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뇌의 반만 잠자는 새… 한쪽 눈 뜨고 적이 오나 볼 수 있죠
인간과 동물의 잠
▲ /그래픽=유재일
충분히 잠을 자지 않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매일 잠을 자야 하는 걸까요? 인간과 동물은 왜 수면 방식이 다른 걸까요?
잠은 '뇌를 깨끗이 청소하는 시간'
우리는 매일 잠자리에 들지만, 우리가 잠을 자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어요. 한 가지 유력한 가설은 '뇌에 쌓인 노폐물과 독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2013년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이 잠자는 쥐의 뇌를 관찰했어요. 그 결과 잠을 자는 동안 뇌세포 사이 간격이 벌어지면서 체액이 활발하게 흘러나와 해로운 물질을 씻어내는 현상을 볼 수 있었대요.
2019년에는 미국 보스턴대 연구진이 사람 뇌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인간이 잠을 자면 뇌 활동이 줄어들고, 혈액 흐름은 감소하는 대신 뇌척수액이 많이 흘러나와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등을 씻어낸다고 해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많이 쌓이면 알츠하이머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에요.
최근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인간이 잘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논문들을 소개했어요. 영국 연구진은 한 논문에서 우리가 잠자는 것이 '하우스키핑(housekeeping)' 과정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하우스키핑'이란 노폐물을 청소하거나 뇌의 신경 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의 구조를 바꾸어 균형을 되찾는 등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비 과정을 뜻하죠. 연구진은 사무실을 청소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뇌 속에서 '하우스키핑'이 이뤄지려면 의식이 깨어 있지 않은 수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어요.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
인간은 얼마나 오래 자야 할까요? 적정 수면 시간은 연령에 따라 달라요. 갓 태어난 아기는 거의 종일 잠을 자며, 나이가 들면서 잠이 점점 줄어들다가 성인이 되면 7~9시간이 적정 수면 시간이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잠자는 유형은 조금씩 달라요.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에 더 정신이 맑은 '저녁형 인간'으로 나뉘기도 하죠.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잠을 오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과 관련이 있어요. 아침형 인간은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시간이 저녁형 인간보다 빨라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는 거래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유전자와 관계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2003년 영국 서리대 연구진은 PER3라는 유전자가 길면 아침형, 짧으면 저녁형 인간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해당 연구 결과 유전자의 영향은 나이에 따라 달라졌는데, 어렸을 땐 유전자의 영향이 크지만 40대 이후엔 유전자보다는 직업이나 육아 등 주변 환경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합니다.
육식동물은 꿀잠, 초식동물은 쪽잠
동물들도 잠자는 시간과 패턴이 달라요. 기린과 아프리카코끼리는 하루 약 두 시간, 말은 세 시간밖에 안 잔대요. 소도 하루에 네 시간 정도로 적게 자는 편이고요. 이와 달리 개와 고양이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잠을 자요. 사자는 약 13시간, 호랑이는 약 16시간이나 자고요. 대체로 초식동물은 잠을 적게 자고, 육식동물일수록 더 많이 잔다고 해요.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자는 시간은 천적에게 드러날 수 있는 위험한 시간이에요. 이 때문에 천적이 없는 육식동물이 잠을 더 많이 잔다고 합니다.
코알라나 북아메리카의 작은 갈색 박쥐, 남아메리카의 왕아르마딜로 등은 하루에 18~20시간씩 잠을 자는 엄청난 잠꾸러기랍니다.
한쪽 뇌만 잠자는 동물
동물들은 수면 방식이 다양해요. 말을 비롯한 일부 유제류(발굽이 있는 포유류)는 누워서 잘 여건이 안 된다면 선 채로도 잠을 잘 수 있어요. 근육이 이완되는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에 빠져들기 위해선 짧은 시간이라도 누워서 잠을 자야 하는데, 서서 자려면 얼마나 힘들까요.
홍학이나 두루미·오리 등 일부 새는 한 발로 서서 잠을 자요. 이 새들은 주로 습지에 살기 때문에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와 한쪽 발은 몸속에 파묻고 한쪽 발로만 몸을 지탱하며 잔다고 해요.
또 뇌의 절반씩 번갈아 잠을 자는 동물들도 있답니다. 이렇게 뇌의 한쪽은 잠을 자고 한쪽은 잠을 안 자는 상태를 '반구수면(Hemispheric sleep)'이라고 해요. 이런 현상은 주로 새나 고래·물개·바다사자 등 물에서 사는 포유류에게서 나타나요. 반구수면을 하면 한쪽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적의 접근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또 물속에서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숨을 쉬러 수면 위로 올라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 인간과 동물의 수면에 대해선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참 많아서 여전히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에요. 하지만 수면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니, 잠을 잘 자야겠지요?
고호관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연주 기자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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