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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12 名峯ㅣ르포<2>] 매우 어렵고, 매우 황홀한, 과소평가된 명봉들! (삼천사~나월봉~나한봉~문수봉~승가봉~응봉~삼천사 8km)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9. 8.

[북한산 12 名峯ㅣ르포<2>] 매우 어렵고, 매우 황홀한, 과소평가된 명봉들!

삼천사~나월봉~나한봉~문수봉~승가봉~응봉~삼천사 8km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내려서는 스릴 넘치는 바윗길. 멀리 은평구 일대와 수려한 의상능선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속이 답답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폭우, 끝을 모르고 울리는 코로나 확진자 발생 메시지, 익숙하게 목을 조여 오는 일상의 참사들. 와르르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으려 산으로 향해야 할 때가 있다. 북한산처럼 탁 트인 경치로, 묵은 체증 내려주는 산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두기에 어울리는 코스를 잡았다. 나월·나한봉~문수봉~승가봉~응봉을 당일에 오르는 삼천사 원점회귀 산행. 북한산은 능선이 길고 복잡하게 뻗어 있어 자연스런 원점회귀 코스를 잡기 어렵지만, 이 코스는 숨은 명봉을 두루 거치며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자연스런 코스다. 삼천사계곡과 나한·나월봉이 있는 의상능선, 응봉능선은 등산객이 적어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알맞다. 다만 산길이 희미하고 오르내림이 심하며 바윗길이 많아 난이도가 세다.

 

불경 소리 울리는 삼천사의 아침, 웃음꽃이 핀다. 성균관대 산악부 재학생인 한효희, 하세강, 박지우, 윤예인씨가 함께한다. 새로운 봉우리를 간다는 것만으로 즐거워 웃음이 끊이질 않는 청춘들과 함께 모처럼 시끌벅적하게 산행을 시작한다.

나월봉 정상부. 의상능선은 국립공원에서도 가장 산행이 어려운 코스로 분류하고 있다.

 

정갈하면서도 웅장한 삼천사는 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3,000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최근 고고학적 조사에서 ‘三川’이라 적힌 기와가 발견되면서 세 개의 계곡과 관련된 이름이라 추측하게 되었다. 승가봉에서 흘러내린 지류, 문수봉에서 흘러내린 지류, 용혈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쳐 흐르는 계곡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갑옷 입은 장군처럼 기운 넘치는 암봉들이 삼천사 뒤로 걸출하게 솟았다. 용출봉을 필두로 의상능선이 험준한 산세로 솟구쳤다. 땀 깨나 흘릴 것이 자명하다. 산길로 들자 짙은 숲이다. 백운대만 다닌 등산객은 당황할 정도로 자연 그대로다.

 

감각을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놓칠 정도로 희미하다. 그만큼 삼천사계곡은 북한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과소평가 받은 계곡이다. 골이 크지 않지만 작은 폭포와 반듯한 암반이 꾸준히 나타나 미모를 과시한다.

 

응봉능선의 전망바위에 선 성균관대 산악부원들. 신입생인 윤예인 학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다.

 

비봉능선으로 이어지는 갈림길과 이별해 부왕동암문으로 다가설수록 거칠다. 코가 닿을 듯 벌떡 선 비탈과 희미한 산길이 모처럼 나타난 사람에게 온몸으로 환영인사를 건넨다. 한껏 거칠어지는 숨을 가다듬어야 할 때쯤이면, 너른 슬랩이 나타나 시원한 경치며 달콤한 바람을 선물로 준다.

 

폭우로 인한 입산해제가 풀렸지만 구름은 품에 능선을 숨겼다 꺼내기를 반복한다. 밀당(밀고 당기기)하는 연인처럼 북한산 진경을 보여 줄 듯 말 듯하다. 그저 우중산행하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산을 오르는데 “꺄악!” 비명소리가 들린다.

