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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필동] 풍찬노숙하는 작품들 여기저기… 골목, 미술관이 되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12. 22.

풍찬노숙하는 작품들 여기저기… 골목, 미술관이 되다

삼일대로 동쪽 중구 필동 1가 일대가 길거리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끊고 낯선 건물에 들어간다는 심리적 문턱은 이곳에 없다.

변화는 2014년 시작했다.

필동 1가 24번지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1평짜리 공간이 '모퉁이'라는 전시 공간으로 거듭나면서다

중구 '필동'

"필동은 냉면 먹을 때나 가는 곳 아냐?"

매일 아침 서울 남산1호 터널을 빠져나와 삼일대로를 타고 서울 시내로 출근하면서도 까맣게 몰랐다.

삼일대로 동쪽 중구 필동 1가 일대가 길거리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끊고 낯선 건물에 들어간다는 심리적 문턱은 이곳에 없다.

대신 골목 곳곳에 작품이 있다. 관람료는 무료.


서울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4번 출구를 나와 쭉 걷다가

유영호 작가의 '인사하는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왼쪽 골목길로 몸을 튼다.

부대찌개집이 보이는 그 골목이 맞는다.

앞에 보이는 주차타워 외벽도, 카페 앞에 서 있는 뚱뚱한 만화 캐릭터 같은 인형도 모두 작품이다.

2016년 12월 현재 필동 골목길 자투리땅에 만들어진 상설 전시 공간은 8곳.

골목길 여기저기서 풍찬노숙하며 누군가의 발길을 기다리는 작품도 30점가량 있다.


변화는 2014년 시작했다.

필동 1가 24번지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1평짜리 공간이 '모퉁이'라는 전시 공간으로 거듭나면서다.

쇼윈도를 연상케 하는 유리 조형물 안에 작품을 넣었다.

1평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작가·작품 소개 영상, 항온·항습기, 도난 방지 장치까지 갖춘 '미니 갤러리'다.

이어 인근 남산골한옥마을 서쪽 산책로에 소규모 미술관이 잇따라 들어섰다.

사각형 우물 형태로 위에서 우물 바닥을 내려다보듯 작품을 감상하는 '우물',

한옥의 기와와 서까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음' 같은 전시 공간은 한옥마을과도 잘 어울린다.


하이라이트는 예장삼익아파트 인근.

다섯 번째로 지어진 '둥지'는 예장삼익아파트에서 삼일대로로 올라가는 계단 옆 빈 공간을 활용했다.

삐죽 솟아난 나뭇가지가 새의 둥지를 형상화했다.

둥지 속을 걸으며 양쪽에 전시된 작품을 본다.


번지수도 없는 이곳에 미술관을 짓기 위해 허가를 받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근처 주택에서 나온 쓰레기 집결지였던 삼각형 땅은 높이 6m의 전시 공간 '사변삼각'이 됐다.

삼각형 땅에 만든 사각형 전시 공간이라는 뜻.

현재는 조덕래 작가가 조약돌을 철사로 한데 묶어 말 형태로 빚어낸 'enclose'를 전시하고 있다.


스트리트뮤지엄 8곳 이 외에도 지천이 작품이다.

골목 초입에 보이는 주차장 외벽은 한성필 작가의 설치미술이 감쌌다.

예장삼익아파트 경비사무소 타일은 강주리 작가의 회화 작품 '문제적 낙원'을 입었다.

골목길 한쪽에 있는 등나무 쉼터 지붕에는 '사쿤' 작가의 괴물 캐릭터 인형이 올라가 있다.

아이돌 EXO와 협업했던 것으로 유명해 낯이 익다.


'둥지' 양쪽 통로에 각각 서 있는 김원근 작가의 '차도녀'와 '순정남' 조각상이 익살맞다.

옷매무새가 영락없는 조직폭력배인 '순정남'이 '차도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설정이다.

콘크리트로 만들어 조각상 하나당 무게가 700㎏에 달한다.


필동의 변화를 이끈 사람은 박동훈(52) 핸즈BTL미디어그룹 대표이다.

최종 학력 중졸인 그는 충무로 인쇄소·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지금은 연 매출 20억원이 넘는 광고회사 대표가 됐다.

2012년 필동 1가 24번지에 사옥을 짓고 입주하면서 자신이 자라난 필동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필동이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 사학(四學) 중 하나인 남부학당이 있던 곳이더군요.

현대에는 영화, 광고, 사진, 인쇄가 발전했던 장소고요. 이런 필동의 역사적 맥락을 살리면서 재개발이 아닌 재발견을 추구했습니다."


이곳을 '박동훈 거리'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8곳의 스트리트뮤지엄 디자인은 모두 박 대표 손에서 나왔다.

8곳을 12곳으로, 24곳으로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삼거리 인근에 있는 카페 '베이커리24', 술집 '펍24', 공연장 '코쿤홀' 역시 그의 작품.

박 대표가 필동 1가를 지금같이 만드는 데 들인 돈은 20억원이 훌쩍 넘는다.

"요즘 광고업계 경기도 안 좋은데 잘못 뛰어든 것 같아요. 하하."


스트리트뮤지엄 8곳과 주변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가량.

마음만 먹으면 평일 점심 시간 40분 만에 둘러볼 수 있다.

작품은 3~6개월 주기로 교체한다.

'컨테이너', 'ㅂㅂㅂㅂ벽', '골목길' 등 3곳의 전시 공간은 작품 교체를 위해 전시 공간을 비워둔 상태다.


5인 이상이 관람 3일 전까지 예약하면 도슨트가 뮤지엄 투어를 해준다(문의 02-2276-2540).

스탬프 투어 행사도 있다.

8곳을 모두 방문해 도장을 찍으면 '베이커리24'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또는 '펍24'에서 생맥주 한 잔을 무료 제공한다.

작품을 감상하면 차는 공짜라니, 근래 보기 드문 인심이다.

'인사하는 사람'처럼 허리를 꾸벅 숙였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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