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의 무구한 역사와 함께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홍천강 400리길을 따라가면 그 긴 여정의 끄트머리에 홍천군 서면이 자리하고 있다.
여덟 봉우리마다의 기암괴석과 홍천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놓은 팔봉산 관광지를 시작으로 반곡, 개야, 모곡, 수산, 밤벌, 마곡 등 넓고 긴 강이 흐르면서 사시사철 산자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그 중에서도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전국의 친환경 걷기길 중 하나인 서면 개야리의 에움길을 소개한다.
서면 개야리의 에움 녹색길은 환경을 사랑하는, 이웃과 함께 가는 따뜻한 길이다. ‘에우다’라는 뜻은 ‘사방을 빙 두르다’라는 순우리말로써, 이름만으로도 에움길은 ‘경치 좋은 개야 마을을 빙 두르고 있겠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움길은 반듯하지 않은 굽어 있는 길로써 임도인 개야 옛길을 시작으로 마을을 지나 홍천강변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총 9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50년이상 된 나무가 우거진 밤나무길, 미루나무길, 굽이치는 홍천강의 강물소리길, 하천변의 갈대숲길, 숲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숲속길, 오랜 유래와 농촌의 풍경을 간직한 종자산길, 유진이길, 봄이 되면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노오란 물결이 사방에서 출렁이는 개나리꽃길과 함께, 개암나무, 싸리나무, 정미소, 가죽나무, 이름 모를 야생화 등 자연 속에서의 아름다운 볼거리와 그 속에 묻어 있는 애잔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밤나무길
개야강변에는 50년 이상 된 아름드리 밤나무 20여 그루가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밤나무 아래 초가 오두막에는 곱사등이 홀아비가 어린 딸과 둘이서 살고 있었다. 그가 언제부터 이 마을에 살아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그를 곱사등이라고 불렀다.
◆ 강물소리길
밤나무 마을 앞으로 강물이 흐른다. 이 강물은 홍천강 400여리의 첩첩산중을 돌고 돌아온 물이다. 그 물이 이 개야마을에 이르러 모래밭과 자갈밭을 만든다. 곱사등이는 이 강물에 나룻배를 띄우고 마을 사람들을 강 이 편에서 저 편으로 실어 날랐다. 마을에서 걷어주는 모곡이 배 삯이었다. 나룻배 한켠에는 늘 곱사등이의 딸이 타고 있었다. 강물 옆으로 은사시나무가 자라고 야생화들이 꽃길을 만든다. 곱사등이의 딸은 강물소리를 들으며 꽃향기를 맡으며 곱디곱게 자랐다.
◆ 갈대숲길
초가을 개야강변에는 갈대꽃이 피었다. 자주빛과 담백색의 꽃이 필 무렵 곱사등이와 그의 딸은 갈대를 꺾었다. 부녀는 갈대로 발도 만들고 자리도 만들었다. 솜씨가 좋아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사주었다. 그러나 곱사등이네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 숲속길
가끔 분토골 뒷고개 너머 산속을 오르는 곱사등이네 딸을 볼 수가 있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개야강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누구는 곱사등이네 딸이 자신을 낳다 죽은 엄마를 그리워해 산 속에 있는 무덤을 찾는 거라고 했고, 또 누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를 원망하며 고향 쪽을 보는 거라고 했다. 어쨌든 숲을 지나 산으로 가는 길은 새소리가 가득해서 좋았다. 어느덧 곱사등이의 딸은 처녀로 자라났다. 처녀는 아버지를 대신해 나룻배를 젓기도 했다.
◆ 종자산(種子山)길
숲속길을 지나는 길은 종자산으로 이어진다. 이 산은 자손이 없어 걱정하던 한 아낙이 산을 오가며 자신의 처지를 기도한 끝에 자식을 얻었고, 그 자식이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처녀는 종자산에 올라 약초를 뜯었다. 등 굽은 아비가 몸져누운 것이다. 산삼과 약초가 많아 산을 오르는 사람마다 건강해진다고 소문난 종자산이지만 처녀의 아비에겐 백약도 소용이 없었다.
◆ 유진이 길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곱사등이가 나루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 누구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처녀조차도 아비가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아비가 젓던 노를 쥔 채 처녀는 마을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처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곱사등이가 유진이길 쪽으로 갔을 거라고들 했다. 거기는 옛날부터 적군을 막기 위해 군대가 진지를 치고 있었던 곳이라 마을에서도 더 외진 곳이다. 처녀는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노를 저을 뿐이었다.
◆ 개나리꽃길
유진이길에서 처녀의 집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 길이다. 처녀는 유독 봇도랑을 따라 걷는 길을 좋아했다. 봄이면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는 길이다. 논길과 보를 따라 걸으면 마을사람들이 처녀를 불렀다. 처녀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모내기도 하고 김매기도 했다. 그러나 처녀의 아버지가 마을에서 사라진 후 처녀는 이 길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 미루나무길
미루나무 스무 댓 그루가 서있는 미루나무 길에서 멀리 강 쪽을 보면 밤나무 숲이 보이고, 숲 사이로 언뜻 처녀의 집이 보이기도 했다. 미루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고 잎새는 물빛을 받아 반짝 거린다. 언제부턴가 처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처녀는 어디로 갔을까? 빈 나룻배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 지름길
유진이 삼거리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가면 옛 정미소와 모곡초등학교 강야분교가 그대로 남아 있다. 모곡초등학교는 무궁화 보급운동을 펼친 한서 남궁억 선생이 1934년 설립 개교한 학교다. 이 학교는 마을 사람들의 문화와 교육, 소통의 장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구멍가게도 있는데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처녀도 이 땅 어디에선가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갔으리라. 끝내 자취를 알 수 없는 그의 등 굽은 아비도 그러했으리라.
서면 개야리 강야분교를 출발하여 마을 전체를 에우는 코스로서 강변구간(4km)과, 마을골짜기길 구간(2km), 산속길(2km)구간 등 총8km, 약2시간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폐교된 강야분교를 녹색길 여행자센터로 리모델링하여 여행자숙소, 직거래장터, 농촌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에움길을 찾는 여행객들에 편의를 제공하며 그와 더불어 마을소득 창출에도 한몫하고 있다.
고즈넉한 농촌풍경과 어우러진 수려한 수변경치를 감상하며 뱃사공 부녀의 흔적을 더듬어 따라 가다보면 도심에서의 바쁜 일과로 잊고 있던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여행자센터(구 강야분교) 주소 : 강원도 홍천군 서면 개야리 103번지
※ 에움녹색길 홈페이지 주소 : http://aeumm.com
[문의] 개야리 에움녹색길 여행자센터 ☎ 033-430-2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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