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770km|부산구간 1~3코스]해파랑길이 길을 걷고 나면, 남은 728km도 마저 걷고 싶어진다
해파랑길
- 글·사진 윤문기 (사)한국의길과문화 사무처장, 발견이의 도보여행 운영자
- 해파랑길 대장정의 시작, 부산 구간 1~3코스 4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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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의 시작점인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의 새벽, 까만 밤을 밀어내고 해파랑길의 상징인 태양이 세상을 밝힐 준비를 마쳤다. 비로소 어둠 속에서 구분되지 않던 바다와 하늘이 어둠을 벗어내며 서로의 경계를 긋는다. 오륙도가 떠오르는 해의 붉은빛을 받아 수줍게 홍조를 띤다. 붉게 시작된 일출의 장관이 파란 하늘에 묻히는 시간 속에 수없이 많은 단계의 색들이 층을 이루며 오묘한 변화를 이뤄 낸다. 붉은빛과 대비되는 하늘은 신묘하기 그지없어서 자꾸자꾸 사람들을 동해 새벽바다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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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륙도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해파랑길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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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10시 50분, 서울역을 덜컹대며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에 의탁해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 닿은 시간이 새벽 4시 20분.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해파랑길 시작점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해 뜨는 시간과 딱 맞아떨어진다. 함께 길을 걷기로 한 일행들과 여유로운 일출의 장관을 즐기고 나서야 이틀로 짧게 예정된 해파랑길 걷기를 시작한다. 바다물결은 어느 때보다 잔잔하고, 파도에 실려 오는 바람은 초여름의 열기를 담아내며 뜨거운 하루를 예고한다.
일출과 함께 1코스의 첫걸음을 시작한다!
해파랑길 전체 770㎞ 중에서 제1선발인 부산은 의외성을 갖는 멋진 길의 변화가 걷는 이들을 시시때때로 감동시킨다. 시작점에 있는 해파랑길 종합안내소에서이어지는 ‘이기대길’ 구간부터 경탄과 감탄을 자아내는 해식절벽의 비경으로 아름답다. 이기대 해안의 절벽길은 기존 해안순찰로를 정비하여 위험한 곳은 나무데크와 울타리로 안전하게 바꾸어 산책로 수준으로 조성한 명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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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서울에서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가면 해파랑길의 출발지에서 일출을 보며 걷기를 시작할 수 있다. 2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 구조물이 있는 오륙도해맞이공원이 해파랑길의 출발점이다. 3 목책과 바닥다짐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이기대구간의 해안절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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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대길의 비경이 입소문을 타며 찾는 이들이 급격히 늘자 곳곳에 쉼터와 전망데크를 추가 설치해 지금은 노약자들도 많이 찾는 산책로가 됐다. 깎아지른 듯한 해식절벽의 허리를 둘러 가며 걷는 길은 무려 5㎞나 이어진다. 고소공포증이 있더라도 무섬증 없이 갈 수 있을 만큼 걷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잘 닦였다.
푸른 바다의 짠맛에 간이 잘 밴 바람이 온몸으로 몰려드는 이기대(二妓臺)길은 임진왜란 때 기생 두 명이 술에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벼랑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얻었단다. 만약 그랬다면 도저히 살아 돌아오기를 바랄 수 없을 만큼 절벽은 풍화와 침식의 시간 속에서 높고 날카롭게 솟았다.
높게 솟구친 수직의 해안절벽은 수평을 이룬 바다와 각을 세우며 자신의 영역을 수만 년간 굳게 지켰다. 수평과 수직의 대립각은 7㎞의 광안대교와 80층 초고층빌딩이 모인 마린시티의 마천루가 이기대길 후반부에 바통을 잇는다. 해안의 풍경을 일거에 바꾸어 버린 이 거대한 인공구조물들은 인위적인 것에 배타적인 이들마저 잠시 마음을 빼앗겨 버릴 정도로 조화로운 인공의 풍광을 그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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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 광안대교와 마린시티가 보이면 이기대길의 후반부에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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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위적인 구조물들의 대립각은 이기대길이 끝나고 수영요트경기장까지 이어지는 10㎞ 전 구간에서 각도를 달리하며 볼거리를 만든다. 특히 야간의 경관조명이 들어오면 더욱 멋진 밤풍경이 드러난다. 혹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다면 광안리 뒷산인 금련산 청소년수련원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이도저도 귀찮다면 광안대교 뒤로 뜬 달을 보며 해변에서 해찰하는 것도 경험자로서 추천한다.
