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우리 땅 걷기] 동작충효길… 숲길 끝나자, 한강 노을이 마중 나왔다
선셋의 핫플레이스인. 노들섬을 찾은 시민들이 63빌딩 곁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감상하고 있다.
서울둘레길을 시작으로 서울에는 많은 걷기길이 있다. 동작충효길은 동작구에 있는 공원과 녹지, 한강을 축으로 생태자원과 국립현충원, 효사정, 사육신의 묘 등 충과 효를 연계한 걷기벨트이다. 서울 도심에 위치해 접근성도 뛰어나 지역주민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동작충효길은 전체 7개의 코스로 총 25km.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면 충분하지만 천천히 걷고 싶다면 2일 정도에 나누어서 걷기를 추천한다.
7개의 코스 중에서 ‘고구동산길’, ‘현충원길’, ‘한강나들길’은 잣나무, 벚나무 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생명의 향기가 살아 있는 흙길을 걷을 수 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길이다.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담은 위패를 모신 의절사. 매년 10월 9일에 추모제향을 올린다.
고구동산길:숲속에 작은 도서관
고구동산길은 지하철 9호선 노들역에서 출발해 고구동산, 서달산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며 잣나무, 벚나무 등 수목이 울창한 산책길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다. 서울시의 ‘봄에 걷기 좋은 서울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들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상도터널 우측이 동착충효길 1코스 시작지점이다.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서울이 더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서울 조망 보려고 멀리 힘들게 갈 필요가 없구나!
고구동산길의 하이라이트는 수천 그루 잣나무 숲길. 빽빽이 둘러싸인 나무들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그 빛 사이로 걸으니 미지의 마법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해리포터의 머글이 생각난다.
책을 읽고 있는 심훈 동상, 그 뒤로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중앙대학교 후문을 지나니 예쁘게 단풍이 들어 있다. 언덕을 내려와서 다시 서달산 방향으로 오른다.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인 서달산은 전후좌우 360도 막힘없이 펼쳐 있어서 명당으로 손꼽이는 지역이다. 잣나무 가득한 서달산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코로나 1단계이지만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이젠 마스크가 패션의 일부가 된 것이다.
충효를 모토로 한 길답게 산책길 곳곳에 동작구에서 태어난 분들을 설명하는 ‘구석구석 동작이야기’, ‘만화로 설명하는 옛이야기’도 재미있다. 걷는 길 틈틈이 글 읽느라 잠시 서서 쉬어간다.
숲속 작은 도서관. 항상 문이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불이 켜있고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내부 모습이 궁금해서 들어가니 오늘 행사준비 중이란다. 새 단장을 해서 11월에 정식 오프닝을 한다고 한다. 자그마하지만 편안하게 꾸며진 이곳에서 아이들은 책 읽으며 얼마나 행복할까? 집 옆에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숲이 있고,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있으니 이 동네 사는 아이들은 참 좋겠다.
‘서달산 자락길’이라고 쓴 큼지막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에 관계없이 걷기 편한 무장애 데크길이다. 잣나무가 무성한 길은 깊고 깊은 숲속을 걷는 것 같다. 짙은 숲 내음이 온 몸을 감싸준다. 모든 피로가 사라지고 가벼워진다.
노들섬의 노들스퀘어. 노들섬에는 노들스퀘어, 서가 뜰, 잔디마당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현충원길:부모님께 효도전화를
현충원 담장을 끼고 걷는 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천천히 쭈~욱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어느새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2코스의 마지막에 다다른다. 길은 모두 흙길에 숲길이어서 4계절 내내 언제라도 걷기 편하다. 밤에도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안전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현충원으로 들어서 순국선열들의 묘를 참배하고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현충원길의 또 다른 특징은 메모리얼 게이트.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메모리얼게이트에 꽂아놓을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진기한 모습이다. 아쉽게도 오래전에 설치해 놓은 것들이라 글의 내용은 전혀 읽지 못할 만큼 흐려 있다. 무엇이든 시작은 쉬워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전화 수화기 모양의 효도의자가 산책길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일명 효도전화의자. 의자에 앉는 순간 수화기 들어서 부모님과 통화하고 싶다. 걷는 분들보다 걷는 분들의 부모님이 더 좋아하실 길이다. 바쁜 일상에 안부전화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는 분들은 여기에서라도 부모님께 통화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피톤치드를 가득 뿜어내는 고구동산의 잣나무숲길.
한강나들길:심훈과 사육신
유유자적 한강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동작충효길 7개의 코스 중 가장 좋아하는 코스이다.