 

박지우·윤예인씨가 벌에 쏘인 것. 말벌류에 쏘였으나 다행히 알레르기 반응은 없다. 불행 중 다행인 셈, 두 여성은 본인들보다 더 놀란 선배들을 안심시키려 “아팠지만 이젠 괜찮다”며 산행을 이어간다.

 

은밀하고 깨끗한 삼천사계곡.

 

북한산 남릉의 왕, 문수봉

우여곡절 끝에 오른 듬직한 북한산성이 반갑다. 부왕동암문에서 물을 마시며 전열을 재정비한다. 진짜 산행은 지금부터다. 국립공원에선 법정등산로 구간별 난이도를 색깔로 구분해 놓았는데, 여기서 나월·나한봉을 지나 청수동암문에 이르는 1.2km는 ‘매우 어려움’을 뜻하는 ‘검정색’으로 분류했다. 의상능선 초입도 난이도 ‘검정색’임을 감안하면, 오늘 같은 더위 속에 의상능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는 건 국내 국립공원을 통틀어도 워킹산행에 있어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산성 따라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의상능선을 오른다. 의상이 집대성한 화엄사상은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여서 우주 만물이 서로 통하여 무한하고 끝없는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어려운 산도 한 걸음 한 호흡으로 오를 수 있음을 되새기며 순간에 집중한다.

 

문수봉 정상 부근의 암릉지대에서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 성균관대 산악부 박지우, 하세강, 윤예인씨(왼쪽부터).

 

나월봉 정상 암릉을 우회해 뒤에서 안전하게 나월봉 위에 선다. “우와”하는 환성에 고개 들어보니 신성한 화강암 성채가 웅장하게 솟았다. 거대한 세 개의 암봉, 백운대·만경대·노적봉이 드라마틱한 주인공의 등장처럼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의 특수효과보다 더 놀라운, 환상적인 등장에 산행의 흐름이 모두 정지된다. 깨달음에 이른 수도승마냥 벅찬 감동이 샘솟는다. 늘 곁에 있는 북한산이 ‘이토록 황홀한 모습으로 다가올 줄이야’하며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대학산악부원들은 인수봉을 주로 등반했기에, 북한산의 뒷모습인 서쪽에서 본 풍경은 처음이다.

 

까다로운 오르막이 덮쳐오는 걸 보니 나한봉이 가까워 오고 있음이다. 철난간이 있는 바윗길을 조심스레 올라 모처럼 너른 터가 있는 나한봉 치성에 오른다. 문수봉과 비봉능선, 북한산 백운대까지 동서남북 명봉이 모두 드러나는 조망명소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 정상에 오른다.

 

해발 732m 오늘 산행의 최고 고도다. 높이만큼 시원하게 서울 시내가 드러난다. 흐린 날씨 속에도 희미하게 롯데월드타워의 실루엣이 보인다. 비로소 시끌벅적한 등산객 무리와 만난다. 고독한 수행길마냥 어려움과 즐거움이 섞인 의상능선이 끝난 게 실감난다. 배낭 벗고 긴장도 풀어헤치고 문어 머리처럼 맨들맨들한 문수봉에서 오래도록 경치를 즐긴다.

 

북한산을 대표하는 기암 중 하나인 사모바위에서 점프 장면을 찍은 성균관대 산악부원들.

 

우회로 대신 바윗길을 택해 비봉능선으로 내려선다. 불친절한 슬랩과 사다리에 가까운 아찔한 철제난간을 지난다. 암벽등반이 익숙한 산악부원들답게 고도감을 즐기며 비봉능선에 내려선다. 한껏 고도를 내렸다가 편안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선 암봉, 승가봉이다. 뒤로 문수봉이 성벽처럼 듬직하게 서서 북풍을 막아내고 있다.

