 타야 한다.



점심은 버스에 탄 해설사가 인근 편의점 도시락(4500원 이하)을 주문해 준다.

앞 열차인 9시 30분 열차를 타면 신탄리역 마을을 느긋하게 돌아보고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

막국수·청국장·부대찌개·손두부 같은 음식을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관광 열차 DMZ 트레인이 서울역~백마고지역 구간을 운행한다.

오전 9시 27분 서울역 출발. 백마고지역에서 철원 지역 관광을 연계한 상품도 있다.

주중 4만원(중식 포함).

코레일 홈페이지와 청량리역 여행센터 (02)913-1788)


역고드름.


역고드름  고대산 북쪽 자락에 있는 폐터널에서 고드름이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자란다.

일제 패망으로 공사가 중단된 터널이다.

6·25전쟁 때 북한 탄약 창고로 사용됐고 미군 폭격을 맞아 갈라진 틈에서 흘러내린 물이 기이한 현상을 만든다고 한다.

반원 모양 입구에는 얼어붙은 고드름이 악마의 이빨처럼 매달려 있다.

신탄리역에서 약 3.5㎞. 걸어서 가기는 조금 먼 거리다.

자동차로 간다면 신탄리역에서 철원 방향으로 가다가 ‘역고드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농로를 따라간다


연천=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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