동작역을 빠져나와 당연한 듯 동작노을 카페로 들어섰다. 아직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샌드위치와 주스를 사서 테라스로 올라간다. 여의도 방향으로 펼쳐진 한강이 더욱 시원스럽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강하다. 유럽의 어느 선상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다.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즐긴다. 누군가는 겨우 편의점 샌드위치와 주스로 브런치라니?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브런치도 마치고 땀도 식고 슬슬 썰렁해지기 시작하니 이젠 걸어야 할 시간. 한강으로 나서니 강가에는 강태공들이 가득하다. 나날이 늘어나는 강태공 숫자. 여기서 잡은 고기는 다시 놓아주는지 집으로 가져가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기로 한다. 고기 입질을 기다리는 강태공들 모습도 저마다 제각각이다. 종일 앉아서 입질을 기다리며 어떤 상념에 빠질까?
흑석역을 지나 효사정. 한강변에 있는 정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우면산, 관악산, 안산, 북안산, 응봉산, 아차산, 검단산으로 둘러싸여 서울의 중심에 앉아 있어서 서울을 조망하는 정자 중에서는 으뜸이다. 3코스 끝나고 가고 싶은 노들섬도 보인다.
효사정은 조선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대감의 별서別墅에 지은 정자. 노한대감은 모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 했던 자리에 정자를 짓고 때때로 올라가 모친을 그리워하며, 북쪽을 바라보며 개성에 묘를 쓴 아버지를 추모했다고 한다. 블로그의 이웃 한 분은 효사정을 알고 나서 한강걷기가 즐거워졌다고 하신다.
효사정에서 내려오면 심훈 문학비와 동상이 있다. 심훈은 흑석동에서 출생한 문인이자 애국지사. 심훈 문학비에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한강변을 곁에 두고 길을 걷는다. 이곳은 노들나루. 조선시대에 한강 남북을 왕래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동작충효길이 다시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는 용양봉저정이 있다, 정조 때 지어진 행궁인데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으로 참배 가면서 잠시 휴식하던 장소이다. 임금이 머문 곳이라 용이 뛰놀고 봉황이 높이 난다는 뜻으로 붙어진 이름이다. 용봉정근린공원의 전망대에 들어서면 여의도가 한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있다. 한강변의 풍광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릴 때면 불꽃축제를 즐기러 오는 이들로 넘치는 곳이다.
사육신공원으로 들어선다. 두 명의 임금은 섬기지 않는다는 불이문을 지나면 사육신의 사당인 의절사가 있다. 이곳에 모셔진 위패가 7개, 안내판에도 7분이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 한 분은 김문기? 누구실까? 내가 배웠던 국사가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 사육신이 아니라 사칠신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조금 걸어오니 노량진역. 한강나들길의 종점이다. 동작충효길 4코스를 이어가도 좋겠지만 노들역으로 돌아가 노들섬에서 멋진 선셋을 바라보며 동작충효길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고구동산에 있는 동작충효길 숲속도서관.
노들섬:음악과 카페와 노을
노들섬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노량진을 연결하는 한강대교 밑에 있는 섬이다. 즉 한강대교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1917년 한강대교를 건설하면서 북단 쪽의 모래언덕에 흙을 보완해서 만들어진 타원형의 섬으로 한강대교의 중심을 잡아 준다.
노들섬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글이 더욱 인상적이다. ‘익숙하고도 낯선 도심 속 자연의 공간, 노들섬’ 노들섬의 옛이름은 중지도. 중지도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에 이 섬이 위치한 노량진의 옛이름인 노들나루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노들섬의 모습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예쁜 이름이다.
노한대감이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세운 효사정에 오르면 멋진 한강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복잡한 도시에서 자연, 음악, 책과 쉼을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힐링공간이며 일몰이 유명한 핫플레이스이다. 서점부터 라이브공연장, 작은 식물원, 식당, 카페와 편의점까지 있어서 꼭 먹거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가볍게 피크닉하기 좋은 곳이다. 잘 손질된 잔디밭에 앉아서 깊어가는 서울의 밤을 느끼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특히 노들서가에서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이 이어지고 전시되어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된다. 최근 신간 도서 중에서 한권을 골라서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는다. 눈이 부시도록 노들서가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마음까지 따스하게 덥혀 준다.
노들섬의 노들서가에서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전시되어 있는 책을 읽을 수는 공간도 있다.
여의도 방향으로 붉은 태양이 내려가고 있다. 이럴 때면 왜 이리 마음이 바빠지는지. 잔디광장을 지나 한강 산책로로 들어서니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모두 태양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시간. 매일 만나는 시간인데도 엄숙해진다. 붉은 태양이 63빌딩 곁으로 떨어지며 한강물에 반영까지 만들어 준다.
버드나무 사이로 비추인 반영이 너무 아름답다. 잔디밭에서 선셋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이 유럽의 어디쯤으로 착각하게 한다.
한강대교와 한강철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지막한 가로등에서 새어나오는 은은한 빛이 잔디광장을 비춘다. 미국의 도심 속 공원인 센트럴파크처럼 노들섬도 서울의 도심공원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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