광안리해변을 지나 마린시티를 빙 둘러 걸어가면 APEC 정상회담이 열린 곳으로 유명한 동백섬 둘레길이다.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룬 곳으로 널찍하게 길이 나 있어서 햇볕을 받으며 걷던 해변구간의 열기를 식혀 준다. 특히 동백섬등대 밑에 새겨진 해운대(海蕓臺) 각자는 놓치기 쉬우므로 기억했다가 챙겨서 보고 가자. 이 글자는 신라시대 천재학자로 일컬어지는 고운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가야산으로 입산하러 가는 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암석에 새긴 것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파도와 비바람에 씻겨 글자가 희미해지기는 했으나 자세히 보면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로 해운대해변까지는 갯바위 사이를 연결한 나무데크와 출렁다리로 이어져서 걷기가 즐겁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화한 해수욕장이라는 해운대해변은 그 명성에 맞게 언제나 사람들의 파도로 출렁댄다. 그 인파 사이를 지나 해운대해변을 벗어나면 해파랑길 1코스 종점이자, 2코스가 시작되는 미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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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길의 조화에 빠져드는 2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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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거칠어진 이기대길의 후반부는 줄줄이 연결된 출렁다리가 편안하게 책임진다. 2 광안리해변에서 모래집짓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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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어 가며 느림보처럼 걸었는데도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1코스 17㎞를 다 마쳤어도 해가 중천이다. 내친김에 해파랑길 2코스, 문탠로드와 삼포길을 걸어 송정해변까지 가보기로 한다. 2코스의 출발점인 미포를 지나자마자 곧 선로 변경으로 기차 운행이 중단된다는 동해남부선 단선 기찻길을 건넌다.
달맞이고개 옆에 조성된 문탠로드는 ‘달빛 아래 걷는 길’이라는 그 뜻과는 다르게 달빛을 보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숲길이다. 남부 해안 숲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스레피나무와 해송이 서로의 영역 구분 없이 푸른 숲을 만들어 낸다. 어두운 밤에도 무릎 이하를 비추는 조명등을 해놓아서 언제나 찾는 이들이 많다. 달빛으로 샤워할 수 있을 만큼 하늘이 툭 터지는 곳은 문탠로드 중간에 있는 전망데크 정도일 만큼 길은 울창한 숲을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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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황옥(黃玉)에 비친 고국을 그리워했다는 황옥공주의 전설을 형상화한 해운대 황옥공주상. 4 신라시대 최치원이 직접 새겼다고 알려진 해운대(海蕓臺) 각자. 동백섬 등대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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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탠로드에서 시작된 숲길은 꼬불꼬불한 오솔길로 이어지다 작은 찻길 하나를 건너곤 다시 삼포길이라는 숲길로 이어진다. 삼포길의 삼포(三浦)는 2코스의 출발지인 미포와 조개구이로 유명한 청사포, 그리고 삼포길의 종점인 구덕포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아득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숲길 걷는 맛은 짜장면도 먹고, 짬뽕도 더불어 먹는 것 같은 오묘한 재미다.
문탠로드와 삼포길을 모두 합친 숲길은 5㎞에 걸쳐진다. 문탠로드가 곳곳에 설치된 조명으로 약간의 인위적인 맛이 있다면 삼포길은 오롯이 사람의 발길로 닦아 낸 수수한 멋이 있다. 유순한 자리만을 골라 흐르고 흐르던 숲길은 결국 송정해변 남쪽인 구덕포 쪽으로 내려선다. 마리나리조트 건설로 북적이는 구덕포는 부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아낀다는 송정해변과 맞닿았다. 한적했던 이곳도 개발의 여파가 밀려들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는 여백의 미가 남아 있어 걷기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백사장도 넓고 수심도 낮아 실질적인 여름 피서지로는 이곳을 으뜸으로 치는 부산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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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울창한 숲길로 스며드는 문탠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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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해변까지 왔으니 이날 하루 25㎞를 조금 넘게 걸은 셈이다. 짧지 않은 거리지만 적당한 시점마다 해안절벽길, 도심길, 숲길, 해변길 등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의 길이 번갈아가며 바통을 이어받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운 걷기의 연속이었다. 바닷가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다채로운 변화를 갖는 것은 해파랑길 부산 구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각 구간을 하나하나 떼어 놓고 봐도 훌륭하기 그지없는 길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며 이어지기 때문에 해파랑길의 대표주자로 손색없다.
