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화)
양평 용문산 3대사찰(사나사·상원사·용문사) & 3대계곡 탐방산행을 다녀와서...
'양평 용문산 3대사찰(사나사·상원사·용문사) & 3대계곡 탐방산행' 코스
아신역→택시이동→용천리 주차장→사나사계곡 입구→사나사 일주문→사나사→함왕성지 갈림길→함왕골(절골)→용소폭포→함왕봉(889.2m)→헬기장(966m:삼각점)→장군봉(1065m) 정상석/전망데크→山字바위→바위구간(로프)→하누재→상원사계곡 목교→상원사→용문사 가는길→상원골계곡 건넘→평상쉼터→용문산능선길1(절고개)/소나무 평상쉼터→능선따라 하행→용문사계곡 목교→은행나무→용문사→용문사 일주문→신점리정류소→버스이동→용문역
오늘은
'양평 용문산 3대사찰(사나사·상원사·용문사) & 3대계곡 탐방산행'을 위해 길을 나선다.
▼ 상원사에서...
상원사 上院寺
시대 : 고려
건립시기 : 고려시대
성격 : 절,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용문산(龍門山)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남아 있던 옛 유물로 추정할 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뒤 1398년(태조 7) 조안선사(祖安禪師)가 중창하였고,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왕사(王師)를 그만 둔 뒤에 잠시 머물렀다고 전한다.
1463년(세조 9) 8월 왕이 이곳에 들러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현상(現相)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하게 하였는데, 최항(崔恒)에 의해 그 때의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이 절은 끊임없이 중수되어 면면히 이어오다가 1907년의 의병 봉기 때 왜병이 방화하여 겨우 법당(法堂)만 남게 되었다.
1918년 주지 최화송(崔華松)이 화주(化主) 차상원(車祥元)의 도움으로 대방(大房)을 재건하였고, 1934년 주지 최경언(崔璟彦)이 객실(客室)을 신축하였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전투를 겪으면서 다시 회진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龍華殿)·삼성각(三聖閣)·청학당(淸鶴堂)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비구니 경한(鏡漢)에 의해서 건립된 것이다.
현존하는 중요 문화재는 없으나 원래 이 절에는 범종(梵鐘)과 석사자(石獅子) 1구, 팔각석탑등(八角石塔燈)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 석사자와 팔각석등은 제작연대가 고려시대 중기로 추정되는 우수한 작품이었다 한다. 이 절의 위쪽에는 윤필암(潤筆庵)의 유지가 있고, 그 아래 미륵불을 모신 불당(佛堂)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문사 龍門寺
시대 : 고대/남북국
건립시기 : 913년(신덕왕 2)
성격 : 절,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용문산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도 한다. 913년(신덕왕 2) 대경대사(大鏡大師)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649년(진덕여왕 3)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892년(진성여왕 6) 도선(道詵)이 중창하였다고 하며, 또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1378년(우왕 4)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이 경천사(敬天寺)에 있던 우왕이 원각(願刻)한 대장경판을 이곳에 옮겨 세 칸의 대장전(大藏殿)을 지어 봉안했으며, 1395년(태조 4) 조안(祖眼)이 중창하였다.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모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를 위하여 보전(寶殿)을 짓고, 불상 2구와 보살상 8구를 봉안한 뒤 이듬해 경찬회(慶讚會)를 열었다.
수양대군은 이 법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던 중 불사리(佛舍利)의 방광을 목격하고 이 절을 원찰(願刹)로 삼았으며, 1457년(세조 3) 퇴락한 법당과 승방(僧房)을 중수하였다. 1480년(성종 11) 처안(處安)이 중수하였으며, 1890년(고종 30) 봉성(鳳城)이 조대비(趙大妃)의 외호를 받아 중창하였고, 1893년에도 한 차례 중창하였다.
1907년 의병 봉기 때 모든 건물이 불타자 취운(翠雲)이 큰방을 중건하였고, 1938년 주지 홍태욱(洪泰旭)이 대웅전·어실각(御室閣)·칠성각·기념각·요사채 등을 복구하였다. 6·25전쟁 때 용문산전투로 다시 불에 탔으나 1958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그 뒤 1983년 지장전·범종각·일주문 일부를 중수했고, 관음전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그 중 지장전은 1994년에 완공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지장전·관음전·삼성각·종각·요사채·일주문(一柱門) 등이 있으며, 옛 절터에는 주춧돌이 산재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부도(正智國師浮屠) 및 비가 있으며, 산신각 동쪽에는 부도 5기가 있다. 이 밖에 이 절 앞에는 높이 42m, 가슴높이 둘레 14m의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다가 이곳에 들러 심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것으로 '양평 용문산 3대사찰(사나사·상원사·용문사) & 3대계곡 탐방산행 이야기'를 마친다.
양평 용문산 3대사찰(사나사·상원사·용문사) & 3대계곡 탐방산행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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