 

비봉능선을 대표하는 명소인 사모바위, 옛 문무백관의 모자를 닮은 기암에서 한껏 포즈를 취한다. 청춘의 에너지를 담아 점프하는 연출 사진을 찍고 응봉능선으로 내려선다. 많던 등산객이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등산화 마찰력을 극대화시켜 매끄러운 암봉 위에 올라서자 지나온 의상능선과 문수봉, 멀리 백운대가 모두 드러난다. 이토록 수려한 암봉이 곳곳에 널려 있다니, 역시 명산 중의 명산 북한산답다.

 

중력에 몸을 맡기듯 고도를 빠르게 낮추는 응봉능선, 조용하여 복잡한 마음을 비우기에 제격이다. 응봉 정상은 별도의 정상 표지판이 없어, 대부분 그냥 지나치게 된다. 경치 없는 육산 봉우리에서 지도를 살피고선 삼천사로 내려선다. 종일 땀을 쏟아 타는 듯 목마르지만, 맛깔스런 암봉으로 과식한 마음은 기운이 넘친다.

 

꿈의 성채처럼 몽환적으로 드러난 백운대·만경대·노적봉. 의상능선에서 본 백운대는 황금비율에 가깝다.

 

나한봉 부근에서 본 용출·용혈·증취봉과 구름 사이로 반쯤 모습을 드러낸 백운대. 경치가 빼어난 만큼 벼랑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

 

산행 길잡이

삼천사에서 출발해 나한·나월봉~문수봉~승가봉~응봉을 거쳐 삼천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지킴터에서 삼천사까 포장길 1km를 제외하면 8km로 길지 않지만, 경사가 심하고 주의를 요하는 바윗길이 많아 쉽지 않다. 국립공원에서도 나한·나월봉 구간을 워킹산행 최고 난이도인 ‘매우 어려움’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전벨트나 로프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집중력과 지구력, 암릉산행 경험만 있다면 즐겁게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국립공원이지만 산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산길이 희미한 곳이 많아 길찾기에 신경 쓰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들기 십상이다. 등산지도를 준비해 이정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낭떠러지가 많고 휴대폰 전파가 닿지 않고 등산객이 드문 구간이 있으므로 혼자 가기보다는 일행과 동행하는 것이 좋다. 나월봉은 직등하기보다는 우회해서 난간을 넘어서 다녀오는 것이 낫다. 난간이 있으나 경치가 터지는 암봉까지 30m 정도의 평범한 흙길이라 어렵지 않다.

 

고소공포가 있고 완만한 슬랩을 오르내리는 것이 자신 없다면 문수봉에서 청수동암문으로 되돌아가 우회로를 이용해 승가봉으로 가야 한다. 산행의 난이도가 있는 만큼 아침 일찍 출발해 물과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고, 비탈이나 바윗길에선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 바윗길. 안전한 우회로와 직등루트 중 선택할 수 있다.

 

교통

연신내역에서 701번 버스를 타고 진관사·삼천사 입구에서 하차해 1.7km를 걸어야 삼천사에 닿는다. 초행이라면 길찾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지도와 스마트폰 지도앱을 참조해야 한다. 연신내역에서 5km 떨어져 있어 택시로 15분이면 닿는다. 삼천사 앞에는 20여 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으나 주말에는 신도들로 인해 만차가 되기도 한다. 입구에 별도의 공영주차장은 없으며 식당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이 여럿 있다.

 

맛집(지역번호 02)

삼천사 입구의 식당은 대부분의 산 입구처럼 백숙, 닭볶음탕이 주된 메뉴다. 청솔집(381-3006), 진미가든(381-3353), 토속정(381-0406) 등이 있다. 연신내역 앞은 ‘연신내 로데오’라고 불릴 정도로 식당과 술집이 많다. 파전 맛집 전주막(010-2928-0464), 돼지곱창전골 전문 구석집(353-5157), 등갈비와 곤드레밥 전문 팔덕식당(010-8078-8338), 오징어 불고기 전문 두꺼비집불오징어(355-3130) 등 맛집이 즐비하다.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양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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