이날은 깨끗한 숙소가 많은 송정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송정해변은 세꼬시를 잘하는 영변횟집과 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등대양푼이국수집이 먹을 만한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세꼬시 횟집은 예전에 가본 터라 해변 북쪽 모퉁이에 있는 국숫집의 맛소문을 비빔국수 한 그릇으로 기어이 확인하고 숙소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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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대와 해동용궁사, 오랑대로 이어지는 비경길
다음날 일찌감치 일어나 송정해변 죽도공원의 일출로 하루를 시작한다. 송정포구의 어선들도 저마다 작업장을 향해 일출로 붉게 물든 물결을 가르며 포구를 떠난다. 해파랑길을 걷게 되면 이렇게 동해로 떠오르는 일출과 새벽포구를 떠나는 어선이 오버랩되는 풍광과 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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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시랑대 앞에서 바라본 해동용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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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해변을 떠난 길은 작은 뒷동산을 돌아가는 숲길로 향한다. 잘 생긴 해송들이 여러 그루 자라는 것으로 보아 해신당(海神堂)이 있을 법한 곳이다. 역시 ‘공수마을 신당’이 송림 가운데 자리 잡았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미신도 많고, 금기도 많다. 이런 수많은 신의 존재는 힘겹고 거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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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해파랑길은 해동용궁사 안을 거쳐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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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 숲길은 곧바로 공수마을로 이어진다. 아직 물기가 흥건한 미역들이 포구 공터에 오와 열을 맞춰서 늘어섰다. 이른 새벽부터 미역 말리는 작업을 한 모양이다. 요즘같이 볕이 좋을 때는 하루만 말려도 내놓을 만한 물건이 된다고 한다. 하루 동안 이 어마어마한 양의 미역을 널었다 다시 걷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고단하다. 맛있는 미역국 한 그릇을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의 노고가 앞서야 한다. 걷는 길 역시 그 길을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았겠는가. 어느 길에서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단함도 한 번쯤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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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연화리의 좌판시장. 다양한 해산물과 전복죽이 좋다. 2 1박2일 동안 취재에 동행해 준 고기홍씨는 자신의 직장인 S&T그룹에서 진행하는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2,755km’를 해파랑길에서 시작했다며 해파랑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토대장정 길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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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포구의 정겨운 풍광을 지나면 시랑대까지 이어지는 해안숲길이 나온다. 이 숲길은 삼포길과 다르게 바다 쪽으로 전망이 툭 터진 길이어서 해안풍광과 숲길의 청명함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얼마간 숲길을 걷다 임도 같은 길을 오르면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해동용궁사 담장을 만난다. 여기서 담장 직전에 오른쪽의 협소한 길로 들어가면 기장군 7경에 들어간다는 시랑대(侍郞臺)다. 길 입구에 안내판이 붙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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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다섯 그루의 나무가 우산살처럼 사방으로 자란 죽성리 해송. 4 오랑대공원의 용왕단. 일출사진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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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300여 년 전 기장현감이었던 권적(權摘)이 관내 제일의 명승지였던 이곳에 자주 놀러와 풍월을 읊고 바위에 시(詩)를 각자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큰 바위에 자기의 벼슬이었던 시랑(侍郞)을 따라 ‘시랑대’라는 글씨를 새긴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멋지다. 지금은 바다 쪽으로 세운 미끈한 돌탑들이 이런 바다풍광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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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일본식 축성술로 임진왜란 때 쌓았다는 죽성리왜성. 폐허가 된 옛 성터의 풍광이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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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대와 담장을 사이에 둔 해동용궁사는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절이다. 바닷가 갯바위 지역에 절묘한 가람배치로 자리 잡아 많은 관광객들과 불자들이 줄을 지어 찾는 곳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사찰 중에서 이만큼 바닷가에 근접한 곳을 본 적이 없는 듯싶다. 바다를 앞마당 삼아 전각들을 배치한 모습이 많은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해동용궁사를 거치는 해파랑길은 바닷가 쪽으로 세워진 문수보살 불상을 지나 붉은 다리를 건넌다. 다시 해안을 만나 걷는 길은 일출명소로 알려진 오랑대공원이다.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 다섯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는 오랑대(五郞臺)는 갯바위에 지어진 용왕단(龍王壇)을 넣어서 일출 사진을 촬영하는 명소로 아주 유명하다.
오랑대공원을 지나 만나는 작은 포구 연화리는 해산물 난전이 좋다. 해삼, 멍게, 전복을 쓱쓱 썰어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도 좋고, 출출할 때 즉석에서 끓여 주는 전복죽 또한 그만이다. 전복죽으로 배를 불리며 걸으니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에 당도한다. 대변항은 해파랑길 2코스의 종점이자 3코스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갈치구이가 유명한 집이 있는데, 이미 전복죽으로 배를 채운 터라 곧바로 길을 이어 가기로 했다.
죽성리, 언제라도 꼭 가봐야 할 숨은 명소
대변항을 떠난 해파랑길은 그 옛날 대변고개 너머 죽성리와 대변항을 잇던 옛길을 밟는다. 지역 사람들에게도 잊혀가던 옛길은 이렇게 걷기여행객들을 받아들이며 다시금 길로서의 소임을 부여받아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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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고개 너머 죽성리는 정말 볼 것이 많은 동네다. 갯바위 위에 드라마세트장으로 지어진 교회는 지나는 사람들이 누구나 기념촬영을 하고 갈 만큼 예쁘고, 해파랑길을 걸으며 만나는 수많은 신목(神木) 중에 당당하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죽성리 해송이 그 뒤를 이어 나타난다. 다섯 그루의 큰 소나무 사이에 끼워맞춘 듯하게 신당(神堂)이 모셔져 있고, 각 나무가 우산살처럼 사방으로 자라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여러 번 마주한 해송이지만 볼 때마다 허리가 절로 숙여지는 신령한 나무다.
죽성리의 볼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죽성리 해송에서 서쪽을 보면 커다란 석성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축성기술과 다른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지어진 죽성리왜성은 출입구가 한 곳이어서 올라갔던 곳으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꼭 올라가 봐야 할 만큼 경관과 느낌이 특별하다. 무너진 성터, 그 옛날 일촉즉발의 위기를 느낄 수는 없지만 가슴 한구석의 허허로움을 달래 주는 폐허의 위로를 안고 내려오게 될 것이다.
죽성리왜성을 내려와서 향할 곳은 봉대산이다. 최고봉이 해발 200m를 조금 넘는 봉대산을 오르는 길은 임도처럼 넓게 닦여 있다. 걷기만 했던 이들에게는 살짝 땀이 날 정도의 길이지만 등산으로 치면 입문자 수준에 머문다. 작년 가을, 봉대산으로 해파랑길 루트가 수정되면서 기존에 위험했던 찻길 구간이 숲길로 대체되는 효과를 얻었다.
여기에 봉대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기막힌 조망은 덤으로 얻은 것 치고는 매우 큰 수확이다. 죽성리는 물론이고, 조망이 좋은 날은 지금까지 걸었던 길들을 봉수대에서 모두 한눈에 담아낼 수 있다. 전망 좋은 봉수대를 지나 숲길을 따라 쭉 직진하다 우신네오빌 이정표 방면으로 내려오면 부산 핵심 구간의 종점인 기장군청 부근에서 마을길이 나온다.
이번에 소개하는 추천코스는 출발점부터 치면 노선거리로는 1코스 17.6㎞, 2코스 16.7㎞, 3코스 일부 8.1㎞로 총 거리는 마라톤 정규코스와 거의 비슷한 42.4㎞가 나온다. 힘든 길이 거의 없어 1박2일 동안 여유롭게 걸을 수 있으므로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와도 좋을 듯싶다. 아마도 이 구간을 걷는다면 해파랑길의 남은 728㎞도 마저 걷고 싶은 의욕에 슬슬 발동이 걸릴 것이다.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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